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인자라는 것은 단지 신체적인 문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아버지가 한 행동을 아들도 똑같이 따라서 하고 아버지가 걷는 걸음걸이까지 아들이 닮아서 걷는 것을 보면 유전의 힘은 신체를 넘어서 정신과 생활 양상에까지 미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이 선천적인 유전의 힘이든 후천적인 모방의 힘이든 부모의 삶은 자식에게 대부분 물려 진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어찌 하나님이 죄를 삼사 대까지 갚는단 말인가? 이 말은 연좌의 죄를 묻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영향력이 무려 삼사 대까지 미친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죽어 그를 장사 지내고 난 다음 그 땅에 큰 흉년이 들었다. 이삭은 이 흉년을 피하여 블레셋 땅 그랄 지방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이동했다. 아브라함은 흉년이 들자 그 흉년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갔었는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이 명령에는 순종하였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일에는 아브라함처럼 실패하고 말았다.
(창 26: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창 26: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그의 아내 사라를 실망하게 한 바로 사건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애굽에 내려가서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 했다가 애굽왕 바로가 사라를 데려간 적도 있고 그랄에서도 그와 같이 행동했다가 아비멜렉에게 수치를 당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그 지방의 아비멜렉에게 같은 잘못을 한 것이다. 성경 주석은 이문제를 이렇게 적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수치스럽게 생각한 나머지, 이 점에 있어서는 자기의 실패담(失敗談)으로써 이삭에게 경고를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십중팔구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말해 주었지만, 만사가 그렇듯이 이삭도 쓰라린 체험을 통해서 스스로 교훈을 배워야만 했을 것이다. 얼마나 자주 부모의 죄들을 그 자녀들이 답습하는가! 그러나 유전적인 약점들도 결코 자녀들을 그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면제시켜 주지는 않는다(참조 겔 18:20).” (재림교회 성경주석 창26:7절)
이 얼마나 기이한 현상인가? 부모 대의 잘못된 행습(行習)이 자식들에게 대물림 된다. 이 나쁜 저주의 대물림을 누군가는 끊어야 하는데 흔히 이런 실수와 잘못은 삼사 대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가문의 빗나간 행습도 고칠 수 있도록 돕는다. 부모의 잘못을 반복할 게 아니라 간절히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결단함으로 저주의 삼사 대가 천대까지 복이 베풀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 대에서 천대를 내려가며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결단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이것은 운명이다! 유전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지 말게 하시고 결심하고 끊어서 저주가 대물림 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선한 마음과 새 힘 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