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군의 기본화기는 M4A1 카빈이다. 물론 현재의 사양은 초기에 등장했던 플라스틱 총열덮개가 아니라 피카티니 레일이 달린 채로 지급된다. 레일이 보편화된 현용 4세대 M16에 대해서 알아본다.
피카티니 레일의 본격화
총기가 발전하면서 악세사리들도 발전해왔다. 스코프는 이미 AR-15가 등장할 때부터 손잡이 부분에 장착할 수 있는 다양한 마운트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점차 기술과 전술이 발전하면서 플래시라이트나 레이저표적지시기, 무배율 조준경 등 다양한 장비들이 등장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M16과 결합시키느냐 였다. 그것도 표준화된 시스템으로 결합시키는 것이 늘 고민이었다.
초기의 노력으로는 위버 레일(Weaver Rail)이 있다. 1950~60년대의 총기들은 마운트를 결합하는 마운트 장착대(mount base)가 없는 상태로 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총기에 마운트 베이스를 결합하는 것으로 건스미스(gunsmith)들이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 게다가 스코프를 만드는 회사는 각기 다른 규격의 마운트들을 만들어냈으므로 총기에 적합한 마운트 장착대를 찾는 것조차 복잡한 일이었다. 이런 사항에 착안하여 위버 옵틱의 윌리엄 위버(William Ralph Weaver)는 얇고 긴 금속판 위에 홈을 새긴 '위버 레일(Weaver rail)'을 만들어 다양한 총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위버 레일은 특별한 표준규격이 없이 다양하게 생산되었고, 심지어는 접속부 간의 간격도 별다른 표준이 없었지만 값싸고 편리한 솔루션으로 사랑받아 왔다.
1980년대에 이르자 총기 악세사리를 만드는 A.R.M.S. 컴패니가 이 위버 레일을 표준화하려는 노력을 시작면서 다양한 제품군을 발매했다. 규격화된 A.R.M.S 제품군이 인기를 끌자 미군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피카티니 조병창의 설계자인 게리 후츠마(Gary Houtsma)가 이에 착안하면서 군용 총기의 레일 기준을 만들면서 피카티니 레일이 등장하게 되었다. 피카티니 레일은 MIL-STD-1913이라는 군사규격으로 구체화되어 발매되면서 M16A2E1 등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M4에서는 상부리시버에 제식사양으로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피카티니 레일은 1995년 2월 3일 제식으로 군용사양으로 채용되었다.
레일 총기 시대의 개막
피카티니 레일은 마운트 부분의 각도, 두께, 간격 등을 구체화하였으며,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는 한 다양한 형태로 제작될 수 있었다. 애초에 M16이나 M4 계열의 총몸 상부(손잡이/가늠자가 있는 위치)에만 내장되어 있던 피카티니 레일 시스템은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90년대 초반에 콜트가 M16A2E4 소총을 만들었다. 이 소총은 M4와 동일한 플랫탑 리시버를 장착했으며, 나이츠 아머먼츠(Knights Armament Corporation; KAC)의 M5 레일을 장착했다.
M16A2E4는 'M16A4 5.56mm 소총'으로 1996년 미 육군에 의해 채용되었으며, 해병대는 1998년에 그 뒤를 따라 채용했다. 그러나 미 육군에 실제 지급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1월이며, 얼마 후 해병대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실제로 본격적인 배치가 이루어진 것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였다고 한다. M16A4는 콜트와 FN 양사가 생산하여 납품했다. 그리고 도트사이트의 보급이 끝난 후인 2009년부터는 M16A4에는 더이상 레일 장착식의 운반손잡이를 제공하지 않고 대신 BUIS(Back-up rear iron sight, 보조용 가늠자)를 장착했다. M16A4는 KAC의 M5 레일을 장착하면서 1997년 M16A4 MWS(Modular Weapon System; 모듈러 총기체계)로 재분류되었다.
사실 모듈러 총기체계를 먼저 시작한 것은 역시 M4부터였다. 미군은 1989년부터 SOCOM(Special Operations Command; 특수전사령부) 산하의 특수부대를 위한 레일 마운트인 SOPMOD(Special Operation Peculiar Modification) 키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SOMPOD를 장착하여 다양한 부가장비를 M4A1과 장착시키기 위함이었다. 개발이 시급한 상황에서 미군은 아직 개발 중인 제품과 다양한 첨단상용품들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였고, 이에 따라 SOPMOD 블록1 키트가 발매되었는데, 구성품은 다음과 같다.
