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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 24. 나를 따라오려거든 25.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 24. 나를 따라오려거든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자기의 생각, 가치관, 명예, 자존심, 세상적 부귀와 영광을 버리고 그 대신 하나님의 생각과 가치관,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라는 뜻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라는 뜻이다. 사형수는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가서 거기에 달려 죽는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죽음을 각오할 수 있다.
“나를 좇으라”는 말씀은 주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그의 행위를 본받으라는 뜻이다. 주님은 친히 십자가의 길을 가졌다. 그의 제자된 자들도 그의 길을 따라야 할 것이다.
1]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따른다'는 것은 스승의 삶과 가르침에 온전히 순복하는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참된 제자의 요건을 전제한 것은 당신의 임박한 수난과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수난과 고초를 당하게 될 것을 익히 아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을 따르기에 미흡한 제자들에게 당신을 전적으로 순종하며 수난당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힘주어 가르치셨다.
2]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요구되는 소극적 측면으로서 이기적 욕망과 생각, 주장, 부패한 옛 자아, 옛사람을 철두철미 굴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서 육신(*, 사르크스)이 타락한 본성을 가진 죄인 된 인간 그 자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 감정, 의지 등이 완전히 부패되었다.
* 렘 17: 9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 롬 1: 18-32 –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 롬 7: 14, 18 –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이러한 본성적 존재로서는 예수의 제자로 따라 나설 수 없다. 제자의 요건을 망각했던 베드로는 훗날 자기를 부인하는 대신 예수를 부인했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시 로마의 지배 아래 살던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이라면 십자가 형벌을 선고받은 죄수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까지 가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마 27: 32 –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유다의 반란으로 인해 수많은 십자가 형틀을 목격해야 했다.
그들은(Josephus) 죽음의 짐이요,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를 메라는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뼈속 깊이 이해했을 것이다.
* 마 10: 38 -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 행 5: 37 -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예수께서 친히 골고다 험한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당하신 이후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엄숙한 제자로서의 결단의 조건이 되었다.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지신 일은 인류 구속의 대업을 완성하시는 유일한 단회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제자들의 십자가 짐은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 생겨나는 다양하고도 지속적인 행위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제자들은 각자의 십자가를 거룩한 기쁨과 무한한 감격과 감사로 져야한다. 그리고 가장 가치 있는 일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지고 예수의 발자취를 좇아가야 할 것이다.
* 빌 3: 12-14 –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4] 나를 따를 것이니라(*, 아코루데이토).
현재 명령형으로 한두 번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좇아오라는 강한 명령이다.
주의 제자는 억지로, 이따금씩 그분의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부단한 노력과 헌신을 통해 계속 좇아가야 한다. “나를 좇으라”는 말씀은 주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그의 행위를 본받으라는 뜻이다.
주님은 친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그의 제자들도 그의 길을 따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초청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우주적인 초청이다. 이 초청에 응하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고 거부하는 자는 멸망을 당할 것이다.
성도들은 바로 이 초청에 응한 자들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초청을 받은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1)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①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 자기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자기를 위하는 이기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기적인 속성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 때문에 우리는 삶에 의욕을 가지며 선한 욕구를 성취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에 못지 않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과다한 욕심이다. 사람은 이러한 욕심으로 인해 결국은 옳지 못한 처신을 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신 말씀은 우선 자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결코 먼저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②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해서 자칫 이 말이 자기를 부정적으로 보라는 말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 마 16: 26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 눅 9: 25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지만 자기를 부정적으로 봄으로써 자학하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2) 십자가를 져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모든 성도에게는 나름대로의 십자가가 있다. 각 사람의 개성과 재능이 다르듯이 십자가도 각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억지로 십자가를 지우지도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지는 것을 원치도 않으신다. 단지 그것을 자원하는 자에게는 심판날에 상급을 내리실 것이며, 포기하는 자에게는 그에 대한 마땅한 심판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급과 심판을 따지기에 앞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즐겨 자기의 십자가를 질 것이다.
