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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추천!!!!!! "너는 나의 친구라!" (24. 3. 2. 말씀과 중보 집회. 김옥경 목사님) - YouTube
(요 15:13-15)“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6분 18초부터 타이핑==>너는 나의 친구라 이 제목으로 나눌 텐데요, 이제 부흥에 대해서 나누면서 이제 우리가 다 주님의 벗들로 친구로 일어나게 되기를 이제 바라는 마음에서 이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다음 글은 스미스위글스 워스 목사님에 대한 글입니다. 위글스 워스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데이빗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이 그는 데이빗 사무실로 들어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마지막 날에 이전에 모든 것을 초월하는 성령님의 운동이 있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역사는 분리하는 어떤 경계선들이나 나라들이나 교단을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1942년은 위글스 워스는 내게 이 예언에 관해 말하면서 자신은 이 영광스러운 부흥을 볼 때까지 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죽기 한 주 전에 위글스 워스는 한 주간 계속되는 집회에서 다시 예언을 했습니다.
이번에 그는 두 번째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첫 번째 성령의 역사는 성령의 은사의 회복을 가져올 것이며,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는 부흥을 가져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개의 성령의 역사가 합하여지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전에 본 적이 없었던 가장 위대한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그는(위글스 워스) 말했습니다.
즉 말씀과 성령이 하나 되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한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이 글을 읽고 매우 고무 (鼓舞 :남을 격려하여 더욱 힘을 내도록 함) 되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제가 이 예언에 대해서 제가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예언이 다시 거론이 되면서 제 안에서 어떤 바람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특별 기도회 기간에 부흥에 대한 선포가 시작되면서 저는 이 예언이 우리 교회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확신(確信 :굳게 믿음)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 내용 중에 이 역사는 분리하는 어떤 경계선들이나 나라들이나 교단을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분이 있는데요. 이 말이 굉장히 여러분 뭔가 이렇게 우리 교회하고 연결이 되지 않나요. 지금 아프리카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는 그 일들과 이렇게 매치가 되고요.
또 첫 번째 성령의 역사는 성령의 은사의 회복을 가져올 것이며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는 부흥을 가져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이미 사랑하는 교회에 두드러진 특징이 아닌가요. 아멘 이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예언을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예언이 반드시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성취되도록 은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뜻 없이 담임목사님께 그런 말씀에 은사를 그런 진리의 빛을 부어주신 것이 아니실 것이고 또 저희 교회 이렇게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운행하심 또 은사들이 활성화되도록 하시지 않으실 리가 없잖아요. 이 부흥이 일어나기를 전 세계 곳곳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서 반드시 이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제 교회들에게 주님께서 뭔가를 행하실 때 저희 교회에 딱(딱 :정확히 맞닿거나 들어맞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이 부흥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은사들을 그죠! 부어주신 것입니다. 담임목사님께 말씀에 은사와 또 성령의 이 은사들의 사역이 교회에서 완전히 활성화되어서 일어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지금 아프리카에서 그 열매를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여러분이 꼭 이 예언을 붙잡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로 나아가면 이 부흥이 말씀과 성령이 하나 되는 전무후무(前無後無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음) 한 강력한 부흥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점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영혼들을 추수하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에는 ’부흥‘에 대해서 몇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부흥‘은 여러 가지로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중에 제가 몇 가지만 오늘 나눌 텐데요.
’부흥‘(復興, הָיָה :하야, revive) 1 <원⦁동> 살다, 생명을 가지다, 부유하게 살다, 절망,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다, 2 쇠잔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다시 일어나게 함, <용> ’생명을 회복하다‘ ’새롭게 하다‘ ’강하게 하다’ 라는 의미로 하박국에 의해 사용되었다(합 3:2),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첫 번째로 ’부흥‘은 전격적인 주님의 통치입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만왕의 왕께 절대적인 순복(順服 :순순히 잘 복종함)이 없이는 부흥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부흥‘은 주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어는 공동체 또 어는 장소로 거주하시는 거예요. 일시적으로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뜻하신바 계획하신 바를 이루실 때까지 그곳을 거처 삼으시고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저희 이문동에서 바로 주님이 바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2년 동안 ’부흥‘안에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주님께서 하시고 싶은 그 일을 성취(成就 :목적한 바를 이룸) 시키는 거예요. 사랑하는 교회 담임 목사님을 이제 울산에 계시는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해서 담임 목사님께서 마음껏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사를 가지고 이제 하나님의 사명을 이제 완수(完遂 :완전히 이루거나 다 해냄) 해 나갈 수 있도록 그 목회에 그 장을 열어 주신 거예요. 그 일을 성취시키신 것입니다.
처음에 저희는 주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저희에게 임하셨는지 정말로 몰랐습니다. 그 당시 저희는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픈 그 마음으로 주님을 구하였지 다른 의도(意圖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속의 생각이나 계획) 가 전혀 없었습니다. 뭐 거창(巨創 :매우 크고 넓다)하게 부흥을 떠올린 것도 아니었고 또 뭔가 우리가 목적이 계획이 있어서 그렇게 울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지난 날 저희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봤더니 많은 순간 우리가 주님 자신 주님의 ‘얼굴’이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들려진 선물을 바라보았던 그 많은 순간들을 우리가 회개하면서 오직 순수하게 하나님을 갈망하고자 애통하며 나아갔을 뿐이었습니다.
‘얼굴’( פָנִים :파님, πρόσωπον :프로소폰, face) 1 얼굴, 2 목 위, 머리의 앞쪽, 용모, 3 <용1> 문자적, 비유적, 관용적으로 사용된다, <용2>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감정 상태를 반영해 준다, <용3> ‘굳은‘ 얼굴은 반항과 뻔뻔스러움, 무자비함의 표시이다(신 28:50, 잠 7:13, 렘 5:3), <용4> ’얼굴을 숨긴다‘는 것은 혐오감을 나타내고(사 53:3), ’얼굴을 돌린다‘는 것은 거부한다는 의미이다(132:10), <용5> 은혜와 호의를 보이는 것을 표현할 때 하나님이나 사람이 얼굴을 내게로 향한다고 묘사한다(민 6:25, 시 31:16), <용6> 얼굴에 침을 밷는 것은 더할 수 없는 모욕으로 인식 되었다(민 12:14, 신 25:9), <용7>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것은 그의 체면을 존중하라는 말이다(레 19:32), 4 유 (마르에)~~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런데 진짜로 주님이 그곳에 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니까.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기 원하여서 하나님 자신을 얻기를 원해서 하나님을 구하니까. 정말로 주님이 그곳에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몰랐지만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을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어요. 성경적인 참된 진리를 규명(糾明 :어떤 사실을 캐고 따져서 밝힘) 하여 교회들을 변화시키고 참된 복음 진리를 가지고 삼중사역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저희에게 미션(mission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주셨고 저희에게 임하신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흥은 반드시 죽음을 요구(要求 :필요한 것을 달라고 청함) 합니다. 자신들이 완전히 내려져야만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를 이루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입장(立場 :직면하고 있는 형편이나 상황) 을 고수(固守 :굳게 지킴) 하면 하나님의 뜻이 절대로 성취(成就 :목적한 바를 이룸) 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들을 내어 놓아야 됩니다.
