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6. 주일 큐티
시편 124:1 ~ 8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5 -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은 우리
관찰 :
1)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 1절.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 다윗은 가정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remind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변증의 한 방법입니다.
- 2절.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 시편 기자인 다윗은 다급한 너무나 일을 많이 겪은 존재였습니다. 특별히 대적에 의해서 죽음의 위기에 다다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마다 자신이 생각해도 희한하게 위경에서 벗어났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변증하고 있습니다. 1절에 이어서 두 번 같은 맥락을 반복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증거가 분명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3절.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 다윗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한 단위로 묶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포함되고, 교회가 포함되고, 성도가 포함되고, 그렇기에 현재의 성도 모두가 포함됩니다. 다윗이 말하는 “우리”라는 개념의 존재를 공격하는 자들의 분노가 너무 컸다고 말하는 것을 통해서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공격을 받는 입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 4절 ~5절.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 요한계시록에 말세에 큰 뱀이 물을 토해서 여자를 그 물에 휩쓸려가게 하고, 익사시키려하는 시도가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뱀은 사탄이고, 물은 시대정신이고, 여자는 교회입니다. 어느 시대이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상의 사조에 물들게 하고, 그 사조에 익사시키고자 하는 사탄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여자가 반석 위에 있기에 세상을 삼키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존재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만이 세상의 사조에 물들지 않고, 익사하지 않으며 생존할 수 있게 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시내가, 물이 우리의 영혼을 휩쓸며 흘러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 말씀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다 세상 사조에 물들고 휩쓸려 우리의 영혼이 익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의 때에도, 오늘날도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죽을 뻔 했던 상황에서 건짐을 받은 다윗은 죽을 뻔 했던 군급한 상황의 형편을 다시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했습니다.
2) 찬송
- 6절.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 다윗은 대적들이 자신을, 이스라엘을 산 채로 집어 삼켜 날카로운 이빨로 씹어 먹으려는 짐승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서운 궤계로 씹혀 먹히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표현은 너무 실제적이고 생생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이빨 사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표현을 통해서 그 위경을 기억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위험한 지경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신 분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것입니다.
- 7절.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 새가 올무에서 발이 혹은 목이 끼이게 되면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칠수록 그 올무가 점점 더 조여 오게 됩니다. 그 때 올무에 얽힌 새가 살 길은 올무가 끊어지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올무에 옭아매져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올무를 끊어버리심으로 자유를 허락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무서운 올무에서 벗어나 하늘로 비상해 자유 비행할 수 있게 된 새와 같이, 세상의 올무에 옭아매진 우리의 영혼이 자유하게 된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 8절.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 다윗은 우리의 도움이 산도 아니고, 우상도 아니고, 열강도 아니고, 힘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가장 크신 분이신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고, 존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전제되는 개념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 열려진 비밀입니다. 이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게 되고, 모든 위경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했어도 위경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닥친 모든 위험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피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성도라고 인생 속에서 위험, 고난, 환란이 알아서 피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험, 고난, 환란을 하나님의 은혜로 피해가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질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알아가게 되고, 그 자체가 구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있습니다.
교훈 :
1) 다윗은 대적들의 진노가 얼마나 컸으면 그들의 이빨에 짓이겨지지 않음을 찬양한다고 했을까요? 일반적인 삶을 사는 가운데 대적으로부터 그런 정도의 위협을 받는 경험을 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큰 위험에 대해서도 보호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일반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그 어려움을 피하도록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 인생에서 사실 가장 힘든 일은 외부에서의 환란보다 내부의 문제일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거나 실망을 줄 때, 가장 아프고 아픈 것이 사실입니다. 내게 있어서 공들여서 양육한 사람이 엉뚱한 짓을 하고, 성숙함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 동역자가 넘어질 때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믿었던 친구의 배신이 치가 떨리도록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럴 때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결국은 해결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의뢰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3) 어렸을 때, 삼태기 밑에 쌀을 놓고 줄을 잡아당겨서 참새를 잡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명주실로 다리에 감아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새가슴이라는 말이 있듯이 새가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지. 그렇게 몇 시간 가지고 놀다가 풀어주면 실에서 풀렸는데도 이것들이 풀린 줄도 모르고 그 자리를 맴돌다가 조금 지나서야 원하는 대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련한 것들이라고 비웃었었는데, 주님으로 자유함을 입은 내가 원래의 모습에 얽매이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우리 영혼이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습니다. 올무가 끊어짐으로 우리가 벗어났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은 바보의 삶입니다. 돈에, 명예에, 세상 것에 붙잡혀 사는 것이 바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소유한 자들이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붙잡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날마다 나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적용 :
1)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사냥꾼, 나의 대적, 나를 갈아먹으려는 자, 원수, 분노가 맹렬하여 나를 삼키려 드는 자, 그것이 누구건 간에 하나님은 그러한 손길로부터 나를,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냥꾼의 올무는 끊어졌습니다. 그저 날개 짓 해서 날아가 버리면 그만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자유함으로 날아올라야 합니다. 주님 주신 능력으로, 주님 주신 기회로 죄로부터, 나를 옭아매려는 세상의 욕심과 근심, 그리고 악인의 궤계로부터 날아오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한분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존자이신 여호와! 그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샬롬, 여호와 닛시, 여호와 시트케누, 여호와 삼마, 여호와 이레, 엘로힘, 엘샤다이, 엘엘로헤 이스라엘, .... 이런 여호와의 이름은 우리의 소망이요 힘입니다. 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이 땅에서의 우리의 인생가운데 체험적으로 알아가고, 믿음으로 깨달아 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이름을 다시금 묵상하고 그 이름으로 말미암은, 다윗이 누렸던 그 능력과 힘을 확인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이 시 역시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까닭없는 고난 중에 있을 때, 우리는 성전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그 모든 위로와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주님을 만나 모두 해결해 주시고, 모두 풀어주시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반드시 풀어지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채워지고 해결되는 역사입니다. 나는 그것을 믿으며 성전에 올라가고자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그렇게 소망합니다.
4) 오늘은 중국교회 國語敎會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구합니다.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