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역에서 출생지인 북산면 내평리까지 걷다
나는 1944년 음력 5월 단옷날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 일찍 내평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인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해까지 북산면 사무소 바로 옆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부모님 슬하에서 삼남매가 행복하게 살았다.
지금은 소양강 다목적댐으로 인하여 1973년 내평리는 거의 물에 잠기고 일부만 남았으며 북산면사무소도 오항리로 이전하여 북산면 인구는 1000명 미만으로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2018년 누이동생들의 칠순과 회갑을 맞이하여 6남매가 춘천에 사시는 외숙부를 모시고 승용차편으로 북산면사무소를 거쳐 소양호에 접한 고향땅 내평리를 찾아가니 주민은 10가구에 15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여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걸어서 고향땅을 밟아보고 싶어 2021년 12월 9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벼운 옷차림으로 경춘선 전철을 타고 가 종착역인 춘천역에 내렸다.
초겨울에 접어든 날씨는 기온이 영상으로 바람도 불지 않고 걷기에는 적당한 일기였다.
오늘은 춘천역에서 소양강댐까지 걷기로 마음을 먹고 봉의산을 바라보면서 소양강변을 따라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건설된 역사 깊은 소양1교를 향하여 걸어갔다.
최근에 건설된 소양강 스카이워크에는 코로나19로 인하여 관광객이 몇 명밖에 보이지 않지만 소양강 처녀상과 함께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춘천의 명물이다.
소양1교를 건너가기 전 봉의산 밑에는 소양파출소가 있었는데 6.25전쟁이 나기 전에는 작은 이모부께서 경찰관으로 근무하셨고, 1960대 중반에는 작은 외숙부가 파출소장으로 재직하시면서 여름에 소양강 수영 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활약하신 기억이 난다.
소양2교를 지나서 승용차만 일방통행 할 수 있고 인도가 설치된 폭이 좁은 소양1교를 건너가면서 유유히 흘러가는 소양강물을 내려다보니, 어렸을 때 친구들과 여름철에 미역을 감던 생각이 떠올라 한참동안 서서 동심에 젖어 추억을 더듬었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춘천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6사단이 봉의산 정상에서 소양1교를 넘어 물밀듯이 처 들어오는 북한군을 집중 사격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주고 적의 시내 진입을 지연시킨 사실을 몇 년 전 친구들과 봉의산 정상 전적 비에서 살펴보았다.
소양1교를 다 건너가니 우두동인데 옛날에는 논과 밭이 대부분이고 농가 주택이 띄엄띄엄 있는 한적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강변에 고층 아파트가 빼곡하게 서 있고 도로변에는 상가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충열로를 따라서 소양댐 이정표를 보고 북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소양초등학교를 지나고 맞은편에는 국립 농산물 품질 관리원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니 오른쪽에 충열탑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학창시절에 현충일(6월6일)에 전몰용사들의 참배를 위하여 다녀간 생각이 난다.
우두동을 지나 신북면 천전리(샘밭)로 넘어가는 여우고개가 나타나는데 지하차도가 생겼지만 지상의 도로변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니 길 건너에는 샘밭 장터 체육공원이 보인다.
신샘밭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가니 신북 사거리가 나오고 맞은편에 경찰박물관도 보인다. 2군단 사령부 정문을 지나 천전IC에 이르니 북산면 내평리로 올라가는 배후령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소양교를 건너가면 동면 지내리인데, 솔밭마을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촌언니 아들 재선이가 사는 동네이다. 어렸을 때 여름방학이 되면 외사촌 형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수박, 참외를 따먹고 재미있게 놀던 그리운 시절이 떠올랐다.
소양강댐 바로 아래 천전삼거리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늦은 점심으로 춘천 막국수를 한 그릇 사먹고 오늘은 여기서 발걸음을 멈추고 출생지 내평리로 가는 것은 다음날로 미루고 춘천역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승차하여 귀가하기로 하였다.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 때문에 춘천 친구들도 만나보지 못하고 다음날을 기약하면서 용산행 ITX 청춘열차를 타고 상경하였다. 열차를 타고 귀가하면서 오늘 걸은 거리를 휴대폰에서 살펴보니 20000보 이상 14km를 기분 좋게 걸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감소세로 접어들어 거리두기 통제도 풀리고 날씨도 따뜻해져서 중단하였던 고향땅 걷기를 재개하였다.
