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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의 봄
전 호 준
꽃눈이 흩날리는 벚꽃 길을 따라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앞서가는 동료들을 놓칠까 가쁜 숨을 달래며 발길을 재촉한다.
봄도 깊은 산속을 찾아오느라, 꽤 오랜 시간 헤맨 모양인가? 대구 가로변 벚꽃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는데 계룡산의 봄은 한 걸음 늦은 것 같다.
다행히 절정은 아니지만 남은 벚꽃이 아직은 화사하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올해는 며칠 일찍 꽃이 피었다. 한다.
동학사를 오르는 약 3Km에 이르는 동학 계곡, 늘어선 왕벚나무에 떨어지는 꽃잎이 너무나 정겹고 낭만적이다. 수정같이 맑은 계곡물 위에 떨어진 꽃잎이 수정과 같다. 내려가 한 움큼 퍼마시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일대에 위치한 민족의 영산 계룡산 찾았다.
때마침 “올해의 관광도시 공주”라는 테마로 펼쳐지고 있는 계룡산 벚꽃 축제, 많은 관광객이 붐빈다. 지는 꽃잎이 아쉬운 듯 꽃구름을 머리에 이고 추억을 새기느라 너도나도 멋진 모습으로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꽃잎으로 모자이크된 길을 밟으니. 꽃길 카펫 위를 걷는다는 기분보다 화무십일홍이란 문구가 실감 난다. 은연중 학창시절 즐겨 읊던 시조가 떠올라 혼자 흥얼거렸다.
"간밤에 불던 바람 만정도화 다지 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으러 하는 고야!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떨어진 꽃잎도 꽃일 진데 옮기는 발길이 조심스럽다.
계룡산 하면 청소년 시절 마을 어른들을 통해 들은 정감록비결이 생각난다.
천황봉(天皇峰), 연천봉(連天峰), 삼불봉(三佛峰))을 잇는 산의 능선이 마치 닭의 볏을 쓴 용과 같다 하여 계룡산(鷄龍山)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특이한 이름에 예로부터 명산(名山) 중 영산(靈山)으로 미래 조선의 도읍지가 될 명당이며 정씨(鄭氏) 성(姓)의 진인(眞人) 정 도령이 출현하여 이씨조선을 멸망시키고 새 왕조가 새 나라를 열어 700년 사직을 이를 기운이 깃든 곳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말로만 듣던 신비의 계룡산, 이제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동학사 주차장에서 줄을 잇는 인파에 떠밀리듯 꽃눈 송이에 홀려 한동안 오르니, 천년고찰 동학사다. 내려오는 길 들르기로 하고 녹비홍수(綠肥紅瘦) 로 변해가는 동학 계곡을 따라 옛날 신선들이 은거(隱居)했다는 계룡 8경의 하나인 은선폭포(隱仙瀑布)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닭 머리의 계룡을 찾아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것이라곤 나무와 풀, 바위뿐이다. 이 거대한 산악 속에 한 점의 티끌이 되어 지척도 분간 못 하는 나의 홑눈에 거대한 계룡의 엎드린 모습이 보일 리가 만무하다.
전설 속의 영수(靈獸)도 벼슬이 탐났을까? 닭 모가지를 비틀어 머리에 얹은 탓일까? 승천도 못 하고 이무기로 엎드려 기다린 억겁 세월이 무색하기만 하다.
700년 도읍지의 산세를 보려던 나의 기대도 색 바램 한 권의 고서가 된 정감록같이 나의 가슴속에 묻어 두기로 했다.
녹색이 짙어지는 골짜기를 따라 흘려 내리는 봄의 왈츠를 들으며 한동안 오르니,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일까? 까마득한 인공계단이 지그재그로 걸쳐있다. 계단을 올라야 은선폭포를 볼 수 있다 한다. 망설여진다. 뒤따라오던 일행들이 더러는 포기하고 계곡 너럭바위에 퍼질러 앉은 모습도 보인다.
턱밑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다. 같이한 동료와 눈을 맞추고 한 계단 두 계단 난간을 의지해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전망대다. 예상외로 실망이다.
폭포 하면 웅장한 굉음과 물보라를 연상했는데 아득한 저 멀리 바위 계곡에 하늘에서 한 필의 무명베를 길게 늘어놓은 듯 너무나 조용하다.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선계의 풍광처럼 요원하게 느껴진다.
