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구정 명절 차례를 시작으로
한 달 남짓한 간격으로
시아버지제사, 시할아버지제사, 시어머니제사가
줄줄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일이 추석 전 까지는 마지막 제사인
시어머니제사다.
난 맏며느리가 아니다.
둘째 며느리는 더 더군다나 아니다.
아들만 다섯인 시댁의 넷째 며느리다.
그럼에도 우리집에서 내가 제사를 모시게 된 건
1995년 중풍으로 쓰러져
말씀도, 거동도 못하시고 고생하시던 시아버지를
1997년 추석 전에 우리집으로 모시고 오면서
제사도 함께 모시고 오게 되었다.
맏며느리도 아니면서
거동도 못하시는 병석의 시아버지를 모시고
한 집안의 제사를 모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몇 십년 뒤에 나와 남편에게도 똑같이 찾아 올 수 있을
"만약에"란 상황을 가정해 봤을 때
과연 내자식들은 우리부부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몇 날 며칠을 두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해서 내린 결론이
나 하나 희생해서 세상 살아가는 순리에 순응함으로써
집안이 평안해지고, 형제지간에 우애가 돈독해지고
내자식들이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우면서
가정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면
그것으로 내 삶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였는데
올 해로 제사와 명절 차례를 모신 지 15년이 되었지만
지금 까지는 내가 내린 결론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왔다.
처음 추석 차례 준비를 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
한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식혜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진처럼 식혜물을 올리는 것이라면
차라리 수퍼에서 파는 것을 사다 올리면 수월할 텐데
우리 시댁은 식혜물이 아닌
식혜밥만 담아서 대추를 오려 고명으로 얹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식혜를 만들어야만 했다.
해서 시어머니께 몇번씩 묻고 또 물어가며
배우게 된 식혜 만들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처음 만든 거 치고는 제법 잘 만들었다."고
시어머니와 동서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해 주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고수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재료: 엿기름500g, 설탕1kg, 쌀밥2공기정도, 소금1작은술,물(10인분 밥솥 2개분량)
엿기름 500g 한봉지에 적당량의 물을 붓고 약 30분 정도 불린다.
그런 다음 두손으로 엿기름을 바락바락 주물러서
체에 걸러내면 요렇게 뽀얀 물이 나오는데
이과정을 3번 정도 계속해 준다.
고운 체로 물 위에 떠 있는
찌꺼기를 깨끗이 걷어낸다.
이상태로 엿기름가루를 3~4시간 가라 앉히는 동안
고슬고슬한 쌀밥 2공기 정도를 준비한다.
이정도 양이면
10인분 전기밥솥 2개의 분량이 나온다.
꽤 많은 양이지만
큰동서, 둘째동서, 막내동서
살짝 얼린 식혜를 무쟈게 좋아하는 우리딸 등
나누어 줘야 할 사람이 많아 항상 이정도 양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밥을 따로 하지 않고
냉동실에 있던 찬밥을 데워 이용했다.
두 개의 밥솥에 밥 한 공기씩 나누어 담고
설탕 2큰술을 넣어준다.
설탕을 미리 조금 넣어주면 밥이 훨씬 더 잘 삭는다.
주걱으로 밥과 설탕이 잘 섞이도록
골고루 저어준다.
우리집에 처음 와 보는 사람들이 하는 한결 같은 질문이 있는데
이집엔 도대체 왠 밥솥이 이렇게 많냐는 것이다.
식혜 만들 때 쓰는 밥솥이 두 개,
손님용으로 사용하는 전기압력밥솥에
가스불에서 사용하는 일반압력밥솥....
원래는 이 밥솥도 산 지 몇 년 안된 것인데
식혜를 자주 만들다 보니
압력보온밥솥으로서의 성능이 급격히 떨어져서
이 두 개의 밥솥은
식혜전용 밥솥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이 아이는 12년 된 보온밥솥이다.
밤 12시에 보온으로 버튼을 눌러 놓고
아침 7시에 일어나 밥솥 두껑을 열어보니
밥알이 아주 잘 삭아 서로서로 내기라도 하는 듯
귀여운 모습으로 둥둥 떠 올라 있다.
이쪽 솥엔 밥알이 거의 다 떠 올라 있는 듯...
큰 들통에 망소쿠리를 올려놓고 밥알을 건져낸다.
건져낸 식혜밥은 얼른 찬물에 헹궈서
물기를 최대한 빼고...
식헤물은 가스불에 올려 끓이는데
끓기 시작하면 설탕 1kg을 넣어준다.
설탕이 들어가면 이렇게 하얀 거품이 생기는데
깨끗이 걷어내고
한번 우루룩 끓어오르면 가스불을 끄고....
굳이 오래 끓이지 않아도 된다.
취향에 따라 생강을 넣고 끓이기도 하던데
난 엿기름 고유의 깊은 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소금 1작을술을 넣어 주었다.
비록 소금 1작은술이긴 하지만
넣었을 때와 안넣었을 때의 맛의 차이는 제법 크다.
똑같은 단맛이라도
깊은 맛과 가벼운 맛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식혜밥은 밀폐용기에 따로 담아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하고
식혜를 내 놓을 때 마다
찬 식혜밥 1큰술을 넣고 잣과 곱게 썬 대추채를
고명으로 얹어낸다.
잘 삭은 밥알이 동~~~동...
잣과 대추채와 어우러져 한결 맛깔스러워 보인다.
엿기름 가라 앉히고 삭히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사실 식헤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그리고 요즘은 초스피드로
간단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던데
이상하게 나는 나이가 들어 그런가?
약식도 그렇고 식혜도 그렇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통방식만을 고집하게 된다.
그 쓸데 없는 고집 때문에
늘 딸래미 한테 한 잔소릴 듣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