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520)– 사미자 씨, 축하해요!
온 국민을 분노케 한 국정농단의 참담한 시국과 동생의 힘겨운 투병으로 고통스런 날들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전날부터 잔뜩 흐리고 비가 내린다. 비바람 불어도 좋은 날 오기 마련. 불의와 시련 이겨내고 공의로운 나라, 행복한 일상이 회복되기를 염원하며 밝은 이야기로 우울함을 달랜다.
열심히 보는 TV프로그램 중 KBS1 '우리말 겨루기'가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교양물이다. 학창시절 교과목 중 자신이 붙고 흥미 있는 과목은 국어, 대학 입학시험 면접 때는 국어과목 성적이 좋다는 면접위원의 칭찬을 들었다. 그런데 요즘 방영되는 우리말겨루기의 수준은 따라잡기 힘들게 까다롭고 어렵다. 간혹 나이 든 도전자가 나타나면 자연스레 응원하면서도 순발력과 재치가 젊은이들에게 뒤지는 모습이 내 일인 양 안쓰럽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저녁에 방영된 우리말겨루기에서 칠순 후반의 탤런트 사미자 씨가 젊은 출연자들을 제치고 우승한 후 명예달인에 도전하여 연예인 최초로 대망의 우리말 명예달인을 거머쥐었다. 출중한 실력과 단단한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오를 수 있는 달인등극을 축하하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을 다 맞춘 저력에 경의를 표한다.
지난 14일 저녁, KBS1 우리말 명예달인에 오른 사미자 씨
* 사미자 씨의 황혼 열정과 패기를 다룬 취재 기사를 덧붙인다. 이 기사를 본 아내의 반응, 아름답기도 하고 지혜롭기도 하네요!(조선일보 2016. 11. 19 백수진 기자)
"황혼에도… 눈만 뜨면 공부할 생각에 신나"
"사전을 탁 젖혀서 눈에 띄는 단어를 내 걸로 만든다고. 열 개를 보면 아홉 개는 흘러가버리지만 한 개는 머리에 남아요."
배우 사미자(76)가 손녀와 함께 쓴다는 국어사전을 펼쳐 보였다. "'지지부진'이란 단어가 눈에 띄면 '매우 더딘 것'이란 뜻을 새기고 한자도 눈에 익혀놓는다"고 우리말 공부법을 공개했다. 그는 지난 14일 방송된 KBS1 '우리말 겨루기'에서 우승해 연예인 최초로 우리말 명예 달인에 올랐다. '매일매일/매일 매일' '되려는지/될려는지'처럼 헷갈리는 맞춤법 문제도 단번에 풀었다.
'우리말 겨루기'는 다시 보기를 통해서라도 챙겨 본다는 사미자는 "꼴찌만 면하자는 심정으로 나갔는데 우승을 하다니 운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십 통의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지만 "남편이 건넨 '당신, 존경할 만해'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고 했다.
상금 1000만원은 "헌 소파를 바꿀지, 오래된 냉장고를 바꿀지 고민하다 머리가 아파 그만 생각하려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우승 비결을 묻자 "40대까지는 일주일에 한두 권씩 한국 작가 단편소설집을 독파했다"면서 "젊은 사람들 공부도 좋지만 독서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19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로 입사해 드라마와 영화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지금도 연기할 때 장단음과 악센트에 유의한다. "'한강이 흐른다'라고 말한다면 '한'을 길게 발음해줘야 부드러워요. 요즘 사람들은 무시하기 쉬운데 나는 후배나 감독한테도 꼭 짚고 넘어가요."
그는 여섯 살 손자한테 영어를 가르치고 중국어 학원도 틈틈이 다니는 '학구파 할머니'다. 영어 얘기가 나오자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87년 전에)…"라며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외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첫 문장부터 마지막까지 외워보라고 하셨다"면서 "그때 하도 달달 외워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중국어 학원도 2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수업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예습한다. 처음엔 같은 반의 젊은 친구들이 "한·중 합작 드라마라도 하냐"며 의아해했다. "아무 목표 없이 좋아서 시작했어요. 무언가를 배우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2년쯤 다니니까 이제 바빠서 안 나가면 반 친구들이 왜 안 나오느냐고 난리예요."
지치지 않는 학구열의 원천을 묻자 "형편이 어려워 못 배운 게 한이 돼 그런지 배움에는 허영기가 있다"며 웃었다. 교과서 살 돈이 없어 한 달 치 공부할 양을 미리 베껴 써 '명필'이 됐을 정도였단다. "지금도 글을 따라 써보는 걸 좋아해요. 직접 써보면 기억에 더 오래 남거든."
다른 퀴즈 프로그램 도전도 염두에 두고 있다. "문제랑 겨뤄보는 느낌이 좋다"며 "왕년에 '가족오락관' 나가도 우리 팀이 꼭 이겼다"고 자신만만해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퀴즈처럼) 내가 잘 풀어나가야 할 하루가 또 시작됐구나' 되뇌어요. 저물어가는 황혼에 도전할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진 데 감사하지요‘
첫댓글 사미자님께 이런 면모가 있으신줄 미처 몰랐습니다. 무서운 시어머니 역할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배움에 대한 열정을 허영기라 하시다니 ㅋㅋ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사미자님의 허영기마저 본받고 싶은 오늘은, 촛불을 동지삼아 광장에 나가기 좋은 날씨였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11.20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