당시에 저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전까지 저에게 속한 모든 것을 등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아무런 어떤 불만도 없었고 문제도 없었고 오히려 영육 간의 모든 그 상황들이 참 감사하고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다 뒤로하고 이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엄청난 오해를 받아야만 했어요. 그래서 참 힘들었습니다. 순종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 헌신이 있었기에 주님께서 뜻을 이루실 수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부흥은 전적(全的 :전체에 걸쳐 모두 다인 것) 인 주님의 통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려여 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이 결단을 지금 요구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지금 저희 모두가 우리를 주장하지 않고 우리 자신들의 이익(利益 :정신적, 물질적으로 이롭고 보탬이 되는 일) 을 주장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우리의 전부를 다 올려드리기를 주님의 통치 안으로 완전히 우리의 삶 전체가 들어오기를 그것을 주님께서 요구하신다는 거, 여러분 실제적으로 그것이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말로 많이 아니라. 입술로 많이 아니라. 주님이 요구하시면 다 드릴게요. 내 생명이라도 드릴게요. 이렇게 입술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주님이 무슨 명령을 내리시든지 진짜 순종하는 주님의 통치안으로 들어오는 그것을 지금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죽으라면 죽을 수 있는, 이리로 가라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라면 저리로 가고,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서고, 네가 가지고 있는거 그거 나를 위하여 내려놔, 그러면 내려놓을 수 있는 그것이 아무리 세상적으로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정말 큰 유익을 주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그것은 지금 너에게 필요치 않아 그것이 있어서는 네가 나와 함께 나의 일을 하는데 방해가 돼 그러니 그것을 내려놔 그러면 무조건 아멘 하고 내려놓는 그 진정한 ‘순복’ ‘순종’이 있어야만 주님이 일하실 수 있는 거예요.
‘순복하다’(順服--, ὑποτάσσω :휘포타쏘, שָׁמַע :샤마, submit) 1 예속하다, 종속하다, 2 순순히 복종하다, 3 <용>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태도(약 4:7), 법이나 제도에 대한 시민의 태도(벤전 2:13), 주인들에 대한 종들의 태도(벤전 2:18), 자기 남편에 대한 아내의 태도(벤전3:1), 장로들에 대한 젊은이들의 태도(벤전 5:5) 등과 관련하여 쓰였다, 4 <적> 성도는 시류에 편승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도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폭력적 수단들은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5 유 (샤메아)
‘순종’(順從, שָׁמַע :샤마, ὑπακούω :휘파쿠오, obey) 1 <원⦁동> 듣다, 경청하다, 순종하다, 2 순순히 따름, 3 <용1> 주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준행하는 것을 가리켜 쓰였다, 순종은 들음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다, 주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두 가지 중에 하나의 반응을 보이는데, 하나는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부하는 것이다, <용2> 하나님은 제사나 제물보다 순종을 더 낫게 여기신다(삼상 15:22),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래서 저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주님이 정말로 실제적으로 주의 ‘통치’안으로 주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주님은 일하실 수 없어요,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없어요.
‘통치하다’(統治--, מַלְאָךְ :말라크, βασιλεύω :바실류오, reign) 1 다스리다, 왕 혹은 여왕이 되다, 2 도맡아 다스리다, 3 <용>여호와의 다스림을 언급하여 쓰였다(대상 16:31) (시 93:1) (계 19:6) 4 유 (멤샬라) ~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런데 정말 우리 성도들이 저와 우리 모두가 진짜 주님께서 어느 날 바로 이거야 이거 내려놔 아브라함에게 ‘본토’친척 그죠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아브라함이 떠났잖아요. 그랬던 것처럼 정말 우리가 우리 삶의 터전의 모든 것을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누리고 있었던 그 모든 것을 그 기득권 다 내려놓고 따를 수 있는가?
‘본토’(本土, אֶרֶץ מוֹלֶדֶת :에레츠 몰레데트, land of birth) 1 <원 • 구) 태어난 땅, 출생지, 친족의 땅, 2 자기가 사는 그 고장, 본향, 3 <용>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지칭하여 쓰였다(창 11:28, 24:7) 4 유 (에레츠)~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저는 그것이 걱정이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 지금 사랑하는 교회 임하셔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이미 부흥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 걱정이 큰 거예요.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자기가 쥐고 있는 온갖 좋은 것들 자기에게 유익한 것들 지금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너무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고 아무도 이것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금 이 상황이 흩어 지거나 깨트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여기가 좋사오니 제가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모든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박살 내버리라는 거예요. 헤쳐버리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아멘 하는 것이 여러분 쉽지 않더라고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진짜 제가 내가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정말 제 ‘자아’가 죽지 않으면 할 수 없었어요.
‘자아’(自我, one’ s self) <철> 나, 의식자가 다른 의식자 및 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하는 자칭, 자기와 동의어, 심리학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각 개인의 의식이나 관념을 지칭하는 말로 쓰임,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러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이 제가 이렇게 이런 말씀들을 나눌 때 어느 정도 지금 받아들이고 계신지,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신지, 제가 선포하면 여러분 아멘 하시잖아요. 그런데 정말 그것이 구체적으로 지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너 그건 내려놔 너 그거 나에게 달라 하면 진짜 우리가 내려놓고 주님께 주저 없이 드릴 수 있는지 그것 때문에 제가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이 일이 쉽지 않아요. 주님! ‘순종’이 쉽지 않습니다.
‘탄식’(歎息, 히브리어 :아나하, στεναγμός :스테나그모스, sigh) 1 탄식, 한숨, 신음, 2 한숨을 쉬며 한탄함. 3 <용1>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을 가리켜서 쓰였다(욥 3:24, 시 6:6). <용2> 성령께서도 탄식하시는 것으로 언급되었다(롬 8:26) 4 유 (아나호),~~~~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우리가 성경에서 그냥 글로 읽으니까 아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나갔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어 갈대아 우르를 떠났어, 그러나 저는 조금 앎니다. 그때 그 아브라함이 한발 한발 나아가면서 한곳 한곳 어느 지점에 도착할 때마다. 그 마음에서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들이 끊임없이 그에게 밀려왔을지 그래서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의 ‘주권’ 통치 아래 들어가지 않으면 자신을 거기에 내려놓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그 부흥을 그곳에서 계속 부흥의 그 역사를 하시면서 계획하신바 뜻하신 바를 성취하실 수 없습니다.
'주권'(主權, דיגנ :나기드, ruler) 1 통치자, 지도자 , 우두머리, 2 가장 중요한 권리, 나라를 구성하는 요소로 가장 높고 독립적인 권력, 3 <용1> '탁월'이라는 개념이 가장 충분하게 표현되는 단어이며 정치, 군사, 종교 분야의 지도자들을 가리켜서 쓰였다(삼하 5:2, 왕상 1:35), <용2> 모든 주권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마음의 원대로 주장하시며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바꾸어 놓지 못한다(대상 29:11, 엡 1:11), 4 유 (바알)~~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래서 여러분이 이 부분을 놓고 심각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도와주세요. 정말 사랑하는 교회에 성령과 그 말씀과 성령이 하나 되는 눌라운 부흥을 통해서 하나님이 수많은 영혼들을 열방에 영혼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데 그 엄청난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시는데 나도 쓰임 받게 해주세요. 내가 탈락(脫落:어떤 데에 끼지 못하고 떨어지거나 빠짐) 되지 않도록 그렇게 내가 주님이 무엇을 명하든지 순종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단도리를 해 주시고 준비를 시켜 주셔서 나에게 큰 믿음으로 나를 주님께서 단련시켜 주셔서 꼭 나도 그렇게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나가는 말로 기도하지 마시고 정말 목숨 걸고 주님께 나도 꼭 쓰임 받게 해 주세요. 나도 부흥의 통로 나도 주님의 그 놀라운 영혼 추수의 놀라운 통로가 되게 해주세요.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가서 칭찬받을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시옵소서! 그렇게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계속 기도회가 이어질 텐데 여러분 그때마다 빠지지 말고 참석하셔서 우리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했잖아요. 저희도 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부흥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걷는 삶입니다!
