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텃세가 심하고, 독특한 생리와 기질이 있다. 교수 출신인 조 전 수석이 검찰 개혁 문제에서 검찰을 지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신임 장관은 검찰 권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대통령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 부담과 책임이 큰 반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법치주의 감시자로서 강단 있는 행보를 보일 수 있다. 자칫 법무부는 안 보이고 총장만 부각될 수 있다. 고생길이 훤한데, 굳이 장관은 안 했으면 한다."
참여정부 마지막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정성진(鄭城鎭) 전 국민대 총장이 2019년 6월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조국 전 민정 수석이 후임 법무부 장관으로 유력하단 소리를 듣고 털어놓은 소회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조국 서울대 교수를 대통령 민정수석으로 기용한 데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건 우려했다. 그는 국내 형사법학자 대다수가 독일에서 공부했는데, 조 전 수석이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며 꾸준히 논문을 내면 학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고, 그 뒤 무슨 일이 있었는가와 오늘날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그렇게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녔던 정성진 전 총장이 12일 오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연합뉴스가 유족의 전언을 전했다. 향년 84. 하자 없는 공직생활, 교직생활로 '법조 선비'로 통했다.
1940년 7월 경북 영천생인 고인은 경북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63년 제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대에서 석사, 경북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될 때까지 '엘리트 검사'로 출세 가도를 달렸지만,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때 '상속받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물러났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생각할 법한 그는 억울함을 언론에 토로하거나 반정부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변호사로 개업해 큰 돈을 만질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흔한 회고록이나 대담도 하지 않았다. 물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는 변호사로 개업해 어려운 이들을 돕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여튼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미국 스탠퍼드대와 일본 게이오대 객원교수를 거쳐 1995∼2004년 국민대 교수와 총장으로 일했다. 조 전 수석과는 미국에서 처음 만났는데 조 전 수석은 2016년 1월 저서 ‘절제의 형법학’을 친필 서명과 함께 정 전 총장에게 보냈다. 고인의 고희 기념 논문집에 조 전 수석은 ‘검사의 수사지휘권 행사의 범위와 한계’라는 헌정 논문을 기고했다.
정 전 총장은 소탈하고 겸손한 자세로 후배 법학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려 실무 경험을 살려 논문의 질도 매우 높았다. 늘 경청하고 상대를 존중해 많은 이들이 존경했다. 학회장, 학장, 총장 등은 자리를 탐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학교의 발전을 위해 뜻이 모아진 결과였다. 1999년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형사법학회에 거액의 기금을 출연, 그의 호를 딴 정암 형사법연구상이 제정됐는데 1호 수상자가 조국 교수였다.
2004년 국민대 총장직을 마친 뒤 노무현 대통령이 일면식이 없던 고인을 불러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옷 벗은 건 말이 안되죠'라며 감사원·국세청 등 사정기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반부패기관협의회 초대 위원장을 시켰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이후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옮겼다.
앞의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부패방지위원장으로 갔을 때 이미 공수처 법안이 만들어져 있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반대가 워낙 심해 무산됐지만 사실 공수처를 추진하기 위해 검찰, 학계에서 반감이 적었던 나를 데려간 것이었다."고 했다.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의 제의로 2007∼2008년 참여정부 마지막 법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2013년과 2017년 두 차례나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장을 맡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을 앞둔 초대 추천위원장 시절 당선자 의중에 있는 것으로 관측됐던 김학의 당시 대전고검장을 탈락시키고, 김진태 대검 차장과 채동욱 서울고검장, 소병철 대구고검장을 추천해 채동욱 총장을 탄생시켰다.
2017∼2019년 제6기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맡았고, 이화학당 이사로도 활동했다. 저서 '법치와 자유'(2010)가 있다. 홍조근정훈장, 한국법률문화상, 청조근정훈장, 법률소비자연맹 대한민국법률대상(2014)을 받았다.
고인의 삶을 돌아보며 조국 전 장관이 어떤 면에서는 스승의 면모와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인섭 교수는 생전의 고인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는데 고인이 조국 전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의 대립과 충돌에 대해 어떤 소회를 갖고 있었는지는 참 궁금한 대목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관련해 정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춘 한 인물이 떠오른다. 22대 총선 투표 한참 전인 지난달 26일 지인들과 식사 자리에서 들은 산부인과 의사 A의 얘기다. A는 지방의 한 병원 원장으로 웬만한 주민들은 그의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B는 "4~5개월은 훨씬 전인 것 같은데 A를 만났더니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하더라. 조국이 총선에 정당을 창당해 나올 것이 분명하며 그렇게 되면 상당히 높은 지지를 끌어낼 것을 확신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지난달 26일은 적지 않은 이들이 조국신당의 돌풍에 놀라워하며 이런 이례적인 현상이 어느 정도로 총선 결과에 반영될지에 식자층의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국 신당이 상당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에 대해 A가 설명한 분석이었다. A는 조국의 신당이 중도 진영의 지지를 끌어올 것이라며 우파 진영 에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 조국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더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라고 B는 전했다. A의 설명대로라면 총선 결과가 드러난 이후 이 대표와 조 대표의 협력 또는 갈등이 거론되고, 나아가 조 대표가 차기(재판 리스크 때문에 성사 가능성이 엷긴 하지만)나 차차기 대권 경쟁에 뛰어들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데 이를 내다본 것이 된다.
적지 않은 정치평론가들이 이번 총선 결과 우파 진영의 잠재적인 대선 주자 풀이 거의 바닥을 봤으며 그들의 중도 확장 능력이 없음이 실증됐다고 지적하는데 진보 진영 안에서만, 그것도 강성 지지층 의존이 심한 이재명 대표에 견줘 조국 대표가 상당한 확장성을 갖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지 모르겠다.(기회가 되면 A와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