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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정맥(인천구간)을 탐방하다
나달세상(나종필)
o일시: 2020년 6월6일 ㅇ날씨:맑음(27도)
o코스: 호봉산-함봉산-원적산4.3km-천마산1.2km-중구봉4.7km-계양산
o거리:16.07km(만보계30,347보)
o소요시간: 소요시간5시간58분(시간당2.6km)
부평도서관(용포샘)산행시작:8:09
호봉산이정표 및 정상:8:40
장고개:9:09
함봉산정상:9:27
원적산등산로입구:9:42
원적산정상(이정표):9:55
원적산정상:10:08
한신빌리지입구:10:47
고속도로건널목:10:50
하나아파트(201동)11:03
천마산등산로(안내):11:05
천마바위:11:32
천마산정상(새별정):11:28
길마재쉼터:12:39
중구봉정상:12:48
징매이고개(생태통로):13:07
중심성터:13:10
피고개(이정표):13:12
계양산정상:13:48
계양산성탐방로:14:51
계산역지하철입구:15:04
오늘 산행은 한남정맥중 인천구간으로 호봉산을 지나 함봉산, 원적산, 천마산, 중구봉
이어 계양산정상에서 계양산성을 따라 인천지하철계산역으로 날머리 하고자 한다.
먼저 한남정맥에 대해 알아본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였던 산줄기 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이로부터 가지친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
『산경표(山經表)』에 근거를 둔 이들 산줄기의 특징은 모두 강을 기준으로 한 분수산맥으로 그 이름도 대부분 강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산줄기는 이름 그대로 경기도의 한강 본류와 남한강의 남쪽 유역의 분수령으로 해발 100m 미만의 낮은 등성이의 연결로서 서쪽에 위치한 인천·시흥·안산·수원·오산·평택·천안 등 아산만을 중심으로 한 해안평야와의 경계를 이룬 산줄기이다.
이 정맥을 이룬 주요 산은 『산경표』에 칠현산(七賢山)·백운산(白雲山)·구봉산(九峰山)·대소곡둔현(大小曲頓峴)·석륜산(石倫山)·수유산(水踰山)·부아산(負兒山)·보개산(寶蓋山)·석성산(石城山)·객망현(客望峴)·광교산(光敎山)·사근현(沙斤峴)·오봉산(五峰山)·수리산(修理山)·오자산(五子山)·소래산(蘇來山)·성현(星峴)·주안산(朱安山)·원적산(元積山)·경명산(鏡明山)·북성산(北城山)·가현산(歌絃山)·약산(藥山)·문수산 등으로 기록되었다.
이 산줄기를 중심으로 서쪽 해안 지방과 내륙의 한강 유역권의 생활 문화 발달은 예로부터 현격한 차이점이 있으며, 같은 경기 지방이면서도 국지적 기상 변화 등 생활양식과 함께 언어의 차이까지 보이고 있다.
현대지도에서의 산 이름으로 찾아보면 칠장산·도덕산(道德山)·국사봉(國師峰)·상봉·달기봉·무너미고개·함박산(함朴山)·학고개·부아산(負兒山)·메주고개·할미성·응봉(鷹峰)·형제봉·광교산·백운산(白雲山)·수리산·소래산·성주산(聖住山)·철마산(鐵馬山)·계양산(桂陽山)·가현산·필봉산(筆峰山)·학운산(鶴雲山)·것고개·문수산 등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1-3
부평도서관정문에서 왼쪽으로 용포샘에서 8시09분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큰 공터에 백운배드민턴클럽에서 운영하는 천막이 있고, 원곡도로행이란 설명간판도 설치되었으며, 다시 왼쪽 가파란 바위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불초소를 맞이하게 된다.