(3)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①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때 주께 배울 수 있으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일은 너무도 힘들고 외로운 일이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쉽게 지칠 수 있고, 심하면 중간에 십자가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심으로 끝내는 십자가로 영광을 얻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로 끝까지 감당하기를 원한다면 그만을 바라보고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
* 히 12: 2-3 –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②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그것은 한마디로 '타인을 위한 희생의 삶'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곧 자기의 욕심을 버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만약 우리의 십자가가 자기의 유익과 결부된다거나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4) 예수님을 부인하여 자기의 목숨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그 목숨을 잃게 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사람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지탱하고 가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사람이 자기의 육체를 위한다고 해서 자기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오히려 주를 위하여 그것을 바칠 때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창조주와 구속주 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곧 결단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 하는 결단이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느냐, 잃게 하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바로 알아 주님을 위하여 나를 버림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획득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마 16: 25.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이 말씀은 자기 희생의 행위로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고, 단지 자기 희생의 행위가 영생 얻는 자의 당연한 삶임을 보인다.
성도의 자기 희생적 삶은 그가 영생의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1]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목숨'(*, 프쉬케)이란 '영혼'(soul), '생명' 등을 의미한다.
단순히 육체적 생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 및 인격의 중심 또는 그 사람의 자아까지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지나친 애착을 갖고 육체적 생명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인격적 자아, 곧 지성, 감정, 의지 등을 고수(固守) 보존함을 뜻한다.
* 히 2: 15 -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에 위배되는 일로서 종말에 얻게 될 영원한 생명을 상실하게 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종말론적이며 존재론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 마 10: 39 -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2]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아를 버리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에 넘기면 그는 오히려 종말에 이르러 영원한 생명의 환희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정녕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께서 참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역설적 진리가 가능한 것이다.
* 요 11: 25-26 –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 15: 1-7 –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의 참 제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일시적 생명을 단호히 버릴 줄 아는 신앙의 용기가 필요하다.
본문에서 '찾으리라'는 말은 '구원하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단순히 무엇을 '얻는다'는 말보다 더욱 완전하고도 충만한 상태를 암시한다. 이 '구원'은 뜻밖의 구원을 의미한다(외경 지혜서 5:2). 이것은 자기희생의 행위로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고, 자기희생의 행위가 영생을 얻는 자의 당연한 삶임을 보인다.
성도의 자기희생적 삶은 그가 영생의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주께서는 두 가지 목숨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는 육신의 목숨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목숨이다.
‘목숨’이라는 원어(프쉬케 ψυχή)는 ‘육신의 생명’이라는 뜻도 되지만, 또한 ‘영혼’이라는 뜻도 된다. 본문은, “누구든지 자기의 육신의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자기의 영혼을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자기의 육신의 목숨을 잃으면 자기의 영혼을 찾으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할 때 영생할 수 있지만, 그 생명을 소유하지 못할 때 영생할 수 없고 도리어 둘째 사망(계 21: 8) 즉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는다.
* 계 21: 8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참여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상속을 받으며 영생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누리게 된다. 반면에 이기지 못하고 패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예비(豫備)되어 있으니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 당할 심판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셨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둘째 사망과 동일한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 당할 심판을 나타낸다.
* 계 20: 14-15 –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요한은 둘째 사망에 참여할 자들을 여덟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1) 두려워하는 자들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당하는 핍박과 환난을 두려워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보다는 자신의 안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이다.
요한은 '두려워하는 자들'을 언급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둘째 사망을 벗어나 승리하기 위해서는 짐승과 사단의 핍박과 위협을 인내로써 이겨내야 함을 암시적으로 권면하고 있다.
* 마 8: 26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 마 13: 21 -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 막 4: 40 -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이들은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들의 육체적인 안락(安樂)의 길을 가기 위하여 환란과 핍박과 궁핍이 있는 광야의 길을 피하는 자들이다(마 8: 26, 13: 21, 막 4: 40). 그들을 언급한 것은 짐승과 사탄의 핍박과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을 크게 권면(勸勉)하고 있다.
* 요일 2: 22-23 –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 믿지 아니하는 자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시며 약속하셨던 주님의 재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본문은 그리스도를 영접치 아니한 불신자들이나 혹은 믿음이 신실하지 못하여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신앙을 버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 마 7: 21-23 –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고전 6: 6 -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 고전 7: 12-14 –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 고전 10: 27 -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 고전 14: 22 -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새 예루살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말한다. 세마포 옷을 입은 어린양의 아내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니 믿음이 신실(信實)하지 못하여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가증한 자들을 가리킨다.