둘째로 부흥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걷는 삶이에요.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순종할 수 있는 정말 쉽게 순종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되더라고 하나님의 그 능력 안에 거하는 삶이 되니까 주님께서 그곳에 오셔서 완전히 우리들을 점령해 주시니까 불가능할 것 같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순종이 되더라고요. 이토록 부흥 안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일일지라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가능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분량을 뛰어넘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부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부흥의 가치는 엄청납니다. 정말로 저는 부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기 때문에 저는 이제 물러설 수 없어요. 저는 이제 포기할 수 없어요. 그때 그 능력 안에서 살았던 그 놀라운 정말 신바람이 난다 그러죠. 그런 그 삶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서 이제는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주님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도와 주세요. 도와 주세요. 제가 물러서지 않도록 더 큰 부흥을 스미스 위글스위스 목사님이 예언한 그 부흥을 반드시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볼 수 있도록 주님 내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처절하게 기도합니다,
한 가지 제가 예를 들어 드릴게요. 그 당시에 이제 저희 아들이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갔고 저희 딸이 고3이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엄마로서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근데 너무 제 마음이 절박(切迫 :(일이나 사정이) 매우 다급하고 절실하다.) 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반드시 베풀어 주셔야만 되는 그런 상황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제가 그냥 겁 없이 무리한 작정을 해버렸어요.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제가 철야를 하겠습니다. 그것도 그냥 뭐 한두 시간 철야한다. 이게 아니라 밤을 새워서 철야를 하겠습니다. 그 기간이 300일이 넘어요. 만 10개월이었으니까! 그 하루도 빠지지 않겠다고 제가 하나님께 약속을 드렸어요, 그래서 보통 자정 12시나 새벽 1시에 제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거의 아침 7시 8시 끝나요, 그런데요 정말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제가 멀쩡하게 그 일을 다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낯에는 이문동 그 기도 모임에 가죠! 거기서도 우리가 얼마나 울며불며 하루에 다섯 여섯 시간씩 기도해요. 그리고 또 집에 와서 잠깐 집 돌아보고 또 밤에 철야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잘 수 없었어요. 그리고 평균 보통 10시간씩 기도하는 거예요. 다 합하여 그런데요. 불가능할 것 같잖아요. 정말 지친 적도 없고 힘든 적도 없었어요. 하루도 펑크 낸 적이 없었고, 기쁨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 제 책 영광에서 영광으로 표지 뒷면에 보면 누구 없나요. 이 글이 실려있죠! 제가 환상을 본 그 내용이 실려 있는데요. 그때 그 기도중에 저희 다락방에 올라가서 그 놀라운 그 계시가 들어있는 그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런 유(類 :‘종류’의 준말.)에 은혜를 그 300일이 넘는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기도하면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만지심을 받았겠습니까?
그냥 보통 우리 교회(※,전에 종교적인 교회 다닐 때)에서 철야 할 때 보면, 지금 여기서도 주무시려는 분이 있어요. 눈 뜨세요. 지금 눈 감고 계세요. 정신 차리세요, 마지막이에요. 곧 끝나요. 지금 끝나요. 보통 철야 하러 가면 거의 반은 자요. 그죠! 저 철야기도 많이 했어요. 그럼 제 앞 뒤 주변 사람들은 거의 자요. 한참 자다가 누가 아멘 하면 아멘 하고 또 자요. 저는 절대 철야하면서 안 자는 사람이라 다 봐요. 심지어는 막 코도 골아요. 근데 저는 그렇게 철야한 거 아니에요. 정말 무릎 꿇고 앉으면 깨어날 때까지 화장실에 한 번씩 이제 갔다 오죠! 졸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고 무슨 말이냐면 그렇게 ‘강력’한 은혜가 부어진 거예요. 그렇게 ‘강력’한 주의 임재와 ‘권능’안에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내 안에서 너무너무너무너무 ‘강력’하게 운행하셨기 때문에 '생명'이 충만했기 때문에 지치지 않은 거예요. 힘들지 않아요.
‘강력’(強力, ἰσχύς :이스퀴스, strength) 1 힘, 2 굳센 힘, 3 <용1> 인간의 능력과 주님의 능력을 모두 언급한다, <용2> 그리스도인의 강건함의 근거는 주님의 능력이다, <용3> 주께서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큼을 나타내어 쓰였다(엡 1:19). 4 유 (뒤나토스),
‘권능’(權能, כוח :코아흐, δύναμις :뒤나미스, power) 1 힘, 능력, 세력, 재능, 2 권세와 일을 처리하는 능력, 3 <용1> ‘활동의 능력’을 의미한다, <용2> 정적인 의미에서 돌처럼 참는 능력을 시사하기도 하나 보다 일반적으로 생산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용3>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 전능성을 나타낸다(출 15:6), <용4> 거짓자들도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 수 있다(마 7:22) 4 유 (게부라)~~
'생명'(生命, נֶפֶש :네페쉬, ζωή :조에, life) 1 생명, 영혼, 피조물, 사람, 욕구, 마음, 2 목숨, 살아가는 원동력, 사물의 요소, 3 <용1>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창 2:7), 그 분의 의해 보존된다 (시 66:9), <용 2> 성경은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음을 강조하고 사람이 피를 먹는 것을 금하였다(레 17:11) (신 12:23), 초대교회가 공론을 모아 의결한 사항 가운데 피를 먹는 것을 금한 사실이 있으므로 성도들은 피를 먹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용3> 생명의 대한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사탄이 임의로 어찌하지 못한다(욥 2:6), <용4> ’네페쉬‘는 인간의 정신적, 의지적, 욕구, 즉 욕망이나 의지를 가리킬 수 있다, <용5> ’네페쉬‘는 구원의 대상으로 언급된다 (수 2:13), <용 6>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요 3:36), 4 유 (헬레드 )~~~~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러면서 주님의 그 마음을 주님의 그 심정을 세상을 바라보시는 영혼들을 바라보시는 나를 바라보시는 그 당시 저희 아이들이 그 힘든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바라보시는 딸을 바라보시는 그 모든 주님의 그 마음을 시간 시간 주님이 나에게 펼쳐주셨기 때문에 내가 주님이 어떠한 주님인지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주님이 얼마나 큰 긍휼의 강으로 자신을 채우고 계신지 그때 다 알게 된 것입니다.
무한’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제가 맛보게 된 거예요, 여러분 하루에 10시간씩 300일을 그렇게 내리기도 하니까! 기도가 어느 정도 하다가 멈추고 어느 정도 하다가 멈추고 그러면 어떤 영적인 단계가 제자리걸음이요.
