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hua Abraham Nor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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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Abraham Norton (a.k.a. Norton I) |
출생 | c. 1819 영국[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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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0년 1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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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에이브러햄 노턴(Joshua Abraham Norton, 1819년경 ~ 1880년 1월 8일)은 1859년에 스스로 “미국의 황제이자[2] 멕시코의 보호자”[3]라고 칭한 것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기인이다. 노턴 1세로도 알려져 있다.
런던에서 태어난 노턴은 남아프리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849년에 아버지로부터 4만달러의 유산을 상속받은 후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왔다. 노턴은 처음에 사업을 했지만, 페루산 쌀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았다.[4] 그는 쌀에 관한 계약을 무효로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소송에서 패한 후에 노턴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그는 몇 년이 흐른 뒤에 돌아왔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자신이 미국의 황제라고 주장하였다.[5]
그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아니면 최소한 굉장히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았고,[6] 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은 그의 제왕다운 모습과 선언에 환호했으며, 굉장히 유명한 그의 "명령"은 군대의 힘으로 미국의회를 해산하라는 것과 여러 번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가로지르는 터널과 다리를 건설하라고 지시한 것이다.(그가 죽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베이 다리와 트랜스베이 터널이 건설되었다.)[7] 1880년 1월 8일에 노턴은 길가 모퉁이에서 쓰러졌고, 의료치료를 받기 전에 사망하였다. 다음날 3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가득 메우고 노턴에게 조의를 표했다.[8] 노턴의 이야기는 작가 마크 트웨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크리스토퍼 무어, 닐 가이만 등이 작품에 활용하였다.
그는 이민자로 아무런 정치적 권한도, 재산도 없이, 유일한 신하인 애완견과 같이 살았다. 당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신문에서도 그를 ‘황제 폐하(His Imperial Majesty)’로 불렀으며, 사람들도 그에게 일종의 소액 상품권을 현금으로 쓰게 해서,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했다.
[편집]에피소드
- 한번은 원칙을 고집하는 젊은 순경이 그를 체포했는데 전 시민이 분노를 터뜨렸다. 이에 경찰서장은 그의 직권으로 황제를 석방하면서 엎드려 사과했다. 시의회에서는 사절을 파견하여 황제를 알현했으며 이에 황제는 그일을 잊어버리기로 자비롭게 동의했다.
- 1861년 남북 전쟁이 터지자 그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링컨대통령과 남부연방의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를 샌프란시스코로 소환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다 출두하지 않자 그는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제국의 결정에 따르도록 명령했다.
- 언젠가 센트럴퍼시픽 철도회사가 황제가 식당차에서 무료로 식사하는걸 거절하자 그는 영업정지를 선고했다. 철도회사가 공개적으로 백배사죄하고 그에게 종신 무료 통행증인 황금빛 패스를 내주자 노여움을 풀었다
- 그의 사망을 보도한 신문기사는 그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노턴 황제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아무도 수탈하지 않았으며, 그 어느 나라도 약탈하지 않았다."
우습게 보이십니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좀 우습게 여겨지지만 그 어떠한 정치인보다 정직하고, 거짓말을 밥먹듯하며
국민을 등치는것을 기본권리로 생각하고, 국민들에게 진지하고 '정상적인' 공약을 내세워
국민들을 속여먹은뒤 등쳐먹는걸 기본으로 아는 정치인들과 달리 국민들에게
우스꽝스럽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그를보면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드는 진실한 기쁨을 준, 진정한 의미의 '정치인'이라고.'
이미 '고구려벌판'님께서 우리 유로파에 황제폐하에 대한 글을 올리셨었더군요.
엔하위키에도 재밌는 글이 있군요.
폐하의 명령으로 지어진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브릿지'
he self-proclaimed Emperor Norton I saw fit to decree several times that a suspension bridge be constructed to connect Oakland with San Francisco. Later in 1872, frustrated that nothing had happened, Norton decreed:
WHEREAS, we issued our decree ordering the citizens of San Francisco and Oakland to appropriate funds for the survey of a suspension bridge from Oakland Point via Goat Island; also for a tunnel; and to ascertain which is the best project; and whereas the said citizens have hitherto neglected to notice our said decree; and whereas we are determined our authority shall be fully respected; now, therefore, we do hereby command the arrest by the army of both the Boards of City Fathers if they persist in neglecting our decrees.
- Given under our royal hand and seal at San Francisco, this 17th day of September, 1872.[14]
Emperor Norton's early work at promoting a bridge between the city and county of San Francisco and the city of Oakland and Alameda County was commemorated on December 14, 2004, when the San Francisco Board of Supervisors approved a resolution calling for the new eastern span of the bridge to be named "The Emperor Norton Bridge".[14] The resolution was introduced by San Francisco County Supervisor Aaron Peskin. Neither the city of Oakland nor Alameda County passed any similar resolution.
첫댓글 인생이 로맨틱하다.
제대로 보실줄 아시는군요.
신문기사가 마음에 와닿는군요
ㅠㅠ
미국판 허경영이네요. 아 허경영보다는 나은 듯?
엔하를 보시면 '비교불허'라고 되어있습니다.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게요. 사람들이 참 너글너글한게 유쾌하내요.
이사람 장례식날 일식이 발생했다죠
그야말로 하늘이 인정한 황제!
하늘에서 내리는것이 황제니까요.ㅋ
아주 긍정적으로 불러주자면 노자의 치를 구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