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더운 여름이었어요. 여름인데도 8시밖에 안 됐는데 하늘이 어두컴컴했습니다. 친구와 처음 가는 동네로 놀러갔던거여서 얼른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러 갔습니다. 그 친구는 최근에 이사를 가서 저와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친구와 인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지하철이 떠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신나게 놀고 집에 가는 길이어서 뛸 여력이 없었고 그렇게 지하철을 보냈습니다. 계단 뒤에는 저 말고 한 커플도 있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승강장에 도착했습니다.
방금 지하철이 떠났으니 오래 걸리겠다 싶어서 도착하자마자 의자에 앉았는데 열차가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 당황했어요. 지하철은 보통 8~10분 정도 텀을 두고 운행하는데 제가 도착한 건 떠나고 2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냥 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이상했습니다. 보통 스크린 도어 너머로 지하철 안에 사람이 보여야 하는데 사람은 커녕 좌석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눈이 좋지 않았던 저지만 그렇게 안 보일 수가 없는데 싶었고.. 건너편 친구도 스크린 도어 너머로 보였는데 내부가 안 보일 수 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피곤함이 더 컸기에 일단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아무리 밤이어도 사람이 이렇게 없을리가 없는데 객실은 텅텅 비어있었고 같이 올랐던 커플도 이상한 듯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초행길이라 혹시나 내릴 역을 지나칠까 핸드폰으로 계속 얼마나 남았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꾸벅 꾸벅 졸았고 잠결에 소리만 들리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이 역에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겁니다. 이번 역은 ㅇㅇ역입니다 하는 안내 음성도 없이, 목적지 없이 계속해서 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떴을 때는 내릴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기 직전이었고 저는 놀라서 후다닥 내렸습니다. 커플도 그 역에서 내리길래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었나보다 싶었고 계단을 오르기 전에 엄마와 간단히 통화한 후 계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계단에 오르자마자 지하철이 떠난지 3분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바로 지하철이 들어오는겁니다. 진짜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저는 그제야 지하철 어플로 확인해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탄 지하철은 노선도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은 운행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운행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게 원칙인데.. 제가 탄 지하철은 아예 운행 시간표에 있지도 않더군요. 그리고 저랑 같이 내렸던 커플은 사라져있었습니다. 계단 앞에서 내려서 그 앞에서 통화를 했기에 볼 수 있었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역에는 나가는 계단이 하나밖에 없었는데도요.
그리고 분명 아무도 없었던 지하철 역이었는데 그 지하철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들어오고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멍한 기분으로 집까지 왔고 친구와 통화하면서 제가 겪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근데 그 친구가 자기는 제 쪽으로 오는 지하철은 보지 못했다고.. 저와 친구가 탄 역은 마주보고 있어서 들어오는 지하철을 반대편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런데 친구는 제가 타야 하는 지하철이 다섯 정거장을 가서야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럼 제가 탄 지하철은 뭐였을까요... 아무도 없는 지하철을 탄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라... 또 그 큰 지하철역에 혼자 있는 경험은 정말 무섭고 두려웠기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