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전일
수능을 하루 앞두었다. 평소처럼 정한 시각 출근해도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우두커니 있을 수 없었다. 아침에 출근해 내가 맡아 관리하는 별도 학습실인 별마루로 가보았다. 수능 임박 전날 이른 아침까지 그곳에 와 공부하는 독종(?)이 몇 있었다. 발소리 죽여 살펴보니 네 명이었다. 어제는 십여 명이었는데 비해 그 숫자는 줄었다. 나는 눈 맞춤도 못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서 뒤뜰 분수대를 지났다. 근처에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며칠 새 샛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만추지절에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광을 폰 카메라에 담았다. 교무실 내 자리로 와 컴퓨터를 켜 그 은행나무와 관련 지어 생활 속에 남기는 글을 써 나갔다. 바람이 인연을 맺어주는 소나무와 견준 내용이었다. 내가 써 나가는 글은 대개 한두 시간 이내 끝낸다.
오전 일과는 재학생들은 수능 고사장 시험실을 정리하고 교정에서 고3 수험생을 격려하는 의식이 열렸다. 잔디교정에 모처럼 전교생이 모였다. 국민의례에 이어 학교장이 수험생을 격려하고 재학생을 독려하는 무게감 있는 훈화가 있었다. 학생회 후배 대표는 선배들에게 보내는 글을 낭독했다. 이어 연단에는 후배들이 선배들을 위한 발랄한 율동과 신선한 문구로 깜짝 공연을 펼쳤다.
교무실로 들어와 아까 끝내지 못한 글을 마무리 지었다. 그 글은 학내 메신저로 동료들에게 날려 보내고 지인들에게 메일로 넘겼다. 이어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수능 고사장을 점검하는 업무부서는 아직 남은 일들이 산적했다. 동료들 가운데 일부는 타교 감독관으로 배정받아 그곳 학교로 가야했다. 학교 급식소에선 점심이 나오지 않아 각자 도생해야 해서 나는 혼밥으로 해결했다.
옆자리 기간제 총각한테 점심을 같이 들자고 제안하니 오후는 일정이 나하고 달랐다. 나는 학교 바깥으로 나가 창원대로를 건너 아파트단지 부식가게와 딸린 식당으로 갔다. 처음 가 본 밥집이었다. 주인은 단감을 깎아 건조기에 담고 있었다. 아마 어디선가 온 단감이 그냥 먹기엔 양이 많아 말랭이로 만들려는 듯했다. 나는 주인 아낙보고 가장 손쉽게 차려낼 수 있는 점심을 원했다.
사무실이나 공장과 떨어진 곳이어서인지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상차림이 나올 사이 북면 농장 지인에게 안부 전화를 넣어보았다. 잠시 후 동태찌개가 나왔다. 평소 학교 급식소 밥에 익숙했는데 모처럼 외식을 한 셈이었다. 벽걸이 텔레비전 모니터엔 종편 채널에서 국정 농단을 주제로 몇 패널이 제 각각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었다. 혼밥에 익숙한 나는 식사를 끝내고 수저를 놓았다.
창원대로 건너 학교가 위치한 교육단지로 왔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가까웠다. 그곳은 평소 내가 가보지 않은 공원이었다. 창원은 대로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곳곳에 주제가 있는 공원이 즐비하다. 가음정동엔 습지공원과 장미공원이 있다. 삼동엔 분수공원이 있고 대원동엔 어린이 교통안전공원과 람사르기념공원도 있다. 정작 나는 우리 학교 턱 밑에 있는 국화공원은 모르고 있었다.
국화공원엔 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제철이 지나는 때라 일부는 시들었지만 늦가을 정취가 드러났다. 노란 국화 무더기 앞엔 ‘소국’이라는 안내 푯말이 있었다. 작은 송이가 여럿 달리기에 소륜국으로도 불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내가 열흘 전 서북산 임도에서 맡아본 산국보다는 향기는 진하지 않았다. 공원 주변에는 느티나무와 목련을 비롯한 여러 나무들은 단풍이 고왔다.
국화공원과 인접한 데는 축구장이었다. 축구장 곁에는 테니스장이었다. 아침이나 저녁엔 동호인들이 와 운동을 하는지 바닥은 발자국 흔적이 남아 있었다. 우거진 나무 아래 운동기구엔 길 건너 아파트 주부가 와 몸을 단련하였다. 국화공원을 빙글 둘러 학교로 드니 정한 점심시간이 거의 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교에서 감독관으로 우리 학교로 배정받은 분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16.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