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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산악인 허영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허영호(64·한국
히말라얀클럽) 대장이 세계 최고봉 에베
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했다고 21일 밝혔다.
현존하는 국내 등반가 중 최고령의 기록
이다.지난달 10일 한국을 떠난 허 대장은
원정 42일째인 21일 오전 9시(한국시각) 정상에 섰다.
1987년 이래 개인 통산 6번째 에베레스
트 등정이다. 이번 원정으로 허 대장은
본인이 보유하고 있던 국내 최다 에베레스
트 등정 기록을 갱신했다. 2007년 당시
66살의 나이로 정상에 오른 고 김성봉 대장에
이어 두번째로 고령의 기록이다.
▶ 2016년 오늘,
미 국무부 "북한, GDP 대비 국방비지출 세계 1위"로 발표했다.
미국 15위, 러 20위, 한국 47위, 중국 68위, 일본 136위
전 세계에서 경제적 능력에 비교해 국방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곳이 북한이라는 미국 국무부 보고서가 발표됐다.
22일(현지시간) 미 국무부의 '2016 세계 군비지출 보고서'에 따르면 구매력평가(PPP)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에서 북한은 23.3%로 1위에 올랐다. 단순하게 비교했을 때 전체 경제활동 가운데 4분의 1에 가까운 규모가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군사비 확충에 쓰였다고 해석될 수 있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1년간 평균값을 비교한 이 보고서에서 북한의 GDP 대비 군비는 2위인 오만의 11.4%에 비해 두드러지게 높았다.
사우디아라비아(8.5%)와 남수단(8.4%), 에리트레아(6.9%)가 3∼5위였고, 6위인 이스라엘(6.5%)이나 7위인 요르단(6.3%)에서도 경제규모 대비 군비지출 비중이 높은 국가였다.
한국(2.6%)은 47위였고, 주요 국가 가운데 미국(4.3%)은 15위, 러시아(3.8%) 20위, 영국(2.3%)은 53위, 중국(2.0%)은 68위, 일본(1.0%)은 136위였다.
북한은 노동가능인구 대비 군인 비율에서도 7.9%를 기록하며 에리트레아(8.1%)의 뒤를 이어 전 세계에서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군사비 자체만으로 볼 때 한국은 11년간 평균 기준 301억 달러로 35억 달러인 북한과 비교해 약 8.5배였다.
▶ 2010년 오늘,
베이징 당국, 자동차 판매량 저감조치 발표.
중국이 도심 배출가스 저감을 위해 현금을 지급하는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차이나데일리는 13일(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시 발전개혁위원회가 지난 11일부터 24시간 이상 주차한 운전자에게 홍바오(紅包, 현금봉투)를 지급하는‘매주 하루 덜 운전하기’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의 소유주는 24시간 동안 차량을 운행하지 않고 주차한 경우, 최소 0.2 위안(한화 약 33원)에서 최대 0.7 위안(116원)의 홍바오를 받을 수 있다. 운전자는 주행 전후 24시간이 지난 상태로 주행기록계 사진을 중국 모바일 메신저 어플리케이션 위챗(WeChat) 내의 마련된 탄소거래 플랫폼에 업로드하면 홍바오가 지급되는 방식이다.
또 한달 이상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15위안(2495원) 가량의 홍바오를, 대기 오염이 심각한 날에는 홍바오가 2배로 지급된다.
한편, 베이징시는 570만대에 달하는 베이징 차량등록대수를 제한하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차량번호판 경매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요일별로 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요일제를 실시하고 있다.
출처 sykim@dailycar.co.kr
▶2003년영화 `실미도` 개봉
684 북파부대 |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32년을 숨겨운 진실... 이제는 말한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 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설경구 분) 역시 어두운 과거와 함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된다. 그런 그 앞에 한 군인이 접근, '나라를 위해 칼을 잡을 수 있겠냐'는 엉뚱한 제안을 던지곤 그저 살인미수일 뿐인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하던 인찬,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 그곳엔 인찬 말고도 상필(정재영 분), 찬석(강성진 분), 원희(임원희 분), 근재(강신일 분) 등 시꺼먼 사내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그렇게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 기관원에 의해 강제차출된 31명이 모인다.