‘무한’(無限, רֹב :로브, great) 1, 다수, 풍부, 2 한이 없음, 3 <용1> 많은 분량의 물질과 노력들을 묘사하는 데에 쓰였다, <용2> 하나님의 공의와 관련하여 언급되었다(욥 37:23), <용3>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은 모든 한계를 초월한다는 개념을 나타낸다.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항상 그 지점까지만 가는 거예요. 그리고 또 은혜 쏟았다가 그죠, 성령 소멸시켰다가 또다시 기도 생활 시작하면 또 어느 정도 올라가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주의 그 만지심을 받으면서 계속 제가 더 깊은 곳으로 하나님의 그 여호와의 산 그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가니까,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그 놀라운 영광이 계속 저에게 보여지고 또 계시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으로만 충만하게 되는 그 일이 그때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제가 그래서 그때 저는 ‘온전’할 맛보았다고 말한 거예요. 그리스도인의 ‘온전’을 맛보았다고 말한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ὴ βασιλεια τοῦ θεοῦ, :바실레이아 투 데우, Kingdom of God) <신>하나님 나라의 백성(계1:6) (계 5:10),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마 13:43) (마 25:34) (막 10:30) 하나님의 통치 혹은 지배(마 :33) (막 10:15) 등을 언급하여 쓰임, 이것은 정치⦁경제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개념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통치하는 인간의 삶을 가르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그 활동의 최종적인 목적을 ‘하나님의 나라’ 에 두어야 함 (골 4:11) (행 8:12) (행 19:8) (행 28:23)
‘온전⁷’(穩全 τελειοω :텔레이오오, complete) 1 <원⦁형> 완성하다, 성취하다, 수행하다, 2, 흠결이 없이 완전함, 3 <용1> 주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과 관련하여 쓰였다(요 17:23), 주와 하나가 되고 성도 상호 간에 하나가 되는 일이 선행될 때 교회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용2>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말씀을 신실히 지키는 자들에게 충만히 임함은 물론 (요일 2:5), 심판의 두려움을 제거함으로써 자체의 완전함을 나타낸다.(요일 4:17), <용3>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함을 의미한다 (히 7:19) (히 10:1, 4) <용4>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완성을 언급하여 쓰였다(히 11:40) (히 12:23) 4, 유 (에피텔레오) (텔레이오스) (텔레이오테스) (텔레이오시스) (텔레오)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정말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살게 되는 거예요. 사람의 영역으로 그죠! 사람의 어떤 힘으로 한계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살게 되는 일이 부흥 안에서는 정말 제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초자연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주님으로 산다.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그 놀라운 권능의 삶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부어지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여러분 겁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그럼 목사님 또 우리 10시간씩 또 기도하게 하실 거예요. 10시간씩 막 이제 기도하실 거예요. 할 수 있습니다. 웃음~~~ 나는 여러분을 그렇게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아요. 만약에 주님이 주님이 우리에게 10시간씩 기도해 명령을 하시잖아요. 그러면 그러면 할 수 있습니다.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라고만 하고 힘을 주시지 않고 ‘능력’을 주시지 않고 붙들어 주시지 않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 명령하셨을 때 순종하잖아요. 그러면 주님이 바로 붙드십니다. 그 ‘능력’의 손으로 붙드십니다. 그리고 능히 그 일을 하게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겁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능력’(能力, δύναμις :뒤나미스, עֹז :오즈, power) 1 권능, 힘, 능력, 역량, 기적, 놀라운 일 세력, 2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 3 <용1> 신적 능력을 가리켜서 쓰였다(눅 1:35) <용2> 성도들이 지닌 힘, 하나님의 사람이 가진 힘, 기적을 행하는 권능(골 1:11) 등을 나타낸다. <용3> 성령의 충만한 사람들의 삶에서는 이 능력이 역사한다(행 1:8), <용4> 이것은 사람에게 기원을 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입히우는 능력을 가리킨다(눅 24:49), 유 4 (게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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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레(지레 :무슨 일이 채 일어나거나 어떤 때가 되기 전에 미리) 겁(怯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 먹지 마시고, 알았어! 내가 3차에는 가지 말아야지 피해야지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못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을 얻는 거예요. 그 고귀하신 보배로운 주님을 얻는 거예요. 주님으로 전부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주의 형상을 이루는 거예요.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 그냥 멈짓해요. 왜 전혀 다른 그 얼굴에서 다른 빛이 나오니까 세상 사람들 일반 사람들에게 있는 빛이 아니라 여호와의 그 뚜렷한 영광의 빛이 그 얼굴에서 발산하니까! 뿜어져 나오니까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이 얼굴로 드러난다고 그랬잖아요.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그때는 그런 경험을 참 많이 했어요. 제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가고 있으면요. 낯선 사람이 오다가 제 앞에서 멈짓서요. 저를 한번 쳐다봐요. 저는 처음에는 저분이 뭐 길을 좀 이렇게 왜 우리가 어쩌다 보면 서로 부딪치죠 정말 그 일이 제가 길거리에 나갈 때 하루 이틀 걸러서 한 번씩은 있는 거예요. 그때 제가 알았어요. 그렇게 제가 모세가 그죠! 하나님 앞에 머물렀을 때 그 얼굴이 빛났죠! 그래 수건으로 가렸잖아요. 그런 것처럼 특히 이 기간이죠! 하루에 10시간씩을 그렇게 주님 앞에 머무르고 낮에는 계속 이문동에서 또 난리 법석이나고 뒹굴고 회개하고 입신하고 주님하고 난리가 나고 그리고 밤에 집에 가서 그렇게 철야하는데 제가 언제 죄(罪) 지었겠어요. 그죠 죄(罪) 지을 시간이 없어 죄(罪) 지을 시간이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살았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움찔움찔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사람 얼굴에서 나올 수 있는 빛이 아니니까 깜짝 놀라는 거예요. 가장 제가 인상적이었던 거 저희 집이 경희대 근처니까 아마 교수님이나 됐었던 거 같아요. 굉장히 왜 딱 엘리트처럼 보이시고 벌써 사람 딱 이렇게 달라 보이는 어떤 풍채도 다르고 그런 좀 연세 있는 남자분이 정말 저를 물끄러미(물끄러미 :우두커니 한 곳 만 바라보는 모양) 보고 ‘서’있는 거예요.
제가 그때 비로소 아~이게 예삿일(例事- :보통 흔히 있는 일)이 아니구나 그러다가 제가 이제 사람이 나한테 뭐 지금 나를 아는 사람이어서 이렇게 멈춰서 있는지 나를 이렇게 보고 있는지 제가 이렇게 보니까 그때 좀 놀라시면서 무안(無顏) 해 하시면서 가시더라고요. 여러분 저는 제가 그토록 그토록 부흥을 원하는 이유를 여러분들이 좀 아시고 여러분도 사모하면 좋겠어서, 이 말씀을 나누는 거예요. 저는 다시 또 그런 그런 은혜를 덧입기를 원합니다. 정말로 그때 제 마음은 천국이었어요. 진짜 천국이었어요. 그늘이 전혀 없었어요. 그늘짐이 전혀 없었어요. 이 세상의 기운을 제가 느낄 수 없었어요. 그냥 하나님의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득한 의와 평강과 희락 그것 많이 제 안에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어요. 그것들 많이 제 안에서 계속 요동쳤어요. 그러니까 아주 그 어린아이가 엄마 품속에서 먹고 싶은 젖을 풍족하게 먹고 만족한 그런 상태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얼마나 복된 상태에요. 여러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서는 그렇게 ‘영원’토록 사는 거예요.
‘영원¹’(永遠, עוֹלָם :올람, αίώνων :아이온, eter-nity) 1 영원, 항상, 영구히, 고대의, 2, 앞으로 시간이 끝없이 오램, 앞으로 오래도록 변함없이 계속됨, 3 <용1> 매우 먼 미래로의 무한한 연속을 나타낸다, <용2>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실존의 형태를 지칭하는 말이며, 시간의 무한한 연속성이라는 개념과 시간을 초월한 무(無)시간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가 하나님만이 가지시는 독특한 속성인 영원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용3> ‘영원’이 끝없는 시간의 계속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윤회설을 정당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용4> 하나님의 언약(창 9:16),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창 17:8), 하나님의 이름(출 3:15), 하나님의 규례(출 12:14), 하나님의 인자하심(대상 16:34), 하나님의 말씀(시 119:89), 하나님의 의(시 119:142), 등은 모두 ‘영원한’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4 유 (오레크야¯밈)~~~~~~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래서 반드시 천국 가야 되는 거예요. 제가 조금 맛본 천국도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좋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이길래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천국 가야됩니다. 그 나라의 그 ‘영광’ 영원한 ‘영광’ 그 생명 그 하나님의 아름다움 그것이 무엇인지 어는 정도 알기 때문에 절대로 빼앗길 수 없고 놓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되는 그 나라와 ‘영광’을 얻어야 되는 그 결심으로 굳은 결심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꼭 이렇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광³’(榮光, כבוד :카보드, glory) 1,영광, 명예, 2, 빛나는 영예, 3, <용1> 종종 부나 재물, 중요하고 긍정적인 명성 모두를 나타낸다(시 85:9), <용2> 당당한 인물이나 지위를 강조하는 추상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삼상 4:21) <용3> 요새화된 도시, 주권, 백성들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사물들의 충만함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사 17:3) <용4> 자신이 살고 있는 영역 내에서의 개인의 지위를 강조하여 ‘영예’ 혹은 ‘중요함’ 일이라는 의미로 쓰인다(잠 20:3), <용5> 왕가에 속하는 ‘영예 ’와 같은 ‘고귀함’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왕상 3:13), <용6>하나님에 대해 사용될 때에는 그분의 합당한 속성을 나타낸다(수 7:19) <용7> 예배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시 29:1) <용8>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어 쓰이기도 한다(사 40:5)
‘영광⁴’(榮光, תפארה :티프아라, splendor) 1, 아름다움, 영광, 자랑, 2, 빛나는 영예, 3, <용1> ‘영화롭게 하다’, ‘아름답게 하다‘, ’장식하다‘ 등을 뜻하는 동사 (פָאַר :파아르)에서 파생한 명사이다, <용2> 대분분의 용례에서 ’~의 아름다움‘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용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언급되어 나타난다(사 46:13) (렘 13:11) (렘 33:9), <용4> 해를 끼친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승리와 영광이 된다(잠 19:11)
‘영광⁵’(榮光, δόξα :독사, glory) 1, 광명, 찬란, 영광, 위엄, 장엄, 훌륭함, 명성, 2, 빛나는 영예, 3, <용1> 축어적으로 광휘⦁광채(눅 9:32) (고전 15:40-41), 영광⦁위엄(롬 1:23) (롬 6:4) (히 1:3) 등을 나타내어 쓰였다, <용2> 그리스도(눅 24:26)와 및 그의 제자들의 내세의 상태(롬 8:18), (살전 2:12)를 가리킨다. <용3> 훌륭함, 장대함 등을 나타낸다(마 6:29), <용4> 명성이나 영예 등을 언급하여 사용되었다(요 8:54) (롬 3:23), <용5> 복수형으로 영광스러운 천사들 및 주권자들, 임금들, 저명한 사람들을 지칭한다(벤 2:10) <용6>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물질적⦁도덕적으로 나타나는 데에 흔하게 사용되었다, 4, 유 (독사조)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런데 이런 일뿐 아니라 부흥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정(旅程)이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영육’(靈肉)간에 모든 영역에서 돌파가 너무나 쉽게 일어나요.
