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물고기조차 환상적인 색상의 ‘드레스’를 갖고 있고, 뱀과 호랑이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신이 정말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신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호피 무늬 프린트하면 떠오르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로베르토 카발리가 12일(현지시간) 피렌체 자택에서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안사(ANSA) 통신은 카발리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로베르토 카발리 패션하우스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카발리는 피렌체에서 소박하게 시작해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름이 됐다”며 “카발리의 유산은 그의 창의성, 자연에 대한 그의 사랑, 그의 가족을 통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발리는 1970년대부터 화려한 동물무늬 프린트, 빛바랜 느낌의 청바지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맨앞의 발언은 2011년 패션지 보그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패션관이다. 뱀 무늬와 화려한 동물 프린트가 특징인 그의 옷은 1970년대 소피아 로렌, 브리짓 바르도 같은 스타들이 처음 선보였다. 나중에는 킴 카다시안부터 제니퍼 로페즈에 이르기까지 유명 인사들에게 사랑받았다.
1940년 11월 15일 피렌체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 쥐세페 로시는 유명한 화가였다. 부친은 광산회사 조사원, 모친은 재봉사였다. 자연스럽게 카발리는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피렌체 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해 섬유 프린팅을 공부하며 새로운 가죽 인쇄 기법을 발명해 프랑스 명품 제조업체인 에르메스와 피에르 가르뎅의 의뢰를 받기도 했다.
197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였고, 1972년 피렌체와 밀라노 패션쇼에 데뷔했다. 같은 해 프랑스 동남부 생트로페에 첫 부티크 '림보'를 열었다. 그는 남성복과 여성복은 물론 액세서리, 안경, 시계, 보석, 향수, 속옷, 신발 등을 디자인했으며 청바지 라벨과 아동복 컬렉션도 출시했다. 신축성 있는 샌드블라스티드(모래를 뿜어내 표면처리 한 것) 청바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카발리는 2015년 현역에서 은퇴했고, 2019년 파산을 겪는 등 재정적 어려움 끝에 회사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를 둔 민간 투자 회사에 매각했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 두 자녀를 길러냈다. 1980년 오스트리아 모델이며 미스 유니버스 준우승자인 에바 마리아 듀린저와 결혼해 세 자녀를 뒀다. 듀린저가 1977년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했을 때 심사위원으로 인연을 맺어 자신의 회사에 듀린저를 영입했다. 보라색 헬리콥터와 13ha 크기의 토스카나 농장을 소유했던 그는 지난해 동거하던 스웨덴 배우 겸 모델 산드라 닐손과 여섯 번째 자녀로 아들을 보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유명디자이너 조르조 아르마니는 소셜미디어에 성명을 올려 "토스카나의 열정"이 그리울 것이라며 "고인은 진정한 아티스트였으며, 프린트를 활용하는 데 있어 야성적이며 대단했고, 판타지를 매혹적인 의상으로 바꿀 줄 알았다"고 애도했다. 스파이스 걸스 출신 빅토리아 베컴 등도 추모 대열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