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은 습관, 재범부터 막아야
음주운전자 74%, 10년 이내 다시 적발
‘시동 잠금장치’ 등 기기 도입 고려해야
최근 학교 앞에서 멀쩡히 인도를 걸어가던 초등학생 넷을 차량이 덮쳤다. 그중 한 명은 뇌사 판정을 받고 하루를 버티다가 끝내 사망했다. 소주 반병을 마셨다는 60대 운전자가 가해자였다.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아이가 힘들어하니 놓아 줄 준비를 하라’는 의사 말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유족이 사망 선고를 받아들었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하교하던 어린이가 만취자 차량에 받혀 사망한 지 4개월 만이다.
초등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 인근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으로 묶어 차량 속도를 제한하는 등 각종 보호책을 펴고 있지만, 스쿨존 교통사고는 2020년 483건, 2021년 523건, 지난해 481건 등 꾸준하고 여전하다. 어린이들은 학교 앞에서 길을 건너다 불법으로 유턴하는 차에 치여 죽었고, 인도를 걷다가 굴착기에 깔려 죽었다. 학교 정문 앞에서 화물차 바퀴에 휘말려 들어가 죽기도 했다. 상당한 사고가 음주운전에서 연유됐다.
음주운전은 재범 비율이 유독 높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2회 이상 적발된 음주운전자(16만2102명)의 74%는 음주운전으로 최초 적발된 뒤 10년 내 다시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음주운전 재발을 막기 위해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사람은 아예 운전을 못 하게 하는 ‘시동 잠금장치(IID·Ignition Interlock Device)’를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 장치는 음주운전 적발 이력이 2차례 이상인 운전자는 일정 기간 차량에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장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운전자가 차에 탄 뒤 장치에 입김을 불어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을 때만 차에 시동이 걸리게 되어 있다.
미국에서 1986년 처음 도입된 뒤 캐나다, 호주, 스웨덴, 영국 등에서 쓰이고 있다. 국내에선 오비맥주가 책임 있는 음주(responsible drinking)를 실천하겠다며 일부 화물차 기사와 직원 차량에 시범 도입했다. 이 장치를 단 운전자들은 ‘술 마셔도 다음 날 시동이 잠길까 봐 과음을 자제한다’고 했다. 국회에 이 장치를 의무화하는 법안 5개가 올라와 있지만 상임위 문턱도 못 넘으면서 처리가 지지부진하다. 장치가 개당 200만 원 안팎으로 지난해 말 화물차 기사와 택시 기사 등 직업 운전자들이 국토교통부에 관련 장치 도입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건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 재범자의 경우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폭행 재범을 막기 위한 ‘전자발찌’도 2008년 도입 후 재범률이 90%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각지대는 있지만 효과가 어느 정도는 있음을 보여준다.
그간 우리 사회가 음주운전에 다소 관대했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가해자가 초범이다, 반성한다, 생계가 어렵다 등 다양한 이유로 실형은 극히 예외적으로 내려졌다. 연예인이 음주운전에 적발돼도 일정 기간 자숙한 뒤 다시 복귀하는 게 공식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만취 운전자가 모는 차량은 ‘도로 위 흉기’와 다름없다. 설령 사고가 안 나도 천만다행으로 사고가 안 났을 뿐 흉기를 휘두르고 다닌 범죄자로 보고 무(無)관용으로 대해야 한다. 취약한 어린이들을 흉기에서 보호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난해에만 음주운전으로 171명이 세상을 떠났다.
김유영 산업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