'영²'(靈, πνευμα :프뉴마, רוּח :루아흐, 1 숨, 바람, 기운, 목숨, 생명, 영혼, 영적 상태, 기질, 영, 성령, 2 신령, 영혼 등의 약어, 3 <용1> 기본적인 의미는 숨, 바람, <용2> 몸의 생명을 주는 기운, 목숨을 지칭하여 쓰인다(눅 8:55), <용3> 인간의 구조를 삼분할 때 그 가운데 비물질적 자아를 가리키는 말이다(살전 5:23), <용4> 육과 영이 인간의 인격 전체를 의미한다면 영은 그 한 부분에 해당한다, 즉 통찰력⦁감정 ⦁의지의 원천 내지는 좌소이며 사람의 내적 생활의 대표적인 부분이다(막 2:8) (롬 8:16), <용5> 독립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을 가리키거나(요 4:24), 악한 영⦁귀신 등을 지칭하여 사용되기도 한다(마 12:43), <용6> 하나님의 영(고전 2:11), 그리스도의 영(행 16:7), 성령(마 12:32)등과 같이 하나님과 하나님 아닌 것을 구별 짓는 참된 영을 언급하여 쓰였다, 4 유 (카보드)~
‘육¹’(肉 , Ψυχικός :프쉬키코스, unspiritual) 1 <원 ∙ 형> 육적인, 영적이 아닌, 세상적인, 2 살, 3 <용 > 육에 속한 사람 (고전 2:14), 육의 몸 (고전 15:44) 등 영적인 것과 대립 되는 의미로 쓰였다, 4 <적>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에 대해 무지하다,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래서 제가 이렇게 표현을 하게 되더라고요, 두 발로 걸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날개를 달고 비행(飛行)하는 여정이다. 우리가 부흥이 아닌 그 일상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는 그냥 두 발로 걸어가는 여정이라면 부흥(復興) 안에서는 날개를 달고 비행하는 여정입니다. 매일 구름 위를 걷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제가 꿈속에서도 그런 본다고 했었죠! 제 발이 땅을 딛고 걷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는 ‘떠’다녀요. 그 당시에 제가 그런 꿈들을 많이 ‘꾼’ 거예요. 그냥 날아다녀요. 다른 사람들은 막 걸어가고 있는데 저는 그냥 공중에 20~30cm 떠서 ‘쭉’~~나는 우리 그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세상 ‘멍에’를 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멍에²’( על :올, ζυγός :쥐고스, yoke) 1 멍에, 2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고자 마소의 목에 얹는 ‘∧’ 모양의 가로 나무, 3 <용1> 나무나 쇠로 만든 멍에를 가리키며, 짐승의 멍에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은 제한적이다 (신 21:3), <용2> 왕정의 압제정치, 속박과 노예 상태, 죄의 지배 (애 1:14), 등과 같이 대부분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4 <적> 멍에를 벗는다는 것은 속박으로부터의 구출을 의미한다, 5 유 (켈리)~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게 정말 실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꼭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 같이 한마음으로 강력하게 주님이 저희 교회 더 강력한 영광으로 임하셔서 더 큰 부흥이 일어나도록 우리가 목숨 걸어야 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그러면 저희 교회 오기만 해도 수많은 영혼들이 어떤 영혼들이 들어오든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을 맛볼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를 그냥 느낄 수밖에 없어서 하나님 이곳에 계시군요. 하나님 살아 계시군요. 꼬꾸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난 우리 4개월 동안 1차 기도회가 시작되고 지금 이제 4개월 지나왔어요.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돌파가 일어났어요. 그런데 아직 미약합니다. 어떤 분은 야~ 나 이제 됐어! 아~나 바뀌었어 나 달라졌다니까! 나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어! 그런데 아직 미약해!
‘주’(主, אֲדֹנָי :아도나이, Κύριος :퀴리오스, Lord) 1 주님, 2 <기> 하나님, 예수, 3 <용1> 히브리어로 된 하나님의 세 중요한 이름들 가운데 하나, 나머지 둘은 יהוה(야훼) 와 אֱלֹהִים(엘로힘)이다, <용2> 이와 같은 어형이 주로 나타나는 곳은 시편, 예레미야 애가, 후기 예언서들이다, יהוה를 망령되이 일컫는 위험을 피하고자 경건한 유대인들은 고유명 그 자체를 사용하는 대신에 아도나이를 쓰기 시작했다, <용3> 모세가 여호와를 아도나이로 칭하였다 (출 4:10, 34:9), <용 4> 아도나이는 하늘에 계시며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을 비웃으신다 (시 2:4), <용 5> 다윗은 아도나이께 자신의 입술을 열어 주시도록 간구하였다,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고자 열망했기 때문이다 (시 51:15), 4 유 (에피스타테스)
‘동행하다’(同行--, συμπορεύομαι :쉼포류오마이, ילך :얄라크, accompany) 1 같이 가다, 모이다, 2 길을 함께 가다, 3 <용1> 제자 및 허다한 무리가 주와 같이 간 것을 나타내어 쓰였다(눅 7:11), <용2>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주께서 같이 가시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눅 24“15), 4 유 (보)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어땠나요. 너무 좋지 않으셨나요. 내 마음이 조금 바뀌었는데도 내 안에 주님이 이전하고 다른 차원에서 내 안에 임하시니까 완전히 여러분 심령이 지금 다른 상태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너무 좋잖아요. 안 좋으십니까? 행복하지 않으셨나요. 행복하셨어요. 참 감사해요...... 우리가 조금 은혜받았는데도 이렇게 신앙생활이 참 즐겁고 신나는구나! 그런 느낌 가지신 분들 많이 있으셨을 거예요. 그러면서 여러분이 조금은 제 심정 이해했을 수 있어요. 아~ 내가 조금 달라졌는데도 이전하고 내가 조금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좋지 내 마음이 너무 가벼워 내가 너무 행복해 그렇게 느끼시면서 여러분들이 아~ 알겠다 목사님이 왜 그렇게 부흥을 목말라 하는지 알겠다. 여러분이 이것을 경험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여러분 좀 더디기도 하고 힘들게 오셨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굳은 땅(굳은 땅, 생땅 生- :전에 한 번도 갈아, 본적이 없는 본디 그대로의 땅)을 처음 기경(起耕) 할 때 그때는 힘들죠! 무척 더디고 애를 먹습니다. 더 많은 수고를 해야 돼요.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가속도(加速度)가 붙죠! 그래서 쉽게 기경이 되는 것처럼 ‘3차부터는 달라질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이전에는 한 시간을 몸부림쳐야 겨우 주님을 느꼈다면 이제는 주님 하면 그 순간에 바로 주의 임재를 느끼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는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게 되는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깊은 만지심을 받게 되는 그 은혜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전처럼 그렇게 여러분이 힘들게 기도하고 주님과 교통하고 신앙생활하는 그 차원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에서 출발하게 되실 것입니다. 서게 되는 거예요.
