2년만에 최고위원 선거가 돌아왔다. 최고위원 이름만 들어도 가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의 이름만으로 가슴 벅차 오르는 감격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지나가던 차에서 주황색만 봐도 민주노동당이란 이름이 신문 구석 한모퉁이에만 나와도 가슴이 미어지는 아련함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렇던 민주노동당이 어느시절엔가 어느날 갑자기 불현듯 아찔하게 느껴질때가 생겼다. 허걱 저것이 아닌데 하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을때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10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왔다. 어렵고 힘든 역사의 터널을 거쳐 이제 막 그가 우리곁에 왔을 때 우리는 눈을 뗄수 조차 없었다.
진보정당을 이세상에 다시 내보내는 그런 일을 민주노동당이 곱게 곱게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보자. 당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떤이는 당원은 당을 먹고 산다고도 하더니만. 당은 당원들의 활동과 참여와 실천과 투쟁과 이런걸 통해 뭔가 더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뭉친 조직일 게다. 그조직을 밀어가고 끌고가야할 먼저 책임을 맡은 이들이 최고위원들이 될것이다.
그들이 이제 후보대열에 섰다. 1기 최고위원회의 평가도 채이루어지기 전이지만 흐르는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왜 1기냐고. 그러니까 2000년 이런때는 최고위원 제도가 없었다. 당대표, 부대표, 그리고 무슨 전국집행위원 이런직책이 있었다. 하이튼 그런 후로 당이 전국에 조직을 건설하고 국회의원도 내는 모습을 갖추자 확실히 당을 운영하고 당원의 뜻을 모아 더 나은 활동들을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 최고위원이다.
근데 이 훌륭한 최고위원들이 왜 가슴을 들썩 내려앉게 했을까. 이제 기억도 아스라해진 것 같지만 훌륭했던 사업하나가 당총진군대회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러당원들과 여의도 총진군 대회장에 갔는데 정말 난생처음해보는 관제데모의 레퍼토리를 보는 것 같아 씁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회라는 것은 아마도 집회참여자의 의지를 모으는 것이고 이를 통해 주장하는 바를 명백히 밝히며 이를 관철시키려는 방안일 것이다. 이날의 “총” 진군 대회는 가히 총 진군 이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집회연단위에서 마이크와 인물들과 만세삼창이 어우러지는 매우 요상시런 행사가 되고 말았다. 그런뒤에 무슨 뒷풀이처럼 국회앞으로 알아서 각자가는 길에는 농민들의 항거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까지 다 감안한 진군대회였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당의 총진군대회는 잘짜여진 연단에서 광장을 돌아보며 만세부르면서 하고 그 후반부는 알아서 집회에 참여하란 말인가.
행정신도시 이전의 당론시 보여주었던 최고위원들의 엉거주춤, 그다음 맨날 따라다니던 2중대론 – 요건 뭔말이냐 하면 열린우리당인지 한나라당인지의 2중대를 하면서 잘 붙어있다가 정치권에 들어갔으니 제목소리를 확실히 내기에는 역량이 딸리니 대충 잘 타협을 해야 정치를 잘할수 있다는 야기죠. 참 옳은 이야기인데 이런 당 할려면 퍼득 민주정의당을 부활시키는 것이 맞을 것이오.
그밖에도 최고위원에 대한 이야기는 하도 많아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당원게시판에는 최고위원에게 바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당이 내걸었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최고위원들은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2004년 총선에서 받은 국민의 지지를 보답, 아니 응답하기 위해 당은 얼마나 비정규직을 위해 싸우며 노동자 서민의 행복한 세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중간에 전원 사임한 김혜경 대표부터 정책위의 주대환, 전업무를 두루 총괄하신 김창현 사무총장과 노동계에서 단일 입후보하고 찬반투표를 받은 분 여타 최고위원들 뿐만 아니라 전 당원들에게 되물어야 할 것이다. 당은 최고위원들의 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엉뚱하게도 10월인가 보궐선거의 지지율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일괄사퇴하였지만 막상 빈배(허주가 생각난다)에 남은 당원들은 과연 이당을 자신들의 당으로 만들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사회의 일하는 사람들은 이당을 자신들을 위한 자신들의 행복을 위한 당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최고위원을 다시 뽑는 시간 우리는 다시한번 어디엔가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2년전 최고위원 선거후에 나온이야기는 평가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정파로 얼룩진인지 하이튼 나쁜 책(나쁜 영화는 아니다) 이론과 실천인지에서 하이튼 있다치고 1인 여러표로 했던 최고위원 선거는 어떤 사전의 셋팅이 잘 조합되어 당원들의 자기참여의 선거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당원수가 그때 아마 투표당원수가 2만명 가까이 되었나 모르겠다. 셋팅하는 것도 실력이다. 맞다. 세상살이가 실력대로 하는기다.
그래도 암만 그래도 그렇지 고렇게 가면 이건 실력이 아니라 도둑넘이다. 원칙이 아니라 사꾸라다. 진보정당을 퇴보정당이나 그냥 보통정당으로 바꿀일이다. 실력이란 최고위원 후보의 활동과 경력을 보는 것이다. 그의 진심을 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정파에 자유롭지 않은이도 있을 것이다. 아는 선배의 팔촌, 전화한번 오고 평소에 친한 지역위 선수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찍는 것도 자유다. 그런 면에서 정파의 활동은 자유다. 정파란 정치활동을 하는 정당에서 바람직한 활동형태이다. 그렇다면 그 후보와 함께 하는 선본이 어떤 당내 정치를 펼치려고 하고 펼쳐왔는지도 매우 중요한 선택기준이 될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민중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당의 깃발이 나부끼는것, 그이름만으로 벅찬것이 아니라 당의 이름이 언제인가 슬그머니 뒷꽁무니치고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싶은 것일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동떨어진 헛발질만 하고 있을때 당과 당원임이 얼굴이 화끈거리게 부끄러워 졌다. 더이상 민주노동당이 더 많은 당원들에게 실망과 허무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당에게 보낸 뜨거운 지지와 소망들이 한바탕의 거품으로 끝날수 없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넘어 당은 다시한번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최고위원회를 지켜보며 가슴 졸이던 마음, 당원으로서 당을 걱정하는 마음, 당원으로서 당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 당원으로서 당이 노동자 민중의 꿋꿋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이제 한표로 던져질 때가 되었다. 그 선택의 기준에 우리는 우리앞에 몸을 바쳐 뛸려는 후보들을 보며 어떤 원칙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할지 되새겨 보아야 할때이다. 진보정당의 발전은 당원들의 면도날 같은 검증에 있을진데 아직 미진한 이땅의 소수자의 인간적 권리와 환경과 반핵을 확고하게 당의 중심활동의 기반으로 만들어나갈 2기 최고위원회를 손꼽아 기다리며 비정규직 운동의 강화발전속에 우리 노동운동과 당운동이 강고해지며 이나라 국적만의 노동자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그런 사회를 열어가는 그런 세상을 위해 한표를 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