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감나무에 매달린 추억
찌그러진 바께스와 누런 양철로 된 큰 주전자를 든 당번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앞줄에 서려고 허둥지둥 달려갔다. 하지만 앞줄은 이미 새벽부터 와 있던 서너 명의 아이들이 차지한 상태다. 사실 앞에 서나 뒤에서나 급식량은 달라질 것이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빵을 받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은 것일 뿐. 급식을 하는 시간의 백열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살을 에는 듯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보려 발을 동동 구른다. 또 몇몇 아이들은 울긋불긋 얼어터진 손등에 호, 호, 하고 입김을 불어넣어 녹여보기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강냉이 찐빵과 우유 배급이 있는 날은 마치 동네잔칫날 같았다. 평소 지각에결석을 밥 먹듯 하던 녀석들도 이 날만큼은 절대 늦거나 빠지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조차 평소보다 이삼십 분 씩은 일찍 오셔서 배급에 차질이 없도록 몸소 챙기시는 것이다.
마침내 식간에 불이 켜지고, 토끼털 귀마개를 검은 고무줄로 동여맨 소사 아저씨가 어정어정 걸어 나왔다. 그리고 커다란 찜통을 열어젖히자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함께 퍼지는 구수한 찐빵 냄새……. 코흘리개 녀석 하나가 눈을 지그시 감고 흠흠~ 하고 황홀해하던 표정이란. 벌써 꽤 오래전 일인데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다.
팔공산 빛viit명상 터 초입에 감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았다. 바로 어린 시절 감나무에 얽힌 애틋한 기억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 집 앞마당의 감나무는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서 있었다.
“얘들아, 감 따거라!”
어머니의 말씀이 신호탄이라도 되듯 여덟 형제가 앞 다투어 감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서 이 소식을 알았는지 동네 사람들도 허겁지겁 감나무 아래로 모여드는 것이다. 마치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무엇이 있기라도 한 듯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의 얼굴에 어려 있던 배고픔,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만드는 잊을 수 없는 표정이다.
다른 형제들은 신이 나서 감 따기에 여념이 없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배고픈 표정을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어 멀리 담벼락 밑의 사람들을 향해 감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이를 본 형제들이
“야, 니 지금 뭐하는기고?”
하며 화를 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자 저 아래에서 감을 받아든 사람들은 언제 준비해왔는지 된장을 꺼내들었다. 감의 떫은맛에 목이 메일까봐 감을 된장에 찍어먹는 것이다. 된장에 찍어먹는 감 맛, 과연 요즘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각설이 친구
학교에 가면 한 학급에 70-80명씩이나 되는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들어차 대체 수업을 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 할 때도 많았다. 담임선생님조차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 하시고 출석부 없이는 누가 자신의 반 학생인지조차 확인 할 수 없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반 이상의 아이들이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들어올 땐 모두 배가 복어처럼 볼록해져서 돌아왔다. 점심 도시락 대신 우물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말이다.
내 짝은 그런 형편의 친구들 보다 더한, 매끼 밥을 빌어먹는 각설이였다.
“경식아, 너 재밌는 노래 또 불러봐, 그 노래 참 우습고 좋다.”
“좋기 뭘 좋노? 광호 네가 부르라 카이까 또 한 번 불러 본데이, 어얼씨고씨고 들어간다아아아~ 저얼 씨고 씨고 들어간다아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내가 경식이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하면 경식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눈을 질끈 감고 책상 위에 바가지를 둘러엎어 연필로 장단을 쳐가며 각설이 타령을 불러 댔다. 그런 경식이의 노래와 익살에 모든 친구들이 배를 움켜잡고 깔깔거리면 경식이는 더 신이 나서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그 구성진 노랫가락 속에는 무언가 모를 애달픔이 담겨 있었다.
사실 경식이는 공부보다 각설이 타령을 잘 부르는 것이 더 급했다. 얼마나 슬프고 애처롭게 타령을 하느냐에 따라 얻어먹는 밥의 양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청하지 않아도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짱 좋고 여유만만 하던 각설이 경식이도 매월 말만 되면 풀이 죽었다. 그 때만 되면 어김없이 선생님으로부터 월사금 독촉을 받기 때문이다.
“인석아, 받을 때가 없어도 일단 나가! 어디 가서든지 빌려오란 말이다. 너 벌써 석 달 치나 밀렸어. 이젠 더 사정을 봐 줄래야 봐줄 수도 없어!”