이어 송전탑을 돌아 오른쪽으로 내려가면서 지적측량기준이 되는 지적삼각점을 지나 나무계단을 내력가니 열우물비타길과 연가지 이정표 사거리에서 직진하며 오봉산정상
이정표에서 철탑을 지나면 호봉산 정상에 8시40분에 도착해 보니 특별히 정상을 표시하는 것이 없고 작은 사방석 하나만 덩그러니 박혀 있다. 호봉산은 인천시 부평구와 서구 경계에 위치한 높이 136m의 야산으로 정상은 부평구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은 전망 좋은 공터에 삼각점(인천418*, 1994재설)이 있으며, 남쪽으로 한남정맥의 30번 송전탑이 있다.
사진4-10
오봉산에서 철탑으로 내려오며 동인천여중 내려가는 길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함봉산 가기전 중간 지점쯤 거의 평지를 이루는 장고개공원을 지나 군부대초소가 있는 담장을 지나면 장고개가 있다. 부평구 산곡동에서 서구 가좌동으로 연결되는 고갯길이다.
장고개에서 계속 올라가면서 원적산방향이란 이정표따라 가면서 산불초소을 지나 멀리 보이는 계단이 뚜련하게 보인다. 계속 직진하여 올라가니 함봉산 9시27분에 도착하다.
함봉산 정상 표지석이다. 이 표식석은 길고 조그만게 만들어 공터 길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함봉산은 옛날에는 산림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있어서 호랑이 소리가 나는 산이란 뜻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산을 호봉산(琥峰山)이라고 잘못 적고도 있는데 이것은 함봉산의 함자에 호랑이 호(虎)자가 들어 있으니까 호자로 잘못 읽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사진11-13
함봉산에서 멀리 원적산과 희미하게 피고개 및 계양산이 보인다. 중구봉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함봉산에서 내려오면 원적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신호등을 건너 옛 한일초교위쪽이며, 세일고등학교는 아래쪽에 있다. 바로 원적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시작된 등산입구에
9시42분에 도착하다. 도로에서 올려다보면 오르는 길이 나선형으로 보인다. 이 길은 산허리를 잘라낸 길이라 급경사에 돌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걷기에 힘이 든다.
이 길을 지나고 나면 완만한 길이다. 좌우로 빽빽한 나무를 보면 옛날 이산이 얼마나 울창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서구에서는 이 길을 비타민 길이라 명명하고 돌로 이정표를 얕게 세워 두었다. 원적산정상석에 10시08분에 도착하다.
원적산은 그동안 천마산 또는 철마산으로 불리웠으나 인천시에서 지명위원회를 통해 산 이름을 변경하여 현재는 원적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원적산(元積山)은 부평구와 서구의 경계에 위치한 산입니다. 원래 표기는 ‘元’이 아니라 ‘怨’으로 원한이 맺힌 산이란 뜻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세곡을 뱃길로 운반할 때 삼남지방의 세곡선이 김포를 지나 강화해협을 지나는데 손돌목에서 자주 좌초되어 서해바다와 한강을 연결하는 굴포작업을 하는데 원통이 고개를 파니 암석만 나와 실패하고 또 다시 안아지 고개를 파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원통하고 원한이 맺힌 산이라 해서 원적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원적산에 유래하는 전설로는 이 산 밑에 위치한 가정동 마을은 합천 이씨가 대성을
이룬 명문가인데 이 문중에서 아기 장사가 태어나가 그 부모는 후환이 두려워 나머지 아기 장사를 죽이자 산중에서 용마가 나와 울면서 떠났다는 전설이 있고 마제석은 그 용마의 발자국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이 산에서 천마가 나왔다고 하여 처음에는 천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원적산은 192,000평의 광활한 산림과 표고 226m로 우리 서구 및 부평구와 계양구 등 3개구가 연접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팔각정정 설치를 위한 사업추진을 본격화하여 시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산의 이름을 명명하여 서구 관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원적정 건립계획을 수립하여 한식목구조 및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총 사업비 2억 9천만원을 들여 연면적 48.83㎡, 높이 5.55m, 2층 구조로 1996년 9월 9일부터 사업 착공하여 1997년 6월 30일에 완공,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SPAN>
사진14-19
원적산을 지나 삼거리에서 석남동과 가정동길과 철마정이정표에서 돌무덤쪽으로 한신빌리지 쪽으로 계속내려오니 원적산과 천마산 중간부문에 인천종주길안내판이 있고 운동기구에서 서달로 큰길에서 신호등을 건너 한신빌리지단지 안으로 10시47분에 도착하다.
