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별일은 없고요?' 라는 안부의 인사를 들어야 할 정도로 밑바닥 삶을 살아간다.
' 뭐, 별개 있겠어요?' 라는 말은 자신에게 불행이 다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달랑 방 한 칸에 살아가는 모녀, 반지하 방 한 칸에서 폐지를 주워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녀 등 하루 하루의 삶을 근근히 살아가며 울고 난 뒤에도 또 다시 살아가야 하는 극빈한 이들의 모습이 곧 우리들의 모습인데 사람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으며 눈으로 지켜 보기를 힘들어한다. 마음으로는 측은하게 여기나 나는 그런 삶을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들과 거리를 두며 살려고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들에게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나마 그들을 이해하고 걱정해 주는 이들은 그들의 이웃들 뿐이다.
"별일은 없고요?"
라는 안부라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곁에 있으면 좋겠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의 본 뜻은 실제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고생 깨나 한 사람은 고생 하지 않은 사람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얘기다.
나의 삶도 가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1970년대는 다들 그렇게 살았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랑 단 둘이서 달랑 방 한 칸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작은 상을 펼치면 그 상이 공부하는 책상이 되고 책을 치우고 반찬을 올려두면 밥상이 되며 상을 치워야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 작은 방 한 칸에서 살았다.
지금 기억해 보면 주로 반찬은 젖갈류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방 한 칸에 비키니 옷장을 제외하고는 가재 도구를 둘 공간이 없으니 반찬은 최대한 상하지 않는 젖갈류가 최고의 대안이었고 곤로 하나에 냄비 밥을 지어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먹었던 창란 반찬은 지금도 먹으면 참 맛있게 먹는다. 꼬들꼬들한 명태 내장을 씹어 먹었던 그 맛.
책 속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손녀는 1,2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주인집 누구누구네라는 표현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난감해 한다. 반지하 단칸 방이긴 하지만 떳떳하게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데 왠지 주인집이라고 하면 세든 사람들은 종이라 말인가!
지금이야 원룸이라는 공간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 주인집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주인집 무서워 소리도 작게 내야 되고 이동도 자유롭지 못했던 어렸을 적 기억이 또렷히 기억이 난다.
'별일은 없고요?' 가끔은 이웃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물론 간섭으로 생각하고 불편해한다면 조심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