“없는데 어떡하는교? 먹고 죽을라캐도 돈 땡전 한푼 업심더, 쌤요.”
이때만 되면 스승과 제자의 사이는 집세를 받는 주인과 하숙비를 독촉 받는 하숙생 꼴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이 시절에는 혼내는 사람이나 혼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모두 안 된 것도 마음 아플 것도 부끄럽고 미안할 것도 없었다. 그만큼 다들 가난하고 함께 배고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손이 나도 모르게 그 날 아침 아버지가 주신 월사금이 담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그 놈을 만지작거리다 과감하게 월사금 봉투를 경식이 앞에 들이밀었다.
“경식아, 잠깐만! 이거 너 해.”
“이게 뭐꼬? 니 월사금 30원 아인가?”
“일단, 이 돈으로 월사금 내. 난 걱정 말고. 나는 월사금이 밀리지 않았으니 선생님께서 봐 주실 거야.”
“광호야, 니 이래도 돼는 기가? 암튼, 참말로 고맙데이! 정말 고맙데이!”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나를 몹시도 매몰차게 내쫓으셨다.
“이 녀석, 정광호! 넌 형편도 좋으면서 왜 월사금을 안내? 어디다 까먹은 것 아니야? 어쨌든 너도 나가서 빨리 받아와!”
이렇게 해서 나와 내 친구들은 교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쫓겨났다기보다 신나게 뛰쳐나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좀처럼 오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기에!
친구들과 신나게 들판으로 달려가는 내게 이미 가방은 오간 데 없고, 옆구리에 찬 자랑스런 수통이 달그락달그락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 수통으로 말하자면 전쟁 중 군인들이 쓰던 물통인데 어떤 사연인지 우리 집 다락방에 골동품처럼 누워 있다가 내 눈에 띄어 다시금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수통은 비가 오는 날이면 시냇가의 붕어로,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메뚜기로 채워져 허기를 달래주는 간식통 노릇을 톡톡히 해 주었는데 덕분에 책보보다 더 소중한 대접을 받았다. 그 수통이 이제는 검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내 방 한 쪽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쫓겨난 후의 이야기를 연결해 가자면, 다음날, 선생님께 월사금만을 드리기가 겸연쩍어 수통의 메뚜기와 꺼내서 함께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도 못 이기는 척 눈을 흘기시면서 받으시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자리에 들어가 얌전히 수업해라.”
하시는 것이다. 나와 그분의 입가엔 미소가 돌았고 그러면서 이미 어제의 일은 그분이나 나난 없었던 일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아예 수업을 뒷전으로 하고 선생님 몰래 교실 밖으로 친구들과 뛰쳐나가곤 했다. 다름 아닌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쏟아져 내린 빗물에 학교 뒤 개천이 넘쳐나면 숨쉬기 바쁜 붕어, 미꾸라지, 가물치 등이 그냥 물위로 둥둥 떠다녔다. 아무 요령 없이도 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참을 신이 나서 옷이 젖는 것도 모르고 고기를 잡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를 혼내기 위해 씩씩거리며 선생님도 옷을 걷어 부치시고 도랑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고기를 잡고 계셨다.
이처럼 굳이 잘못을 빌고 용서해 준다는 말이 없어도 몸짓과 표정으로서 용서받고 화해하던 그 시절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그 무엇이 있었다. 제자의 부스럼 병이 안타까워 자신의 월급을 뚝 떼어내어 치료비로 보태시던 선생님, 그리고 친구의 월사금을 내준 후, 돈을 다시 받으려는 어설픈 거짓말에 모른 척 하시며 묵묵히 30원을 또 내어주시던 부모님,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은 모두에게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출처 : 빛viit의 책 2권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P. 20 ~ 26
첫댓글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시절 잠시 옛생각에 젖어 들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그 시절!! 감나무에 매달린 추억, 각설이 친구,~ 학회장님의 어린시절의 이야기에 아름다운 사랑의 심성이 묻어납니다 어릴때 부터 이미 이웃 사랑의 정신이 시작되셨고 습관이 되심을 봅니다. ~ 감사합니다.~
늘 바쁘게 아이들을 학교에서 학원으로, 또 집으로~ ~pick up 하면서 지내는 저의 일과들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빛의 책 2권의 아름답고, 사랑 가득한 이야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요즘학교를 마치면 운동장 흙을밟을 시간없이 정신 없이 하원으로 달려가는아이들을보면서
너무 배움에에 집착한 나머지 불이 나게달려가는모습 보면서 옛추억을 담고 옛 추억을담아야 할시간에
건강을생각겨를도 없이 학원으로 내달리는모습이 오히려 애처러워 보인다는글과
귀한 빛글인 "그때그 시절"을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니 저도 시골에서 흙 밝으며 자란 것이 제일 큰 자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학원과 공부 강요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준 이이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억의 어린시절, 요즘엔 정말 볼 수 없는 추억들입니다 .