영문 모르고 머리를 깎고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들, 그들에게 나타난 의문의 군인은 바로 김재현 준위(안성기 분),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는 한 마디를 시작으로 냉철한 조중사(허준호 분)의 인솔하에 31명 훈련병에 대한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684 주석궁폭파부대'라 불리는 계급도 소속도 없는 훈련병과 그들의 감시와 훈련을 맡은 기간병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하에 실미도엔 인간은 없고 '김일성 모가지 따기'라는 분명한 목적만이 존재해간다.
▶2002년친척초청받은 40세이상 해외동포 최장 2년간 서비스업에 취업허용
▶2000년시인 서정주 타계
▶1997년일본의 영화배우 미후네 도시로 별세
▶1994년프랑스 여객기, 알제리 공항서 납치
GIGN!40초!
https://youtu.be/Q7a5D3sMJKM
1. 사건 개요
1994년 12월 24일 알제리 알제공항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GIA가 에어 프랑스 AF8969편을 납치해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 충돌시키려 했으나 도중에 급유를 위해 착륙한 마르세유 공항에서 프랑스의 대테러부대 GIGN에 의해 모두 제압당한 사건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앞서 처형한 3명의 인질들을 제외하고는 GIGN의 진압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다.
1.1. 알제리에서의 인질극
사건 당시 알제리는 내전 중이라서 굉장히 위험한 곳이었다. 운항 도중 대공 사격에 피격될 위험도 있고 해서 에어 프랑스가 운영하는 프랑스-알제리 노선은 오직 지원자만 받아서 운항을 하고 있었다.
1994년 12월 24일, 알제리 알제공항에서 에어 프랑스 AF8969편이 알제리에서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4명의 보안 요원들이 기내로 들이닥쳐 여권을 보며 승객들의 신원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권을 보며 승객들의 인적 사항을 파악했다.
그러는 동안 8969편의 출발은 계속 늦어져갔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알제리 측이 8969편을 에워쌌다. 그러자 보안 요원들은 본색을 드러내 자신들이 이슬람 무장 단체임을 알리며 승객들을 AK-47 소총과 UZI 기관단총, 권총, 폭약 등으로 위협해 인질로 잡았다.
대치 상황이 지속되자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에게 상황을 해결하라고 닦달했다. 테러리스트들의 리더인 압둘 압달라 야히야(Abdul Abdallah Yahiya)는 이대로 프랑스로 향해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으나 알제리 정부는 군용 차량으로 활주로를 틀어막고 이륙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요구를 안 들어주면 8969편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이 먹히지 않자 테러리스트는 여권을 통해 신원을 알아낸 알제리 경찰을 끌어내 탑승문 밖에서 살해했다. 이들은 여자와 어린이는 보내줬지만 나머지 인질들은 계속해서 잡고 있었다. 또한 계속해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베트남 외교관을 한 명 더 살해했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군을 알제리로 보내 인질극을 해결하려 했으나 알제리 정부가 거절했다.
다음 날인 12월 25일, 테러리스트는 63명의 인질들을 풀어줬다. 알제리 정부는 테러리스트 리더의 어머니까지 끌고와 설득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리더는 오후 9시 30분까지 이륙을 허가해 주지 않으면 30분마다 인질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프랑스 대사관 소속 요리사가 살해당하고 말았다.
같은 날 자정 전, 알제리 정부는 결국 8969편의 이륙을 허가했다. 승객들은 이제 상황이 잘 풀려갈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1.2. 재급유와 기자회견
8969편은 연료를 재급유하기 위해 지중해를 가로질러 오전 3시에 프랑스 마르세유 프로방스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기 위해 8969편은 재급유를 요청했는데 당시 파리까지 가는데 필요한 연료는 9톤이었지만 테러리스트들이 요구한 연료는 27톤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리스트가 8969편에 항공유를 더 많이 실어 충돌 시 피해를 더 크게 하기 위한 수작임을 눈치채고 테러리스트들의 발도 묶어둘 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급유 차량을 보내지 않았다.이에 화가 난 테러리스트들은 오전 9시까지 급유를 해주지 않으면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나 프랑스 정부는 급유 담당 직원이 비행기에 접근하지 않겠다고 하는 중이라는 둥의 핑계를 대며 계속 시간을 끌었다.