이어 경인고속도로 건널목을 철계단을 내려오니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도로를 통과 하여
하나아파트201동에서 천마산 등산로 안내 표시판에 11시05분에 도착하다.
육각정자를 향해 계속 올라가니 천마바위에 대한 설명있는 간판이 있고 군부대 안내문을 지나 옛 천마산정상이라고 한남정맥 천마산226m라고 코딩으로 나무에 메달려 놓고 옆에는 팔각정이 있다. 멀리 보이는 천마산돌 정상을 향해 다시 산행을 시작하다.
제9100부대장 경고문(사격시우회)과 중구봉의 안내문을 보면서 이정표에 한남정맥165m에서 올라가니 천마산 정상에 11시28분에 도착하다. 천마산정상석은 아주 작게 표시되었으며 새별정정자와 새별정명칭의 의미가 설명되어 있다.
천마산은 해발 227m로 중구봉에서 이어지는 286봉을 천마산 이라고도 부릅니다. 인천광역시 서구와 계양구를 가르는 천마산(天馬山)은 서구 공촌동, 심곡동과 계양구 효성동 사이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조선지지자료』 에 '천마산(天馬山)'이라는 지명이 확인되는데 산 중턱에 마제석(馬蹄石)이라 불리는 말 발자국 모양을 가진 큰 바위가 있고 이곳은 아기 장사의 탄생과 용마(龍馬), 천마(天馬)의 승천 전설이 있어 천마산이라는 지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몇몇 자료에서 그 이유는 부평의 향토사학자인 고 조기준 선생에 따르면 1916년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을 위해 세부 측량 때 도면에 ‘철마산’으로 표기하면서 ‘천마산’이 ‘철마산’으로 둔갑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천마산을 잘못 발음하면서 생겨난 지명을 그대로 적은 것이라고 한다.
새벌정이 자리하고 있는 천마산이다. 세벌리는 효성동의 옛 지명으로 새벌리의 '새' 는 억새풀을 말하며, '벌' 은 벌판을 뜻하므로 억새가 많은 넓은 벌판을 말한다고 한다. 또 효성동에서 청천동, 산곡동으로 이어지는 벌판에 말이 좋아하는 억새풀이 많아 국영 말농장이 있었다하여 마장면, 마장뜰 리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효성동은 '새벌리' '샛별이' 발음되어 오면서 샛별을 의미하는 효성동으로 불리고 있다. 천마산 정상(287.2m)에 설치된 정자에도 지역의 역사성과 전통을 담고자 새별정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사진-20-37
천마산정상에서 바라보니 계양산이 눈앞에 있다. 하산길로 내려오니 중구봉0.30km이정표에서 한차례 내려가니 길마재 쉼터 지나 중구봉에 12시48분에 도착하다
중구봉은 해발 288m로 경인교육대학교(1.70km) 북서쪽에 위치하며 계양산과 천마산을 잇는 산줄기의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모두 아홉 개이고 고려 시대에 중구절(重九節)을 치렀다는 유래로부터 중구봉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고 전합니다.
한참 내려오니 계양산정상1,480m 피고개1,680m 이정표따라 징맹이고개로 내려서는 길이 만만치 않다. 이곳에 13시07분에 도착하다.