2022년 4월 19일 아침 일찍 풍산역에서 경의선 열차를 타고 상봉역으로 가 경춘선 열차로 환승하여 춘천역에 오전 10시쯤 도착하였다.
오늘은 목적지를 북산면 내평리로 정하고 마을버스(북산 1)를 타고 오항리 종점에 도착하니 낮 열두시가 다 되었다. 버스기사가 일러준 대로 내평리 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걸어가니 멀리 소양호가 보인다.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한두 채 보이고 밭에서 경운기로 밭갈이를 하시는 어르신 한 분이 계서서 수고하신다고 인사를 드렸다.
소양호 물이 들어오는 물가로 부지런히 걸어가 배낭을 벗어놓고 깨끗한 소양호 물에 손을 담가 보면서 비록 출생지는 물속에 잠겨있지만 여기는 조금 남아있는 내평리(당골) 땅이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싸가지고 온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맑고 푸른 소양호를 바라보았다. 6.25전쟁이 나던 해 1950년까지 북산면사무소 옆집에 살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가운데 내평초등학교 2학년에 다녔던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진다.
다시 한 번 소양호 물에 손을 담가 얼굴을 적시면서 돌아가신 부모님께 ‘저는 오늘 걸어서 정든 고향 내평리에 왔습니다. 저도 이제 머지않아 부모님 곁으로 가게 될 것이니 그때까지 평안하시길 바랍니다.’하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내평리가 출생지인 인천에 사시는 외사촌 누님께 전화를 걸어 “저는 지금 걸어서 누님과 제가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보낸 내평리 소양호에 와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리니 “어떻게 걸어서 내평리까지 갔느냐?”대답하시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신다.
소양호를 뒤로 하고 오던 길을 걸어가는데 태극기가 펄럭이는 언덕 집 길가에 한 분이 서 계서서 출생지 내평리를 걸어서 다녀가는 길손이라고 인사를 드렸다. 권혁복 씨는 고향을 지키면서 오랫동안 이장을 하였고 장뇌산삼을 재배하고 있는 내평초등학교 후배 되는 분이었다. 집에 들어가 차나 한잔 하고 가라는 호의를 사양하고 오항리 북산면사무소를 향하여 걸어갔다.
오항리 마을버스 종점을 지나 한참 걸어가니 북산면 사무소(행정복지센터)가 나타난다. 면사무소 직원을 만나 출생지 내평리 고향땅을 걷고 오는 길손이라고 말씀드리고 선친께서 북산면사무소에 수년간 근무하셨기 때문에 면장님을 한 번 뵙고 싶다고 청하니, 면장님 방으로 안내를 받아 명함을 드리고 인사를 드렸다.
면장님과 차를 한 잔 나누면서 “저는 8.15광복 전해에 내평리에서 출생하여 6.25전쟁이 나던 전해에 내평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50년까지 내평리에 살았고, 선친께서 북산면사무소에 10여간 근무하시면서 6.25전쟁 때는 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 “제가 쓴 여행기 책 부록에 그 내용이 실려 있으니 한가하실 때에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
금년 1월에 발간한 소양호 수몰지역 이야기 ‘물 안의 기억과 풍경’ 책을 한권 받아가지고 면사무소를 나와 추곡리를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먼 길을 걸어서 그런지 다리에 쥐가 나서 길가에 앉아 한참동안 다리를 주무르니 괜찮아져서 다시 걷기 시작하여 추곡초등학교 앞까지 걸어왔다.
추곡리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여기서 소양강댐까지 걸어가려고 마음을 먹고 숙소를 찾아보았으나 잠잘 곳이 없어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샘밭 장터까지 가서 소양강 댐 근처 모텔에서 묵게 되었다.
