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있는 게 '죄'… 출근해도 세울 곳이 없다
[머니S리포트-주택수 1800만채 vs 자동차 2500만대… 한반도는 주차전쟁]
② 오피스빌딩·복합몰 주차장은 지금… '총성 없는 전쟁'
[편집자주]2022년 국토교통부 조사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2550만3078대로 5년 전(2252만8295대)에 비해 13.2% 증가했다. 마이카 시대를 넘어 '1가구 2차량' 시대가 가깝지만 도심 내 주차난 해결은 현재로선 요원한 상황이다. 기저에는 비싼 땅값과 인구밀도, 주차 예절에 대한 인식 개선 미비 등의 문제가 혼재돼있다. 수익성을 따지는 공급업자 입장에선 법정 기준조차 지키지 않는 꼼수마저 동원한다. 그에 따른 불편함과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일본처럼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논의만 수 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자동차업계의 반발로 한때 차량 소비를 종용했던 정책 당국은 정작 눈치만 본다.
롯데월드타워는 높은 주차요금과 주차난으로 오픈 초기 수많은 민원에 시달렸다. 이는 비싼 주차요금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일대 교통체증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서울시의 정책 때문이라고 롯데월드타워 측은 주장한다. /사진=뉴스1
◆기사 게재 순서
(1) 황제주차에 주차빌런… 꾹 참기만 해야 하나
(2) 차 있는 게 '죄'… 출근해도 세울 곳이 없다
(3) 분양가 인센티브, '탁상공론'의 전형
#. 주말에 가족들과 도심의 복합몰을 방문한 직장인 최모씨는 반나절 동안 40만원에 가까운 돈을 쓰고도 주차비로 2만원을 내야 했다. 높은 물가 탓에 식사와 카페, 영화 관람 등에 한 달 치 식비를 사용했지만 진심으로 아깝게 느껴지는 것은 주차요금이다. 최씨는 "요즘 무료주차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예전에 자사 방문객이나 소비고객들에게 제공하던 주차 할인 혜택이 점차 줄고 있다"고 푸념했다. 해당 복합몰의 경우 일정 시간 이후엔 10분당 1000원의 주차요금을 받는다.
'도시교통정비 촉진법'상 교통유발부담금 등의 정책에 따라 도심 내 유료주차가 보편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소비자들과 기업 간의 인식 차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좁은 땅, 많은 차량으로 물리적 공간이 부족한 것보다 실효성 낮은 정책이다.
매일 '주차 지옥'이 펼쳐지는 서울의 경우 주차장 확보율(승용차 등록대수 대비 주차면수)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137.0%(2022년 7월 서울시 조사 기준)다. 최대 도심인 강남구와 종로구는 주차장 확보율이 각각 167.9%, 191.0%로 평균보다 높다.
서울의 주차장 확보율이 100%를 넘긴 것은 16년 전인 2007년. 수치만 놓고 보면 주차공간이 남아돌아야 하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주택가와 오피스가의 주차 괴리다. 낮에는 텅 빈 주택가 주차장은 밤이 되면 차 세우기 전쟁이 벌어진다. 실제로 서울 주택가의 주차장 확보율은 평균보다 크게 낮은 104.3%에 불과하다. 반대로 오피스가의 주차장은 낮 시간 동안 전쟁이 벌어진다.
광화문의 회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씨는 "한 달 주차비가 대중교통 요금의 4~5배에 달하는 25만원에 달하지만 이마저 감지덕지해야 한다"며 "회사 주차장이 없거나 건물이 오래돼 주차공간이 협소한 경우 매일 주차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아예 자차 출근을 포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토로했다.
"주차장 많아도 차 세울 곳이 없다"
오피스빌딩과 상업시설이 밀집한 서울 도심 내 건물엔 업무 차량이나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된 주차공간이 상당히 큰 규모로 확보돼 있다. 이는 전체 주차면수를 늘려 통계 오류를 발생시킨다는 지적이다. 도심 내 주차장은 시간당 3000~6000원의 고가 요금을 부과해 단기·임시주차 외엔 활용도가 떨어진다. 인구 대비 땅 면적이 협소하고 토지사용 비용이 높은 경우 기업들은 수익률 낮은 주차장 면적을 줄이거나 높은 주차요금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문제도 지적된다.
서울 주차 지옥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롯데월드타워는 높은 주차요금과 주차난으로 오픈 초기 수많은 민원에 시달렸다. 이는 비싼 주차요금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일대 교통체증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서울시의 정책 때문이라고 롯데월드타워 측은 주장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04~2022년 주차용지 218필지(9801억원)를 매각했고, 이 중 정부·지자체에 35필지(1652억원) 민간에 183필지(8149억원)를 팔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차용지를 사들인 사업자들은 수익성이 높은 상업시설 등으로 짓고 지하 부설주차장을 조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통계상 주차공간이 늘어나더라도 실제 주차할 곳이 부족한 이유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 주차장의 외부 개방과 주차공유서비스를 시행했지만 서울의 공동주택 주차면수가 1.4대 수준으로 적어 실효성이 낮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수년 동안 대형 복합몰과 오피스빌딩이 늘어나면서 통계상의 주차면적이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주차난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차 사회적 비용, 자동차 기업이 부담해야"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민원 빅데이터 1238만건을 분석한 결과 공공기관에 접수된 민원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불법 주·정차'였다. 한국보다 3배 이상 자동차가 많은 일본의 경우 '주차장 없는 차 없다'로 설명되는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선 제주도가 시행 중이다. 차고지 증명제는 자동차 보유자가 번호판을 받기 위해 자택과 사무실 반경 2㎞ 이내의 주차장을 확보 후 이를 입증해야 한다. 보관 장소 미확보 시 경찰은 운행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자차로 출·퇴근하는 경우 회사에서 허가받지 않으면 징계 사유가 되기도 한다.
국내에선 수년째 도입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자동차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기업의 논리에 의해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건설회사 입장에선 땅의 사용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설계를 고려해야 하고 교통유발부담금을 통해서도 일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면서 "소비자에게 역시 주차요금이란 형태로 비용이 전가되는 구조에서 차량 제조·판매기업도 일부분의 몫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부터 주차사업을 시작한 카카오모빌리티는 서울 강남구의 코엑스와 센터필드,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등에서 주차예약서비스 운영을 맡아 해당 분야의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 같은 전문 주차사업이 소비자의 편의를 높일 수 있는 반면, 비용 증가 역시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