징맹이고개 라고 부르는 이 고개를 중심으로 동서(한남정맥)의 능선을 따라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중심성을 쌓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없어지고 성문 공해루가 있던 초석만 남아있다고 한다. 징맹이고개는 계양산 서쪽을 관통한 서곶에서 부평으로 넘나들던 고개로 옛날 중국으로 통하는 큰길이었다고 한다, 고려 때는 삼남 지방에서 개성으로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징매이고개 생태통로는경명로 도로 개설로 단절된 생물이동로룰 복원하고 계양산과 천마산의 녹지축을 연결하기 위해 조성한 생태통로이다 징매이고개는 500년전 계양산을 호령했던 백정출신의 조선중기 의적 임꺽정이 이고개에 머물며 탐관 오리들의 목에 칼을 겨누었던 임꺽정의 전설이 숨어있는 곳으로 서해안과 서울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고 지금은 서구와계양구를 잇는 8차선의 '경명대로'가 되었다.징매이 고개의 '징매'는 '매를 징발 한다는 뜻이다.
이에 경명대로를 지나 중심성터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안내문도 읽어보고 ~~
“중심성 터는1983년 10월 부평부사 박희방이 경명현(景明峴)에 축조한 성곽이다. 성(城)의
이름을 중심(衆心)이라고 한 것은 주민들의 협조와 의연금으로 완공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인천 개항이 기정사실화되고 일본과 외세에 대비하고자 설치되었던 연희진(連喜鎭)이 1882년 6월 혁파됨에 따라 부평 해안-부평도호부-(서울)도성을 잇는 육로를 차단하는 또 다른 방어 장치가 필요했다. 중심성이 위치한 경명현(징매이고개)은 교통의 중심지로, 고지에서 서해를 관측하고 방어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 1884년 1월 부평에 기연해방영(畿沿海防營)을 신설하여 연해지방의 방비를 강화하였는데 중심성은 해안체재정비하고 유사시를 대비하는 역학을 수행했다.”
출처: https://100mounta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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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 정상을 향해 1,380m지점에서 험한 오르막길로 계속 치고 올라 35분정도 산행하니 계양산수신소와 정각이 눈에 들어오고 계단 따라서 계양산정상에 13시48분에 도착하다.
이곳에서 점심은 보름달 빵 한개와 음료수 및 물은 2천원에 구입하여 휴식을 취하다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鎭山)이자 주산(主山)이다. 계양산 동쪽 기슭 봉우리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계양산성(桂陽山城)이 있고,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에 해안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景明峴) 능선을 따라 걸쳐 있었다. 계양산이란 이름은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安南山),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桂陽山)으로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 때는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이라고도 하였다. 계양산의 산명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년 1월 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다”. 출처:대한민국구석구석
계양산성을 향하여 640여개의 계단을 이용하여 하산 계양산성에 14시25분에 도착하다
계양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한 테뫼식 석성으로 계양산 주봉이 아닌 정상에서 동쪽으로 230m 뻗어내린 작은봉우리에 있으며 현재 성벽대부분이 허물어져 있고 일부 형태만 남아있는 계양산성은부평이 삼국시대부터 서울을 지키는 방어선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화유산이다.
계양산성의 둘레 약1,180m의 성벽은 현재 대부분 허물어져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구간은 거의 없을 정도며, 정자가 세워져 있는 아래 부분 등 일부구간에서만 옛 성터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계양산은 한강의 서해로 흘러드는 길목으로 삼국시대 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끊임없이 벌여졌던 곳이다. 계양산성은 이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이후에 완전히 폐성으로 남았으며 일제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계양산성 안에 공동묘지를 조성했었다.
사진46-50
계산산성을 끝으로 인천지하철 계산역에 날머리로 15시04분에 산행을 마무리 했다.
나달세상(나종필)
첫댓글 한남정맥인 인천종주길 1~3코스의 종주를 축하드립니다. 역시 체력이 대단하세여!
표준거울 카페에 글을 올리수 있는데 먼저 감사드립니다.
항상 긍정적인마인드로 생활하신 배우미님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