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월) 이사야 47:1-11 찬송 559장
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
2.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3.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4.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5.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
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7.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9.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11.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개역 개정)
- 바벨론 제국의 멸망 예언과 그 이유 -
46장 1-2절에서 바벨론 우상의 파괴를 예언한 데 이어
47장에서는 그런 우상을 섬기던 나라 바벨론 제국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인 원인 곧 여호와께 대한 신앙 여부가
정치적, 국가적인 흥망 성쇠를 좌우하게 된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본장의 전반부인 오늘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1-5절은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여 수치를 당하리라는 예언을,
6-11절은 그런 멸망의 이유로서 바벨론이 선민 이스라엘을 욕되게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 것(6, 7절)과
‘나 뿐이라 나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함으로써
여호와의 절대적인 권능에 도전한 교만(8-11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의 교만은
결국 우상과 우상 숭배는 인간 자신의 타락한 죄성과
자기가 신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은 당신 앞에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며
따라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일 수밖에 없다(잠16:18; 벧전5:8)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11절)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바벨론에 대하여 그들에게 재앙이 임해도 그 근원을 알지 못한다는 것,
손해가 이르지만 물리칠 능력이 없다는 것,
파멸이 홀연히 임할 것이지만 알지 못할 것이라 말씀한다.
즉 바벨론에 임할 재앙을 삼중으로 선언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11절 서두와 말미에 제시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재앙과 파멸이 임해도 ‘알지 못할 것’이란 사실이다.
이는 일면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음에도 그 출처를 알지 못함을 나타낸 것,
즉 그들의 불신앙을 지적한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그들이 죄와 거짓에 미혹되어 심판이 오고 있으며
그 징조를 명백히 보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함을 나타낸 것,
즉 그들의 영적 무지몽매(無知蒙昧)함을 지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인생에 어려움이 닥칠 때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그러한 어려움이 닥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문제가 닥치는 이유를 알게 되면 그것이 닥치기 전에 미연에 예방할 수 있고
또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현재 겪는 어려움, 그리고 장차 닥칠지 모르는
어려움들에 대해서도 잘 대처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닥칠 때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 경우 속수무책으로 문제 앞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고
예방은커녕 현재 있는 어려움으로 인해 낙심하고
장차 언제 닥칠지 모를 더 큰 문제 앞에 절망하며 공포에 떨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문제를 감당하지 못해 파멸의 자리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그 어떤 질병보다
수치스럽고 절망적인 질병인 나병(한센병)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는 거룩한 회중에서 쫓아내야만 한다.
이는 그들에게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복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소망도 갖지 않았음을 나타내준다.
즉 철저히 절망적인 삶을 사는 자들로 인식했다.
어째서 나병을 그처럼 절망적인 것으로 여기며
가장 저주스럽고 치욕적인 질병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나병이 단지 불치병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살이 썩고 뼈가 부스러져도 고통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땅히 아파해야 하고 고통스러워 해야 함에도 이를 모르는 것이며
그러다 점점 쇠약해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바벨론은 영적 나병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번영과 형통을 인하여
점점 흥청망청한 삶, 방탕하고 패역한 삶을 살았고
자신들의 힘만을 과신하면서 지속적인 안정과 번영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사실 그 나라는 점점 썩어 문드러져가는 나병환자의 살처럼 쇠약해져가고
있었으며 장차 결정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그 나라에 임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강포와 패역, 사치와 방탕, 불의와 거짓의 노예가 되어
자신들의 나라가 재앙, 손해,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알지 못하였다.
이처럼 어리석은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
그로 인한 궁극적인 파멸을 다루는 본문의 말씀은
순간순간 범죄를 저지르면서 강팍해지기 쉬운 본성을 지닌
우리 모두가 깊이 각성해야 할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시도 때때로 은혜에서 멀어질 때 부정직한 일, 악한 일, 거짓된 일을
저지르면서 그것을 회개하기보다 애써 감추려 하고 도리어 자신보다
악한 일을 하는 자들도 있다고 합리화시킬 때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처럼 악한 습관을 타성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죄를 짓는 것보다 더 무서운, 죄를 합리화하는 단계에 이르고 만다.
이같은 단계에까지 이르면 그는 결국 하나님의 징계가 임해도
더욱 마음을 강팍히 할 뿐이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같은 상태에서 심판을 맞게 되면 문제 해결의 길,
즉 참된 회개의 길을 발견할 수조차 없으므로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우리는 스스로 저지르는 범죄와 악행, 거짓으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혹 우리의 죄로 인해 아파하고 완악함으로 슬퍼해야 함에도
나병환자처럼 무감각하게 이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속히 능하신 치유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정직한 마음을 새롭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선한 양심, 거듭난 새 생명을 잘 지키며 살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무디고 악한 삶에서 자유케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