한편, 기장은 굳이 파리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할 필요가 없다고 리더를 낚았고 리더는 기자들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질질 끌며 시간을 벌었다. 이 과정에서 인질 2명이 풀려나게 되었다.
결국 당초 요구했던 오전 9시는커녕 오후 5시가 되도록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프랑스 정부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대테러부대 GIGN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1.3. GIGN의 무력 진압과 피해
40초부터 보자. 기내로 진입하는 GIGN 대원과 부조종사가 콕핏 창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보인다.
30여명의 GIGN 대원들은 탑승 계단 차량 3대에 나누어 탑승한 채로 8969편에 접근하여 기체의 앞뒤 탑승문을 열고 기내로 들이닥쳐 테러리스트들과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기내에서의 혼란이 가중되는 동안 부조종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콕핏 창을 통해 뛰어내렸다. 부조종사가 뛰어내려 시야가 확보되자 GIGN 저격수가 콕핏에 있던 리더인 야히야를 사살했고, 혼란에 빠진 마지막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며 마침내 8969편의 인질극은 막을 내렸다.
GIGN 9명과 승객 13명이 부상당했지만 사망자는 앞서 살해당한 3명을 제외하곤 없었으며 테러리스트 4명은 모두 사살당했다.
그리고 총격전의 여파로 결국 해당 기체는 스크랩되었다.
2. 사건 후
이후 알제리 무장 단체는 이 사건을 보복하기 위해 가톨릭 성직자 4명을 납치해 살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GIGN 대원들과 승무원들은 이후 국가적 주목을 받으며 영광을 얻었다. 당시 인질 구출 작전을 지휘한 드니 파비에(Denis Favier) 소령은 후에 올랑드 정권에서 대장으로 진급해 프랑스 국가 헌병대 사령관을 역임한다.
이후 테러리스트들이 8969편을 파리 에펠탑에 충돌시키려던 것이 확인되면서 프랑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 이후로 테러리스트들은 하이재킹의 결말은 결국 대테러부대에 의해 진압당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비행기를 납치해 자폭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폭파해버리는 쪽으로 테러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7년 후, 미국 뉴욕에서 비슷하지만 훨씬 더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며 전 세계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 어썰트가 2011년 3월 9일 프랑스에서 개봉되었고, 국내에서는 2012년 5월 10일에 개봉했다.
항공 사고 수사대 시즌 2에서 '하이재킹(The Killing Machine)'라는 제목으로 해당 사고를 다루었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의 GIGN 오퍼레이터 중 하나인 몽타뉴가 이 작전에 참가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단, 뒤에서 백업을 맡은 건지 직접 기내로 들어간 것인지는 불명. 또한 게임의 맵들 중 하나인 대통령 전용기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1991년김정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김정일.
▶ 1990년 오늘,
불교방송(BBS), 성탄의 의의를 소개하는 한편 크리스마스 캐롤송의 하나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방송.
