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歸蜀途)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매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銀河)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춘추』 32호, 1943. 10)
[어휘풀이]
-서역 : 중국의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 넓게는 중앙아시아 서부 아시아 인도를 포함하지만, 좁게는 지금의 신장 성(新彊省) 텐산 남로(天山南路)에 해당하는
타림 분지를 가리킴.
-파촉 : 중국 사천(四川)의 이칭(異稱), 파(巴)는 지금 사천성(泗川省)의 중경(重慶) 지방,
촉(蜀)은 지금 사천성의 성도(成都) 지방임.
-메투리 : 미투리의 방언, 삼이나 노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흔히 날을 여섯 개로 한다.
-은장도 : 은으로 만든 장도(粧刀). 장도는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늘 차고 다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
-이냥 : 이러한 모습으로 줄곧. 그냥
[작품해설]
이 시는 제2시집 『귀촉도』의 표제시로서 사별한 임을 향한 애끓는 정한과 슬픔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집 『귀촉도』에서 시인은 제1시집 『화사집(花蛇集)』에서 보여 주었던 ‘보들레르’의 악마 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적 사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귀촉도’란 흔히 소쩍새 또는 접동새라고 불리는 새로, 이 작품에서는 촉제(蜀帝) 두운(杜宇)가 죽어 그 혼이 화하여 되었다는[杜宇死 其魂化爲鳥 名曰 杜鵑 亦曰子規 ; 成道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죽은 임을 그리워하는 비통함을 표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귀촉도’는 말 그대로 ‘촉으로 돌아가는 길’을 뜻함으로써 멀고 험난한 길[촉도지난(蜀道之難)의 의미로도 사용되는 충의적인 용법이다. 1연에서는 ‘임’이 가시던 모습과 그 가신 길이 너무 멀기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음을 ‘삼만 리’라는 거리감으로 보여 준다. ‘삼만 리’가 상징하듯 그렇게 먼 곳으로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인 여인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눈물이 ‘아롱아롱’ 매힌다. 두견화인 ‘진달래꽃’은 새의 전설과 관련된 시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에서도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백의민족(白衣民族)이 갖는 근원적인 한(恨)을 느낄 수 있다.
2연은 돌아오지 못하는 임에 대해 ‘신이나 삼아 줄 걸’,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하면서 생전에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나타내는 한편, 임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지극한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비원(悲願)을 말하고 있다.
마직막 3연에서는 화자의 감정 이입인 ‘귀촉도’의 울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새는 그리움·서러움·후회스러움 등의 감정이 사무치고 북받쳐서 ‘목이 젖은 새’이며 ‘제 피에 취한 새’이다. 그러므로 새의 울음은 겉으로 표출되지 않고 안으로만 조여든다.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이기에 그 임을 생각하는 그리움의 고뇌는 안으로 응어리져 피맺힌 눈물을 이룬다. 따라서 귀촉도의 울음은 바로 시인 자신의 애끓는 슬픔이자 사랑인 것이다. 1연에서 ‘아롱아롱’ 하던 눈물이 마지막에 와서는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피맺힌 눈물로 깊어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임의 떠남 → ’화자의 회환‘ → ’귀촉도 울음‘이라는 기본 구조로 짜여 있으며, 사랑의 본질, 더 나아가서는 생의 본질이 이 같은 비극적은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작가소개]
서정주(徐廷柱)
미당(未堂), 궁발(窮髮)
1915년 전라북도 고창 출생
1929년 중앙고보 입학
1931년 고창고보에 편입학, 자퇴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
시 전문 동인지 『시인부락』 창간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시분과 위원장직을 맡음
1950년 종군 위문단 결성
1954년 예술원 종신 위원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 위원장 역임
1955년 자유문학상 수상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2000년 사망
시집 : 『화사집』(1941), 『귀촉도』(1948), 『흑호반』(1953), 『서정주시선』(1956), 『신라초』 (1961), 『동천』(1969), 『서정주문학전집』(1972), 『국화옆에서』(1975), 『질마재 신화』 (1975), 『떠돌이의 시』(1976),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1982), 『미당서정주시선집』 (1983), 『안 잊히는 일들』(1983), 『노래』(1984), 『시와 시인의 말』(1986), 『이런 나
라를 아시나요』(1987), 『팔할이 바람』(1988), 『연꽃 만나고 가는 사람아』(1989), 『피
는 꽃』(1991), 『산시(山詩)』(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민들레꽃』(1994), 『미당시전집』(1994), 『견우의 노래』(1997),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