빛과함께 추억속의 1년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
코흘리개 친구가 눈을 지그시 감고 황홀해하던 표정.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시절.
빛명상과 함께 아침을 열어갑니다. 감사합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의 틀에 매달린 요즘 아이들.
예전엔 그냥 방목해서 살았지요,
학회장님의 어릴적 심성이 따스하신 그 추억이야기에 저는 마음이 움추려 듭니다,
저도 월사금 못내서 쫒겨나오곤 햇었지요,
글 잘 보았습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때 그 시절 " 감사드립니다.
태어나실 때부터 빛과 함께 하신
학회장님의 어린시절의 순수한고 귀한마음 잘 보았습니다ᆢ
소중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ᆢ
학회장님의 어린시절의 급식과 교실풍경이 떠올라 저의 잠시 어린시절의 행복함에 젖어봅니다
엄마가 탁주를넣고만든 새참용 빵도 맛있었지만 급식때 주는 빵은 훨씬더 부풀어져 더 맛났습니다
지금은 저보다 더 넓은집과 부자로 다들 여유가 있는 그때의 친구들이 만날때면 우리집의 사랑채에서
놀다가 갔던 얘기로 꽃을 피웁니다 지난일을 떠올리며 빛과함께 연을 맺음도 부모님의 선근으로 …
빛과함께 할 수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린시절 힘들고 어려웠지만 순수 했던 그마음 전해집니다. 빛과함께 할수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뛰어놀고 싶은 어린이 마음은 같을텐데요.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공부에 찌든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놀이란 동심이란 바로 이런것임을 어른들에게도 일깨웁니다. 다같이 힘드셨을 그시절에 같은 반 동무들은 빛이계셔서 춥고 배고프지만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했을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뛰노는 아이들의 옛이야가 감사합니다
물질이 부족해도 즐겁게 뛰놀던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순수했던 그마음을 꼭 기억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려한 말보다 뭉툭하지만 따뜻한 정이 가득 넘쳤던
그 시절이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
오늘 날은 찾아보기 힘든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사랑과 인정이 넘치던
얘기가 따뜻하게 느껴져 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글볼수있게해주셔서 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늘건강하시고 행복한날되시길기원합니다~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순수했던 학회장님 어린시절 이야기 마음 가득 행복해집니다.
감사합니다.
교육의 의미가 입시가 되어버린 요즘 새겨들을 옛날 이야기입니다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시절 따뜻한 마음이 있었던 시절나눔이 본성에 담겨 계셨던 학회장님 어린 시절 이야기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려웠던 시절
순수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집이 다여서 참 답답합니다~
학교갔다오면 책가방 던져놓고 어둑해질때까지 뛰어놀던, 너무나 행복했던 어린시절이 떠오릅니다~
귀한 빛이야기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어린시절의 순수함
그리고 정이 흐른는 따뜻함^^
지금의 학교 모습과는 많이 다른
어려웠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참 훈훈합니다^^~
그때 그 시절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시절이 그립습니다.
빛안에 살아갈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따뜻하고 흐뭇한 풍경입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난했지만 따뜻한 사랑이 있었던 시절 이야기에 애처롭고 서글프지만.. 마음은 몽글몽글 해지고 입가엔 미소가 번집니다~
감사합니다.
그때그시절
가난했지만 따뜻한 사랑과 나눔이있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학회장님의 따뜻한 어린시절의 이야기와
추억을 남기며 행복한 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그 시절...
사랑이 넘쳐났던 그 시절...아름다운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동심으로 다시 돌아가봅니다.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추억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그시절 감나무에 매달린추억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재미있는 이야기 잘읽었습니다.
추억을 생각해하는 행복한 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