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가구를 옮기다
장석남
가구를 옮겨요
가볍습니다
거무튀튀한 몸뚱이
이제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는 무게
바닥에 붙었던 네 발바닥이 쩍 소리를 낸 것 외에는
그리고 멀미처럼 중간의 서랍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뻔한 일 외에는
무리 없는 일이었죠
문밖으로 내놓고
다시 들어온 나는
그 자리를 바라봐요
가구는 내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내 물건도 좀 들어는 있었겠지요
가령 배냇저고리 같은 것들
차차 줄어서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구는 다소 두려운 듯
햇빛 아래 다소곳했죠
오줌을 지린 듯한 무안한 표정
나무의 빛은 모두 잦아들어 그윽했지만
드러난 먼지 때문에 원 재질을 모르는 이는 알아보기 어렵죠
문밖에 조금씩 움직여 출렁이기 시작한 작은 목선木船을 두고
다시 들어온 나는 그대로 서서
그 자리를 바라봐요
누가 와서 깨우기 전까지
오래 바라봐요
비어 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긴 메아리의 그 자리를
밖으로 나갔을 때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요
어디론가 떠가고 있을는지 몰라요
출렁이는 메아리를 따라서
소멸의 무게
또 한 번 우리는 아주 무겁다. 아주 아주 무겁다. 용산구 이태원동! 이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 눈물 속의 이름이 되었다. 슬픔도, 분노도, 애도도, 모두 손사래 치고 싶은 심정 속으로 빠진다. 이러한 때에 시는? 이러한 질문마저도 사치스럽고 한가롭게만 느껴진다.
차츰차츰 주변에서는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떠나는 연습들이 눈에 띄게 빈번해졌다. 넘어져 다친 친구들, 인척들의 소식이 잦다. 전에 없는 일이다. 나이가 쌓이니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만 자연스럽게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련의 부족이라고 하면 쉽지만 그렇게 간단할까? 죽음은 인류의 오래된 화두지만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영원히 새롭고 매번 새로울 것이며 언제나 첨단일 것이다.
한 소멸에는 잇따른 소멸이 또한 따른다. 어머니가 가시고 어머니가 쓰던 물건들을 내놓으며 많은 생각이 뒤따랐다. 당신이 다루던 모든 물건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폐기와 재활용의 차원을 얘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쓰던 가구를 내놓을 때가 있다. 그것은 집안의 가장 큰 물건이다. 그것이 있던 자리는 크고 그것이 나가면 그 물건이 얼마나 구성원들에게 커다랗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오래된 물건이라면 그것에는 존엄성이라고 할 만한 무엇도 생겨나는 듯하다. 그것은 교환가치와는 조금 다르다. 가령 어머니가 가시고 어머니가 사용하던 가구를 내놓으면 그 자리에 한동안 울음이 산다고 할 수 있다.
아무 잘못 없이, 아무 예고 없이 아이를 잃고 아이가 쓰던 아직도 새것인 가구를 내놓는 일을 생각해보니 명치가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