또한, 셋째로 부흥은 변화에서 변화 온전에서 온전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의 여정입니다!
여러분 부흥은 주님의 ‘거룩’을 대면하게 됩니다! 주님의 '의‘로움을 대면하게 돼요. 주님의 '선'하심을 대면하게 됩니다. 주님이 그 현장에 임하여 계시기 때문에 악이 없고 거짓이 없는 참된 주님의 빛 앞에 서는 거예요.
‘거룩’(聖, קֹדֶש :코데쉬, αγιασμος :하기아스모스, holiness) 1 구별, 거룩함, 신성, 2 성스럽고 위대함, 3 <용1> 범속한 것과는 구별되는 사물의 본질적 특성(출 15:11) <용2> 이스라엘 종교의 기본요소 중 하나는 신성의 영역과 범속의 영역간에 상호 불가침 구별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용3>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살전 4:3) 4 유 (카다쉬)~~~~
'의'(義, צדקה :체다카, δικαιοσύνη :다카이오쉬네, righteousness) 1 공의, 의, 2 사람이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 3 <용1> 재판관들의 역할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그들의 모든 판결은 진실하고 편견이 없어야 했다(레 19:15, 36) <용2> 아브라함의 의는 믿음에서 난 것이었다, 그가 여호와를 믿었으므로 그분이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신 것이다(창 15:6) 마찬가지로 성도의 의도 믿음으로 밀미암는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이다(롬 1:17) <용3>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관이시며 (시 11:7), 그분의 판단은 의로우시다(시 119:144, 160), <용4> 주의 의는 영원한 의이다(시 119:142), <용5> 주의 의는 환난으로 인해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건지신다(시 31:1), <용6> 사람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는 결코 의에 이르지 못한다(롬 3:20), <용7> 의를 굳게 지키는 것은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잠 11:19), <용8>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한다(잠 13:6) 4, 유 (딘)~~~~
'선'(善, טוב :토브, άγαθό :아가도스, good) 1 <원 ∙ 형> 좋은, 기쁜, 아름다운, 유쾌한, 즐거운, 귀중한, 2 착함, 훌륭함, <윤> 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 3 <용1> 실제적이거나 경제적인 유익을 언급하는 것으로 자주 나온다(창 41:5, 36),(생략 )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러니 그 주님의 거룩 앞에서 의로움 앞에서 선하심 앞에서 누가 꼿꼿이(꼿꼿이 :휘거나 굽은 데가 없이 쪽 바르게) 서 있겠어요. 어찌 나는 죄없다 하겠어요. 그냥 바로 꼬꾸라지는 거예요. 그리고 정말 자신도 모르게 나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사야의 고백이 저절로 나와요. 주님이 그곳에서 거룩의 실체를 드러내시고, 그 의로움의 실체를 드러내면, 우리는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빛 앞에 자신이 그대로 폭로되고 숨길 수 없다고 제가 말씀드리죠! 가릴 수 없어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의 이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탄식하고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정도예요, 언제까지 울어야 돼 부흥 안에서는요. 우리는 2년 동안 한 번도 '애통'없이 지난 간 날이 없었습니다. 주님 앞에 서면은 우리의 그 ‘어둠’ 그 ‘추함’ 우리의 그 ‘부족함’ 우리의 그 ‘연약함’ 그 ‘불완전함’ 계속 계속 오늘도 그것이 드러나고 그 다음 날도 그것이 드러나고 그래서 계속 탄식하면서 '애통'하며 제발 도와주세요.
'애통'(哀痛, 히브리어 :에벨, πἐνθος :펜도스, mour-ning) 1 애도, 2 매우 슬퍼함, 3 <용1> 죽은 자를 위해서( 창 50:11), 심각한 위기 앞에서 슬퍼하는 것(에 4:3)을 언급하여 쓰였다, <용2> 유다와 예루살렘의 하나님께 대한 범죄는 무도가 변하여 애도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애 5:15),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자들은 모두가 동일한 운명을 맞게 된다, 4 유 (바카 )~~~~~~~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살려주세요. 은혜 베풀어주세요. 저를 씻겨주세요.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씻겨지지 않겠어요, 우리의 모든 더러움이 씻겨 나가고 불의와 불법이 꺾이고 이런 것들이 다 으스러지고 부스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그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 일이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날마다 애통하고 통곡하며 울부짖는 거예요. 그러니 어찌 주의 은혜가 임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어찌 잠잠히 계실 리가 있겠습니까? 불쌍히 여기실 수밖에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고 도와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씻겨주시고 싸매주시고 고쳐주시고 단장시켜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뀌는 거예요. 거룩한 주님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인의 그 온전이 계속 매일매일 온전에서 온전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지는 그 여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기쁨이 엄청나요. 여러분 이번에 조금 변화돼도 기쁘고 즐거우셨잖아요. 저도 너무너무 행복했거든요. 그때도 마찬가지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육체가 고단 것 같잖아요.
당연히 자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모든 것이 올 스톱(all stop :모든 것이 일제히 중단됨) 어디를 가요, 모든 것이 올 스톱 뭐 기웃거릴 수가 없어요. 딱 필요한일, 내 생계유지를 위해서 딱 필요한일 외에는 다 이제 주님의 그 영광 안에서 주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주님께 만지심을 받고 나아가는데 우리...... 그래서 기쁘죠! 너무너무 매일 자기의 얼굴이 달라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매일 주님이 성형(成形)을 해줘 가지고 여러분 얼굴에 미모가 매일 달라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좋아요. 그렇죠! 너무 행복하죠! 영혼도 똑같아요. 내 영혼이 내 영혼의 얼굴이 내 모습이 날마다 날마다 예쁘게 빚어지니까 예쁘게 바뀌니까 너무 좋은 거죠! 힘들어도 개의치 않는 거예요. 잠 못자도 개의치 않는 거예요. 먹지 못해도 개의치 않는 거예요. 세상 것 만질 수도 없고 즐길 수 없어요. 그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너무 좋아서 자신이 바뀌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로 주님이 임하셔서 부흥 안에 들어가면 적어도 거기에서 아주 '강퍅'한 마음으로 튕겨져 나아가지만 않으면 다 바뀌는 거예요. 아멘이십니까?