* 딛 1: 15-16 – 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 벧후 3: 3-5 –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3) 흉악한 자들
짐승과 음녀의 세력과 진리에 대한 간음.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브델뤼그메노이스'(*)는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브델륏소마이'(*, '몹시 싫어하다')의 분사형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더럽게 된 자나 혹은 황제 숭배와 같은 우상 숭배에 참여하여 부정하게 된 자들을 가리킨다.
* 롬 2: 22 -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거짓 스승을 섬기는 우상 숭배에 참여하여 부정하게 된 자들을 말하니(롬 2: 22) 거짓 지도자들의 거짓 복음과 거짓 영으로 세뇌당한 자들이 흉악한 자들이다.
* 합 2: 18 -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4) 살인자들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는 거짓 선지자. 이들은 짐승의 조종 하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살인한 자들을 가리킨다.
* 행 7: 54-59 –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 계 13: 15 –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이들은 짐승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경에 기록된 의인(義人)들을 죽이는 자들이다. 새 예루살렘을 핍박하고 자기들의 영(靈)들과 다르다고 미워하는 자들이니 이들은 살인하는 자들이다.
(5) 음행자들
비진리로 음행하는 자를 말한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노이스'(*)는 문자적으로 '간음한 남자들'을 의미하나 성적 범죄를 행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Morris, Johnson).
간음이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지도자들을 사랑하며 우상을 섬기면서 육체파가 되어 세상으로 부요(富饒)하고 강건한 축복을 요구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간음한 자들이니 하나님과 원수라고 하였다.
* 마 6: 24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약 4: 4 -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6) 점술가들
신비주의자. 거짓 영과 거짓 진리요 거짓 은사를 가진 자들이 술객(術客)들이다. 마술이나 점 등에 빠진 자들이나 우상을 만드는 자들을 가리킨다.
* 계 13: 15-18 – 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 행 19: 19 -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7) 우상 숭배자들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는 자. 앞에서 언급된 '행음(行淫)자들이나 술객(術客)들'이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본문에서 우상 숭배자들을 다시 언급한 것은 이 죄가 영적으로 가장 근본이 되는 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리에 거짓된 신(神)들이나 사물을 올려놓고 숭배하거나(롬 1: 23) 짐승을 숭배하는 자들을 말한다.
* 롬 1: 20-23 –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거짓 스승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라 하였다.
* 합 2: 18-20 – 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19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 호 9: 10 -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
* 골 3: 4-5 –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계 13: 15 -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8)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
진리를 떠나 악과 불의에 동참하여 거짓을 조장하는 자들이다. 이들은혼합주의자, 종교 다원주의자, 비진리로 무장한 자로써 요한은 진리를 강조하여 진리를 떠나는 거짓이 반드시 정죄를 받아야만 하는 행위임을 명시한다.
* 요일 2: 21-23 – 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요일 3: 18-20 –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 요일 4: 4-6 –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 계 2: 2-3 –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계 3: 9 –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 계 21: 27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계 22: 15 -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9)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① 영원한 지옥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 일시적인 지옥이라면 그 기간이 얼마이던지 정한 기간이 지나면 원상으로 회복할 기회와 축복이 주어지겠지만 영원한 것이라면 재기의 기회가 다시 없으므로 절대적인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② 둘째 사망.
본 절은 앞서 언급된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참여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하여 영생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누리는 것과는 반대로 영벌에 처할 자들에 대한 묘사이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둘째 사망과 동일한 것으로
* 계 20: 14-15 –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 당할 심판을 나타낸다. 요한은 둘째 사망에 참여할 자들을 여덟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불못에 던지우는데 여기서 굳이 8종류의 사람만 예를 들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는 말은 또 다른 뜻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예수를 믿다가 타락한 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를 믿다가 이 같은 행위를 이루는 자들은 타락한 자들로 천년왕국 이후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의 표현은 불못에 던지운다는 표현보다 참예한다는 표현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구별되게 심판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이 축복을 받지 못하고 둘째 사망 불못에 갈 자도 있다(계 21: 8). 두려워하는 자, 믿지 아니하는 자, 흉악한 자, 살인자, 행음자, 술객, 우상 숭배자, 거짓말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아 사망에 이른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신의 목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영혼의 목숨이다. 성도의 자기 부정과 십자가의 길은 주께서 가신 길과 비슷하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부활하셨다. 그는 죽음으로 죄인을 위한 영생의 길을 여셨고 아버지의 뜻을 완수하셨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이처럼 우리도 주를 위하여 죽으면 확실히 부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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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설교 감사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