https://youtu.be/w9QLn7gM-hY
▶1990년알바니아 난민 대규모 탈출 시작
▶1987년산악인 허영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
▶1983년방글라데시, 소련 외교관 6명 추방
▶1983년해운회사 20개로 통폐합
▶1983년폴리사리오 게릴라 한국어선 습격 선원 3명 납치
▶1982년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 사망
▶1980년국민은행, 국내 첫 야간금고제 실시
▶1979년정승화 조사결과 발표
▶1977년페루의 대통령(1968-75) 벨라스코 알바라도 사망
▶1976년일본, 후쿠다 내각 출범
▶1970년비적성공산국과의 무역개방(무역거래법개정안 국회통과)
▶1968년아폴로8호, 첫 우주 TV생방송
12월 21일, 촬영한 아폴로8호의 승무원들
▶1967년중국, 제7차 핵실험(20kt 짜리)
▶1966년월남 다낭서 미국수송기 추락 145명 사망
▶1966년소련 우주선 루나13호 달표면 연착륙 성공
▶1965년공화당 항명파동으로 7의원 징계
▶1964년인도, 해일로 5백여명 사망
▶1963년쿠바침공 포로 공수 완료
▶1963년뉴욕국제공항, 케네디공항으로 개칭
▶1962년콩고서 유엔군소속 부대와 카탕가군이 충돌
▶1961년KBS-TV 시험방송
▶1959년경제개발 3개년 계획 국회통과
▶1958년국가보안법 여당의원 단독으로 통과-
국가보안법 파동
법안이 통과된 후 기뻐하고 있는 자유당 의원들
▶1957년일본 NHK방송국, FM방송 시작
▶1953년뉴질랜드 웨오리 부근 철교서 열차탈선사고. 115명 사망
▶1951년리비아, 영국-프랑스로부터 독립
▶1946년프랑스 제4공화국 발족
▶1943년일본, 징병(徵兵)적령을 1년 인하
▶1934년시인 김소월 사망
▶ 1925년 '런던 이브닝 뉴스'에 '공돌이 푸' 처음 등장
귀엽지만 조금 둔한 곰돌이 푸는 1925년 12월24일치 <런던 이브닝 뉴스> 신문에 꽁트로 처음 등장했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앨런 밀른이 쓴 이 이야기는, 그가 네살짜리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을 데리고 런던 동물원에 갔다가 영감을 받아 지어낸 것이다. 이 동물원에 있던 캐나다 육군 수의사 해리 콜번 대위가 제1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으로 선물한 위니페그란 이름의 곰이 곰돌이 푸의 모태이다.
곰돌이 푸의 모험은 밀른이 아들에게 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곰돌이가 꿀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숲 속에서 일어난 일들로 구성돼 있다. <곰돌이 푸>에는 내성적인 피글렛(돼지), 정열적인 티거(호랑이), 우울한 이요르(당나귀), 캉가(캥거루), 토끼, 올빼미 등 친구들이 등장한다.
<곰돌이 푸>는 1926년 처음 출판됐으며 이후 시리즈가 잇따라 나왔다. 밀른이 숨진 뒤 1961년 판권이 미국의 디즈니로 넘어갔으며, 영화와 텔레비전 만화로 만들어져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1925년영화 ‘전함 포템킨’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개봉
찰리 채플린도 ‘최고의 영화’ 라고 격찬한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 이 1925년 12월 24일, ‘1905년 러시아혁명 20주년 기념식’ 이 열리고 있는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개봉됐다.
감독은 27세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영화는 1905년 6월 27일 흑해 북쪽의 오데사항에서 실제로 일어난 포템킨 타브리체스키호 반란을 소재로 했다. 데뷔작 ‘파업’ 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에이젠슈타인은 소비에트정부로부터 혁명을 기념하는 영화 ‘1905년’ 제작을 의뢰받았으나, 각본대로 혁명의 전 과정을 담으려면 12월 개봉에 맞출 수 없어 포템킨호 반란 부분만을 영화화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정신을 고취하려는 ‘선전 영화’ 로 기획된 이 영화는 에이젠슈타인이 만듦으로 해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그리고 영화의 스타일에서 혁명적인 전기를 이룬 걸작이 됐다.