'강퍅'(剛愎, 히 :셰리루트, σκληρύνω :스클레뤼노, stubbornness) 1 완고, 완악, <헬 ∙ 동> 굳게 하다, 2 성미가 까다롭게 고집이 셈, 3 <용 > 하나님의 훈계를 완강히 거부하는 자들을 가리켜 쓰였다 (시 81:12), 4 유 (케쉬 )~~~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냥 거기에 그 현장에 있기만 하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씻어질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목욕탕에 다 들어가면 뭐 씻어지지 물속에 앉아 있으면 내가 게으른 사람이 ‘때’(때 :몸이나 옷에 먼지 따위가 묻어 더러운 것) 안 밀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떨어져 나와 어쩔수 없어 안 그런가요? 예전에 어릴 때 기억인데 힌 ‘때’들이 둥둥 떠다니잖아요. 어렸을 때 그때 대중목욕탕에 가면, 그 영광 안에 그 임재의 물 곁 안에 그 보혈의 바다에 거기 앉아 있는데 안 씻겨지면 그건 ‘보혈’의 능력이 없는 거요 그죠! 씻어집니다,
‘보혈’(寶血, precious blood) → 피 참조,
‘피’( דמ :담, αἷμα :하이마, blood) 1 피, 2 <생> 사람, 동물의 혈관 가운데 있는 붉은 빛의 체액, 3 <용1> 전쟁, 살인 등에서와 같이 대체로 죽음을 초래하는 폭력과 파괴를 통한 피흘림을 언급하여 쓰였다(창 4:11, 왕상 2:5), <용2> 희생 제물의 피(출 23:18, 레 1:5), <용3> 순교자들의 흘린 피(마 23:35), 4 <용4>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마 26:28, 눅 22:20), <용5> 구약에서는 희생 제사에 관해 다룬 레위기(88회)와 주의 심판의 기사들을 다룬 에스겔(55회)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용6>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은 예수의 피 때문이다(히 10:19), <용7> 자기를 살피지 않고 성찬식에 참예하는 자는 주의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전 11:27), 4 유 (하이마텍퀴시아),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이제 시간 차이는 있을 수 있고 정도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그래도 튕겨 나가지 않고 그 현장에 앉아 있기만 하면 떨어지는 그죠! 그 부스러기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먹게 됩니다. 덧입게 됩니다. 그래서 바뀝니다. 변화됩니다. 여러분 우리 꼭 사랑하는 교회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도록 주님께서 더 강력하게 임하시도록 우리 주님을 더 절박하게 구합시다. 주님의 마음에 맞게 우리가 행동을 합시다. 언행 심사를 조심합시다. 정말로 주님을 사모하고 세속적인 것, 세상적인 것, 더럽고 추한 음란한 죄들 다 끊어 버리고 이제는 정말 주님께만 마음을 모르고 눈길을 향하고 그렇게 전심하여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그리스도인의 ‘온전’이 우리 안에서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이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아멘 이십니까? 정말 놀라운 은혜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온전’이 불가능하다는 거짓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에 ‘온전’이 불가능하다는 그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무수히 많은 목회자와 신자들이 죄를 허용하면서 무너지는 거예요.
‘온전⁷’(穩全 τελειοω :텔레이오오, complete) 1 <원⦁형> 완성하다, 성취하다, 수행하다, 2, 흠결이 없이 완전함, 3 <용1> 주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과 관련하여 쓰였다(요 17:23), 주와 하나가 되고 성도 상호 간에 하나가 되는 일이 선행될 때 교회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용2>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말씀을 신실히 지키는 자들에게 충만히 임함은 물론 (요일 2:5), 심판의 두려움을 제거함으로써 자체의 완전함을 나타낸다.(요일 4:17), <용3>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함을 의미한다 (히 7:19) (히 10:1, 4) <용4>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완성을 언급하여 쓰였다(히 11:40) (히 12:23) 4, 유 (에피텔레오) (텔레이오스) (텔레이오테스) (텔레이오시스) (텔레오)
‘순종’(順從, שָׁמַע :샤마, ὑπακούω :휘파쿠오, obey) 1 <원⦁동> 듣다, 경청하다, 순종하다, 2 순순히 따름, 3 <용1> 주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준행하는 것을 가리켜 쓰였다, 순종은 들음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다, 주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두 가지 중에 하나의 반응을 보이는데, 하나는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부하는 것이다, <용2> 하나님은 제사나 제물보다 순종을 더 낫게 여기신다(삼상 15:22), <용3>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고 순종치 아니하면 저주가 임할 것이 경고되었다(신 28:15~), <용4> 그리스도는 범사에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으며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모범을 보이셨다(히 8-9), 4 <적> 성도에게 있어서 순종의 기준은 주의 말씀이다, 그분이 명하신 것은 무조건 실행하고, 그분이 금하신 것은 철저히 멀리해야 한다, 믿음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증거가 순종이다, 5 유 (익케하)~~~~~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말씀대로 신앙생활 제대로 하면 반듯이 ‘온전’케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순종하며 가면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짓는 일이 일상인 그런 삶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 일상이 되는 그 삶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주 부지중(不知中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쩌다 한 번 넘어지는 것이고 그의 삶의 전반(全般 :여러 가지 것의 전부)은 의롭고, 참되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바울처럼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양심’(良心, συνείδησις :쉬네이데시스, con-science) 1 의식, 양심, 도덕 의식, 2 사물의 선악, 정사 등을 판단하고 명령하는 능력, 3 <용1> 구약에는 나타나지 않고 신약에서만 발견되는 용어이며, ‘함께 알다‘를 의미하는 동사 συνείδΟν (쉬네이돈)과 관련이 있다, <용2> 마지막 날에 불신자들을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롬 2:12-15), <용3> 바울의 의해 주로 사용되었으며 착한 양심(딤전 1:19) 깨끗한 양심(딤전 3:9)이 있는가 하면, 더러운 양심(딛 1:15), 화인 맞은 양심(딤전 4:2)도 있다, <용4> 바울은 범사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힘썼다(행 23:1, 24:16),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부끄럽지 않는 삶이 실제적으로 이루진다는 거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부흥 안에서는 이것이 가속화되는 거예요. 믿어지신가요. 그냥 일반적으로 개인이 혼자 신실하게 말씀과 기도로 그렇게 정말 신앙의 ’정로‘를 걸어가도 그리스도인의 온전을 이룰 수 있어요.
’정로‘(正路 , דרך :데레크 , way) --> 정도 참조,
‘정도’(正度, דרך :데레크, way) 1, 길, 도로, 여행, 방법, 2, 올바른 길, 바른 도리, 3, <용> 의인의 길을 언급하여 쓰였다(말 2:8) 이 길은 여호와의 길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런데 부흥 안에서 또 집단적인 그 기름부음이 있어요. 집단적으로 모여 있을 때 거기에서 더 강력하게 임하는 여호와의 권능이 있어요. 그 권능 안에서 그 큰 권능 안에서 그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만지심을 받는다면 주님의 만지심을 받는다면 쉽게 그리스도인의 온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그 이전에 이문동 부흥 이전에 20년 동안 저는 정말 말씀과 기도로 신앙의 정로를 걸어갔어요. 그때도 마찬가지예요. 저 세상 등지고 살았어요. 매일매일 예배의 자리 빠진 적이 없어요. 기도 안 하고 ‘산’(산==>살다 :목숨을 이어 가다) 날 없어요. 말씀 안 보고 사는 날 없어요. 그것이 저의 그냥 일과이었어요. 그랬어도 제가 그리스도인의 온전은 이루지는 못했어요. 근접했어요. 그냥 가까이 갔을 뿐이에요.
그 차이를 제가 부흥 안에서 이제 확실히 안 거죠! 그 전에는 제 나름대로 나는 모범생이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그래도 자기 양심이 알잖아요. 그렇죠! 나는 죄짓는 것이 일상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것 막 덕지덕지 그거 취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주님 사랑하고 싶고 그래서 그렇게 매일 내가 세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 쳐다보지도 않고 눈길 주지도 않고 예배의 자리에서 정말 기도하는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모범적인 그런 신자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문동에서 부흥이 임하니까 그 부흥 안에서 주의 성령의 권능이 강타하니까 너무나 쉽게 제가 달라지는 거예요. 매일매일 달라지는 거예요. 확연하게 아는 거예요. 그전에는 변화를 잘 몰라요. 그날이 그날인 거 같아요. 내가 그렇게 바뀌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어는 순간에 문득 돌아보면 아~ 내가 많이 바뀌었구나! 내 안에 주님이 더 부요해지셨구나! 내가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있구나! 내가 주님을 더 '갈망'하고 있구나!!!