모텔 1층에 마침 한식당이 있어 저녁식사와 내일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3층 숙소로 올라가 오늘 모처럼 30000보 이상을 걸으면서 땀을 흘린 몸을 씻고 휴식을 취하였다.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하루 고향산천을 잘 걷고 숙소에 들어와 쉬고 있다고 전하니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고 당부한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공기도 깨끗하고 오늘 날씨도 걷기에 적당한 기온으로 봄기운이 가득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편의점에 들려 점심으로 대용할 김밥을 한 줄 사가지고 배후령 길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배후령 길을 따라 올라가니 오른쪽에 춘천의 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묘원이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길 옆에 아내가 좋아하는 쑥이 많이 보여서 배낭을 벗어놓고 비닐봉지에 뜯어 담아가지고 다시 가파른 고갯길을 걸어올라 갔다.
배후령 길은 차는 드문드문 다니고 오토바이와 자전거 여행자가 더러 눈에 띄었다. 길가에 봄꽃으로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만발하여 봄기운을 마음껏 느끼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드디어 정상에 다다르니 여기가 해발 600m되는 곳으로 춘천시와 화천군 경계가 되는 지점이라는 안내 표지가 보인다.
쉼터에서 잠깐 쉬면서 몇 년 전에 오항리에 사시던 외숙부님을 만나러 차를 운전하여 여러 번 배후령 길을 다닐 때는 멀게 느껴지지를 않았는데, 오늘 걸어서 넘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힘든 고갯길이었다.
배후령 길을 한참 내려가 오음리에 도착하여 점심때가 다 되어 춘천막국수를 한 그릇 사먹을까 하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아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수를 한 병 사가지고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오후 한시가 지나 이제 최종 목적지인 추곡초등학교를 향하여 춘천과 양구를 잇는 춘양로(46번 국도)갓길을 조심하여 걸어갔다. 계속 오르막길을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차량통행이 너무 많았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추곡터널(830m)을 매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좁은 갓길을 주의를 기울여 통과하는데 찻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깜짝깜짝 놀랐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이제부터는 내리막길로 걷기에 아주 수월하였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오니 추곡 낚시터가 보이고 멀리 우측으로 북산면 이정표가 보인다. 우회전하는 북산면으로 들어가기 전 쉼터가 있어서 벤치에 앉아 쉬면서 부산에 사는 큰누이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지금 동생이 6.25전쟁 전해에 출생한 고향땅 내평리를 춘천서부터 걷고 있네.”하고 말하니 “우리 오빠 참 그 연세에 대단하시다.”하면서 감탄을 한다. 아무쪼록 조심해서 잘 다녀가라는 당부를 듣고 추곡초등학교를 향하여 걸어가니 오후 3시가 되었다.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춘천시내로 가는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오후 4시에 있다고 하여 북산면의 유일한 학교로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추곡초등학교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공부하고 있는 어린이가 전교생 8명이라는 소리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선생님도 8분이 계시는데 앞으로 공부할 어린이가 늘어날 희망이 없다고 하며 재학 중인 어린이가 모두 졸업하면 폐교되지 않나 걱정이 된다고 한다.
드디어 출생지 고향땅 걷기를 끝내고 아쉬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마을버스에 승차하여 춘천역으로 가 서울행 열차를 타고 상경하였다.
휴대폰을 살펴보니 어제, 오늘 이틀간 소양강댐에서 내평리까지 고향산천을 걸은 거리가 무려 48km로 강행군을 하였지만 마음은 매우 흐뭇하고 보람을 느꼈다.
첫댓글 어쩜 이렇게 자세히 내가 걷고 있는 느낌 처럼 여행기를 잘 쓰는지 부럽습니다. 현재 님은 글로 나는 사진으로 표현하다 보니 다른 부러움이 생김니다. 사람 마다 취미가 다양하다 보니 보고 듣는 사람들은 즐겁습니다. 우리가 건강 하니깐 이렇게 80세 까지 왔습니다. 우리 열심히 걸으면서 건강하게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