에이젠슈타인은 이 영화에서 ‘몽타주(montage)’ 기법의 편집을 본격 도입, 관객이 영화에 자신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어로 편집이란 뜻의 몽타주는 빠른 컷과 서로 다른 샷(shot·장면)을 엇물려 편집함으로써 이미지들이 충돌하여 완전히 새로운 제3의 의미를 만들게 하는 기법. ‘전함 포템킨’ 중 오데사 계단 학살 부분은 몽타주 기법의 교과서적 장면으로 영화사에 기록된다. 코사크 병사들의 무차별 학살과 포템킨호의 입항을 보여주는 중간 중간에 유모차를 끌고 내려오는 여인, 안경 낀 창백한 지식인, 계단의 사자상을 교차 편집해 넣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이 장면은 학살의 잔혹함과 무참히 밟히는 민중들, 반란의 정당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오데사 계단 학살장면은 ‘언터쳐블’(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등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재현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이듬해 베를린 공개를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서 상영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에 이르러서야 개봉됐다.
▶1924년독일 카메라 `라이카A` 개발
▶1919년영국의 인도통치개혁법 성립
▶1915년조선광업령 공포
▶1907년독립운동가 이승훈, 오산학교 설립
민족대표 33인중 기독교측 대표, 이승훈
민족교육운동을 목적으로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 전경(1915년)
▶1906년세계최초로 라디오 방송 성공
페센덴에 의한 최초의 라디오방송 2개월 후, 뉴욕에서 정기적인 라디오방송이 시작됐다.
▶1897년손병희, 3대 동학교주가 됨
▶1891년구세군 자선냄비 미국에 첫 등장
▶1865년반(反)흑인단체 KKK단 미국에서 결성
1923년 7월 4일, 미국 뉴저지에서 백인우월단체 KKK단이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
▶1854년일본 안세이난카이(安政南海) 지진·쓰나미로 사상자 8만 발생
▶1822년프랑스 수학자 샤를 에르미트 출생
▶ 1818년 첫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Silent Night 탄생
ㆍ세계인의 캐럴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갖가지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에 울려퍼지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캐럴을 꼽으라면 단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탄절에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인데다 제목이 말해주듯 경건하고 조용한 크리스마스의 본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아기 예수가 탄생한 지 1818년이 되던 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부근의 오베른도르프라는 작은 도시에서 만들어졌다. 이 도시의 성 니콜라오 성당 사제였던 요제프 모어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신도들이 경건하게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작은 성당의 유일한 오르간이 크리스마스 직전 고장이 나면서 모어의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고칠 시간도 부족했고 새로 살 형편도 되지 않았다. 성탄 미사를 드릴 일이 막막해진 모어는 달빛이 내리비치는 밤 성당에서 기도로 상심을 달래다가 시상(詩想)을 얻어 즉석에서 노랫말을 만들었다.
이튿날 모어는 성당의 오르간 주자인 음악교사 프란츠 그루버를 찾아가 노랫말에 맞는 경건한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루버가 하루 만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성탄 전야 미사도중 처음 불렸다. 고장난 오르간을 대신한 기타 반주에 2명의 솔로가 리드를 하고 성가대원이 후렴을 부른 합창곡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최초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된 이 노래는 매년 성탄절마다 성 니콜라오 성당에서 불려졌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고요한 밤’은 탄생에 얽힌 사연과 함께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모든 나라에서 부르는 애창곡이 된 1937년 이 노래가 처음 불린 성 니콜라오 성당은 ‘고요한 밤 성당(Stille Nacht Kapelle)’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잘츠부르크에는 ‘고요한 밤 협회’도 생겼다.
현재 이 노래는 130개 언어, 193개 버전으로 번역돼 성탄절을 즈음해 지구촌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세계인의 캐럴’이 됐다. ‘시작은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구약성경 욥기의 구절은 마치 이 노래를 예언한 듯하다. 모어와 그루버에게는 가장 위대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다.
▶ 1779년 오늘,
조선 정조 3년 도성 안에 들어온 범을 잡기 위해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게 하라고 하명/ 한양 도성 안에 호랑이가 들어올 정도로 호랑이가 많았는데 호랑이를 잡느라고 민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라고 하명
▶1598년임진왜란 종전
▶1524년탐험가 바스코다가마 사망
▶1488년서거정 사망
▶1457년단종, 유배지에서 사약받고 사망
https://youtu.be/DKhpMtRCd_8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