KAC 총열덮개 레일 인터페이스 시스템 x 4 KAC 수직 손잡이 x 4 트리지콘 TA01NSN 4x32 ACOG(advanced combat optical gunsight) x 4 ECOS-N M68 근접전투용 광학조준기 x 4 TO&E(Tactical Ordnance & Equipment) 총기 멜빵 x 4 PRI 브라켓 마운트 (AN/PVS-14 야시경 용) x 4 인사이트 테크놀로지 AN/PEQ-2 적외선 표적지시기/조명/조준용레이저 x 4 인사이트 테크놀로지 브라이트 라이트 II 일루미네이터 x 2 트리지콘 RX01M4A1 리플렉스 사이트 x 2 KAC 퀵디태치 소음기 x 2 KAC 퀵디태치 M203 유탄발사기용 마운트 x 1 퀵어태치 M203 조준기 x 1 9인치 단축형 M203 유탄발사기 x 1 인사이트 테크놀로지 AN/PEG-5 가시 레이저 x 1 AN/PVS-17A 미니 야시 조준기 x 1 AN/PSQ-18A M203 주야간 조준기 x 1 보관 케이스 x 1
이후 SOPMOD 블록 I은 다니엘 디펜스(Daniel Defense) RIS II, 인사이트 M3X · M6X, 이오테크 553 홀로그래픽 웨펀사이트, 트리지콘 TA01 ECOS 4배율, BUIS II 등으로 구성품들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SOPMOD 블록 II로 업그레이드 되어 그간 광학장비 장착시 시야를 가렸던 삼각형의 가늠자를 아예 제거해버렸다. SOPMOD는 계속적으로 부속장비들을 업그레이드 함으로써 현대 전장의 요구를 만족시켜 나가는 중이다.
제식소총이 된 M4A1 카빈
M4 시리즈는 점점 전선에서 인기가 높아져만 갔다. 짧고 가벼우면서도 통상 교전거리인 300m까지 문제없이 교전이 가능한 M4를 병사들은 M16A2/A4보다 선호했다. 특전부대는 M4A1이 지급되었지만 나머지부대들은 3점사만 가능한 M4를 지급받았는데, 대부분 레일이 장착되면 M4 MWS로 재분류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101 공수와 82공수사단, 그리고 10산악사단이 있는 제18 공수군단 등 특수한 부대들에게만 지급되다가, 전투부대가 대부분 기계화를 완료하면서 스트라이커 부대등 다양한 부대들에게 M4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대테러전쟁은 M4A1이 미군의 제식화기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파병부대들은 점사기능의 M4 대신 연발기능을 갖춘 M4A1을 지급받았던 덕분이었다. M4는 대략 50만 정 가량이 미 육군에서 사용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M4A1 카빈은 현장으로부터 높은 불만의 대상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신뢰성이었다. M4A1의 신뢰성에 일격을 가하는 사건이 2008년 발생했는데, 바로 와낫 전투(Battle of Wanat)였다. 2008년 7월 13일 아프간 주둔 미육군 제173 공수여단 503보병연대 2대대 C중대 2소대는 웨이갈(Waygal) 계곡의 전초기지인 COP 칼러(Kahler)를 점령하고 있었다. 48명의 미군과 아프간군 24명이 배치된 전초기지에 100~200명 규모의 탈레반 반군들이 공격을 가하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미군은 9명이 사망하고 27명이나 부상하는 엄청난 손실을 겪었다. 바로 이 과정에서 M4A1 카빈의 문제점이 적극적으로 지적되었다. 전투에 사용된 대부분의 M4 카빈들은 고장으로 사격불능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와낫 전투에 사용된 M4들은 분당 90~150발이 발사되면서 혹사되었다. 실제로 당시 미군은 M4의 분당발사율을 15발을 권장하며, 비상시에 제압사를 위하여 분당 90발까지 하도록 권장했었다. 그러나 치열한 실전에서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한 병사는 전투에서 M4 3정을 말 그대로 태워먹었다. 어떤 병사의 경우 30분에도 미치지 않는 교전동안 12개의 탄창을 썼음에도 기능고장이 일어났는데, 분당 15발의 권장사격율을 지켰음에도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