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간사하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계묘년(癸卯年)의 여름…, 긴 장맛비에 물은 넘치고
산사태와 저지대 침수 등…, 크고 작은 재해는 비껴가지 않았다.
'23. 6호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바짝 긴장했던 나날들…,
폭염은 또 왜 그리 지독했던가.
정수리가 열기에 데어 벗겨지기라도 한 듯
가마솥 열기를 넘어 용광로 찜통더위가 세상을 덮쳤다.
이곳저곳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그 긴 여름의 폭염이 끝나고 어느새 9월의 중순이다.
끝물여름의 따가움이 남아있긴 하지만
조석(朝夕)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는 건 이미 가을임을 말한다.
낮엔 아직까지도 선풍기와 에어컨을 멀리 할 수 없지만,
잠을 청한 새벽녘엔 밀려오는 한기(寒氣)에 어김없이 열린 창문을 닫는다.
문득 '춥다'는 느낌…, 밀쳐 둔 홑이불을 끌어당겨 아랫배를 덮는다.
행여 배탈이라도 날까, 감기라도 들까, 나이 든 몸뚱이가
잘못 반응이라도 할까 봐 바짝 신경을 쓴다.
그러고 보면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염에, 찜통더위에 못살겠다고 하소연했건만
금세 춥다고 엄살을 피우며 난리법석을 떠는 걸 보면….
덥고 춥고 포근하고 선선하고…, 인간의 감성이란 게 참으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감정조절에 실패하여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감각을 오각(五覺)이라고 하던가.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촉각(觸覺) 미각(味覺)…,
그리고 이름하지 못할 감각기관을 Feel(느낌)이라고 하던가.
어떤 이는 느낌으로 살고 느낌으로 죽는다고 할 만큼
자신의 오각과 촉(觸)에 지나친 신뢰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 가을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 봄이라면 신록이 무성한 계절이 여름,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이 곧 가을이요,
다시 올봄을 준비하며 충분한 휴식을 갖는 계절이 겨울이다.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이 가을에 어찌 간사함을 품을 수 있을까.
조금은 덥더라도 또 조금은 춥더라도 그저 포근하다고, 선선하다고…,
좋은 듯 즐거운 듯 또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자.
간사스러움보다는 너그러움…, 보다 좋은 감정을 가진 마음일 테니.(2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