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화) 이사야 47:12-15 찬송 563장
12.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
13.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
14.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덥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15. 네가 같이 힘쓰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 너를 구원할 자가 없으리라 (개역 개정)
- 멸망해 가는 바벨론을 구원치 못할 우상 숭배자들의 사술과 모략 -
바벨론 멸망 예언과 그 이유에 대해 언급한 어제 말씀(1-11절)에 이어
오늘 말씀에서는 멸망해 가는 바벨론 제국을 우상 숭배자들의 사술과 모략으로는
결코 구원치 못할 것이라는 조롱의 말을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의 기업 안에서 ‘영원한 여주인이 되리라’(7절)하고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8, 10절)하던 교만한 바벨론 왕들은
여러 가지 우상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들을 신으로 여기기까지 했다.(단3:1; 4:30; 5:4)
그러나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게 될 때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우상들도 결코 그 멸망 가운데서
그 나라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이사야는 이처럼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약 150여년 전에 미리 내다보고 본문의 예언을 주었는데
이는 우상의 헛됨(45:20; 렘10:5; 행14:18)과
그것을 섬기는 자의 종국적인 멸망 및 역사의 참 주인은
여호와라는 사실(단2:21)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신은 물질 문명과 과학이 극에 달하였고
진리가 왜곡되고 혼탁하여져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13절)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
12-13절을 보면 바벨론을 향해 자구책을 구사해 보라는 하나님의 요구가 제시된다.
그들 자신들을 구할 자구책으로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 ‘많은 주술’,
‘많은 계략’, 점성술로 규정할 수 있는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 중 대부분은 미신적이고 타락한 인간의 이성의 산물에 불과하다.
특별히 점성술로 규정되는 자구책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바벨론의 지혜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역시도 바벨론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결을 제공할 수 없는 것이며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허탄한 것, 악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말씀은 그들이 어떤 인간적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면 그들이 전부터 행해오던 것들,
자신들만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지혜를 교만하게 자랑하며 과신하고
그것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어리석은 일임을 알지 못하고
온갖 인간적인 자구책을 구사하고 있음을 냉소하는 말씀이다.
이러한 바벨론 사람들의 행태는 보다 폭넓게 생각하여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들, 하나님과 무관하게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사실 이러한 어리석은 자세를 취하는 것은
죄로 오염되고 타락한 이성을 지닌 사람들이 범하는 보편적인 오류이다.
이는 과거에만 아니라 첨단 과학 시대라 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범하는 오류이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유전자 복제 연구를 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의료계에서 큰 반향(反響)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불치 환자들을 치료하는 등
적극적인 면에서 사용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에 집착하는 자들,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맹신하는 자들은
단지 삶의 질이나 질병 치유에만 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더 나아가 그것으로 사람이
영생 불사(永生不死)도 이룰 수 있다고 믿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 이들의 자기 구원을 위한 노력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것이다.
이들의 시도는 한계를 지닌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망각한 것에 따른 것에 불과하며
결국 허탄한 것으로 규명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이란 한계에 매어 좌절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는가? 아니다.
물론 사람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고
스스로 영원한 안정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고 믿으며 동분서주한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결국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심판주 하나님을 구원주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간구한다면 거기에 소망이 있고
구원의 확실한 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동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었으나 사술, 점성술 등
허무한 일을 행하며, 인간적인 지식을 내세우는 바벨론과 달리
하나님 앞에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 심지어 가축들까지 금식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 앗수르의 니느웨가 파멸을 모면한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욘3:10)
또 인생의 막다른 곳에 처한 십자가에 못박힌 죄수가
주님의 자비를 구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자
주님은 즉시 그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사람이 자기 힘과 노력, 경험과 지식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에서 구원의 길을 얻을 수 있다.
심판에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죄짐을 벗고 죄책에서 자유하고자 한다면,
죽음과 멸망의 자리에서 건짐을 받고 생명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들의 지혜, 우리의 고집, 허무한 모든 생각들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직 심판의 말씀을 선언하신 하나님 앞에
그릇 행한 모든 죄악들을 다 아뢰고 회개하며
우리 스스로 구원의 길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생각,
거짓된 모든 노력들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노력이든, 지식이든 우리가 가진 그 모든 것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각성하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참 구원의 길에 접어들 수 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1: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