내려오는 길 오른쪽으로 까마득히 우뚝한 봉우리가 보인다. 계룡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쌀개봉이다. 산에 움푹 들어간 곳이 옛날 디딜방아 쌀개와 모양이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옛날 이곳에서 쌀이 나와 공양을 했는데 어느 한 스님이 욕심을 부린 이후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 오기도 한다.
동학사에 들렀다. 이 절은 724년 (신라 성덕왕23) 상원 조사가 작은 암자를 지어 수도 하였으며 그동안 많은 개축과 다양한 사연을 품고 있다. 그 이름도 몇 번 바뀌었다 한다. 동학사 하면 동학(東學) 난(亂)이 떠오르든 어름짐작이 빗나갔다. 학 바위 동쪽에 위치한 절이라 동학사(東鶴寺)라 붙여진 이름이다. 6.25동란으로 거의 파괴된 것을 1975년 개축하였으며 현재는 비구니 사찰로서 비구니 최초의 전문 강원(講院)인 동학사 승가대학과 동학사 화엄 승가대학원이 있다.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사찰경내, 하늘을 가리는 수많은 연등, 부처님오신 날이 한 달 보름이나 남았는데 저 많은 연등이 오실 부처님을 마중하듯 줄지어 기다린다. 부처님의 자비에 백팔번뇌를 달래려는 중생들의 마음을 달아 놓은 것 같아 가슴이 짠하다.
불자는 아니지만 저마다 연등에 밝힌 소원이 모두 다 이루어지길 마음속으로 합장 배례하고 문을 나왔다.돌아서는 발길이 허전해 뒤돌아보니 떨어지는 꽃잎이 나풀나풀 잘 가요 손짓한다.
2018. 4. 10
첫댓글 계룡산의 유래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전에 보았던 계룡산은 웅장한 산세와 함께 경치도 좋았습니다.
계룡산, 동학사에 오르며 만난 아름다운 풍광과 늦봄의 화사함, 동학사의 유래들을 섬세한 묘사와 상념이 어울린 아름다운 문장으로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룡산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저에게도 감정이입이 되어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힘이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그날의 정경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산과 절의 역사 속에 자연의 풍요로움이 함께 하고, 그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 있습니다.
다시 가 보고 싶어지네요.
계룡산에 두세 번 갔지만 눈 호사, 마음 호사만 하고 왔는데 선생님 필력이 부럽습니다. 산에 오르기만 해도 기분 좋으니 없는 재능 탓하지는 말아야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지난해 계룡산 신원사 법당 앞 포토존에서 계룡의 모습을 느껴보던 생각이 납니다. 전선생님의 섬세한 글을 통하여 계룡의 새로운 아름다운 모습을 느껴보게 됩니다. 떨어지는 꽃잎도 잎새마다 각종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테니 함부로 밟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음미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많이본 꽃비를 그냥 흘러보낸 것을 후회하였는데 선생님의 글을 통해 새롭게 느끼고 재조명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재능은 사람마다 다른것 같습니다. 사진도 아니고 글로서 그날의 아름다운 벚꽃을 잘그려 보는듯합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오랫만에 계룡산 복습을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최상순드림
동학사 부근에서 세 차례 숙박하면서 절 안을 구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가고 싶은 동학사입니다.
鷄龍山 닭의 벼슬을 쓴 용과같다는 뜻을 몰랐습니다. 그냥 슬쩍 훑어보면서 참 경치가 좋다라고만 느꼈던 곳을 이렇게 섬세하게 글로 써 주셔서 유래를 음미 하면서 새겨 읽었습니다.대구에는 삼월 말쯤 벚꽃이 눈꽃처럼 떨어졌는데 벚꽃이 눈꽃처럼 휘날려 쌓여진 꽃길을 밟고 이질녀가 간지도 두 달이 되어옵니다.화려한 꽃비가 손님을 맞았나 봅니다.
봄은 동학사, 가을은 갑사라는 말의 뜻을 그 날 알았습니다. 동학사는 봄 벗꽃이 예쁘고 갑사는 가을 단풍이 볼만하다는 것을. 그날 동학사 가는길이 꽃보라가 날렸습니다. 글을 읽으며 계곡따라 은선폭포가지 다녀온 정황이 다시 선명하게 재조명됩니다. 그 날의 정황을 잘 정리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계룡산과 동학사 그리고 낙화, 한폭의 산수화 같은 정감나게 구술한 글 잘 읽었습니다.
계룡산은 제가 소싯적에 자주 다니던 산입니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갑사에서 동학사로 많이 넘어다녔지요. 엣 생각이 새록거리며 추억에 잠기게 합니다. 기억을 되살려 하염없는 시간의 흐름도 깨닫게 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