'갈망하다'(渴望--, צָמֵא :차메, thirst) 1 목마르다, 2 간절히 바라다, 3 <용> 무더운 일기 속에서 물이 없으므로 느끼게 되는 갈증은 심각하나 여호와를 향한 갈증은 이보다 더 큼을 나타내어 쓰였다(시 42:2), 4 <적> 원수들이 핍박하고 주의 도움이 끊어졌다고 느낄 때 느끼는 갈증을 알게 한다,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런데 부흥 안에서는 날마다 깜짝놀라요! 날마다 깜짝놀라요! 아~ 내가 이렇게 바뀌었어 아~ 내가 이렇게 변했어 내 생각이 내 가치관이 영혼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이전에 없던 마음이 나에게 들어와 있지, 매일매일매일매일 변화된 나를 보면서 전혀 이건 게임(game :시합해서 우열을 겨루다)이 안 되는 거예요. 부흥 안에서 우리가 변화되는 것과 그냥 일반적으로 그냥 평상시 신앙생활하면서 변화되는 것 이거는 완전히 게임(game)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강력하게 주님이 임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온전을 쉽게 빨리 이룰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그 대가(代價 :어떤 일에 들인 노력이나 희생에 대해 받는 값) 지불은 클지라도 쉽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일이 실제가 되기만 하면 전체가 엄청난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정말 어마어마(어마어마 :매우 놀랍고 엄청나고 굉장하다)한 그 천천 금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을 얻게 되는 거예요. 주의 ‘형상’안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형상’(形狀, צֶלֶם :첼렘, εἰκών :에이콘, image) 1, 형상, 2, 물건의 생김새와 생긴 모양 3 <용1>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 대해 사용되었다(창 1:26-27) (창 5:3), 근본적으로는 ‘화상 ’(likeness), ‘초상’(representation),을 가리키는 말이다, <용2>대부분 우상을 가르켜서 쓰였다(삼상 6:5), <용3> 화폐에 주조된 가이사의 형상(마 22:20), 흙에 속한 자의 형상 및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고전 15:49) 등을 인급하여 쓰였다. 4, <적> 인간은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다, 5, 유 (데무트)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러니 우리 모두를 위해서 우리가 그 일을 반드시 이룰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오늘 주님 앞에 완전히 결단하고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파이어(fire) 터널 해야 되는데, 예, 3차 기도회가 있습니다. 3차 기도회 때 또 제가 틈틈이 많이 나룰 거고요.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부흥 안에서는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온전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그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고 주님의 만지심을 받다 보면 어느 날 완전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부흥이 더 강력하게 일어나야 됩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흥 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이 주님의 벗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변화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너는 나의 벗이라!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영광 책에 기록한 것처럼 주님이 어느 날 오셔서 너희는 나의 벗이라! 너희는 나의 친구라! 그 말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명백하게 고맙다고, 저에게 그러시는 거예요.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 멤버(member :단체를 구성하는 일원)들이 다 주님의 벗이 되도록 그렇게 대가 지불을 해주어서 너무너무 고맙다. 그래서 정말 제가 주니 앞에 목놓아 울었죠!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동안에 모든 고생들 어려움들 한순간에 다 날아가더라고요. 그리고 후회만 나았어요. 더, 더 간절히 하나님을 더 ‘사모’할 걸 더 많이 기도할 걸 더 주님께만 올인할 것 어떤 자투리 시간이라도 내가 헛트려 썼다면 그것이 다 후회가 되더라고요
‘사모²’(思慕, אוה :아와, yearns) 1 <원⦁동> 바라다, 열망하다, 갈망하다, 몹시 탐내다, 간절히 기다리다, 원하다, 2 생각하고 그리워함, 3 <용1> 영혼이 주를 사모하는 것(사 26:9), 다윗이 자기 고향인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 마시기를 갈망하는 것(삼하 23:15), 사람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것(시 45:11),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것(암 5:18) 등을 언급하여 쓰였다, <용2> 종종 고기, 진찬, 악, 왕국 등이 이 동사의 목적어로 나온다, 4 유 (타이와),]
[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랬는데 얼마 전에 그 이후로 한 번씩 그렇게 저에게 이제 너는 나의 친구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 특별 기도회 때 그렇게 주님이 제가 본당에 앉아 있는데 제 손을 살포시 그러나 힘 있게 딱 쥐어주시더니 여전히 너는 나의 친구라! 제가 그 사이에 양심이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한 눈 팔던 그런 시간들이 있었는데 다시 제가 주님께로 얼굴을 향하니까,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제가 회개하고 돌이키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이제 주님만 다시 전적으로 나의 전부가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나아가니까 이전에 그 나의 실수들 나의 연약함은 전혀 기억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너는 변함없이 나의 친구야! 여전히 나의 친구야! 이문동에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나의 벗이야! 그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너무나 좋으신 주님! 여러분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든지 우리에게 무슨 허물이 있든지 무슨 실수가 있었든지 우리가 돌이키기만 하면 우리가 회개하고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그 일은 없는 일이 되는 거예요. 주님이 완전히 ‘도말’시켜 버리시는 거예요. 기억도 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세요. 주님이세요.
‘도말하다’(塗抹--, מָחָה :마하, ἐξαλείφω :엑살레이포, erase) 1 닦다, 닦아내다, 도말하다, 2 발라서 가리다, 3 <용1> 지구상에서 말살된 생물들과 관련하여 노아의 홍수 가사에서 처음 나온다, <용2> 주의 책,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는 것을 가리켜 쓰였다(시 69:28), <용3> 죄인의 죄를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시는 것을 묘사하기도 하였다(사 44:22), 다윗이 밧세바의 일로 범죄 한 후에 이를 위해 기도하였다(시 51:1),[ ※, 그랜드 기독교 낱말 큰 사전에서 발취]
그런데 조금 전에 무슨 일이 또 일어났는지 아세요. 제가 오늘 낮에 조금 예기(豫, 미리 예, 期, 기약할 기,)치 못한 일이 있었어요. 예상 못한 일 그래서 제가 설교 도중에 이제 원고를 못 보고 설교를 그냥 제가 접었어요. 제가 여러분께 죄송했어요, 교회에도 너무 죄송하고, 그래서 제가 쉬지도 않고,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그러고 나와서 저기 아까 앉아 있었어요. 근데 주님이 제게 오셔서 제 두 손을 꼭 붙드시더라고요. 그래서 걱정하지 마, 너는 나의 친구잖아! 친구는 어려울 때 더 도와주는 거야! 함께 있어 주는 거야! 내가 오늘 저녁에 너를 도와줄 거야! 네가 설교할 때 내가 붙들어 줄 거야! 내가 기름 부어 줄 거야! 걱정하지 마! 나를 믿어 나를 신뢰해 네가 설교를 끝낼 때까지 내가 네 곁에서 네 손을 붙들고, 있을 거야 너와 함께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제가 주님께 감사하면서 마음에 이렇게 안정이 되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자신의 벗들을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완전히 특별한 사람으로 특별한 긍휼과 자비로 도와주고 알뜰살뜰 보살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주님 얼마나 좋습니까?
나는 그래서 저 앞에서 제가 주님 나는 주님 없이 살 수 없어요. 나는 이 주님 다시 놓칠 수 없어요. 주님으로부터 한 발짝도 떨어질 수 없어요. 저 붙들어 주세요. 행여라도 제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면 바짝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그죠, 막대기로 지팡이로 나를 다시 주님품으로 이끌어 주세요 그리고 항상 주님 안에 있게 해 주세요. 그 사랑 안에 있게 해 주세요. 그 품 안에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제가 기도하면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원하세요. 이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벗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친한 벗이 되어서 주님과 함께 열방의 영혼들을 위해서 함께 나아가기를 한마음으로 나아가기를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결단을 하면서 우리 한 10분간만 기도하겠습니다. (마침)
”오직 예수 오직 한길 내 사랑 내 생명 찾아가는 길이 가시밭길 천리 길 억만리 길이 되어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 사랑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가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눈물이 흐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