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조명
화답和答
표순복
우리 엄니 자그마한 쟈크백에 빨간 고추 한 봉지 담아 오시더니
야야, 정호어매가 이 고추를 주더라 텔레비에서 보고 올해는 고추밭에 가서 노래도 불러주고 칭찬도 막 했더니 작년보다 배를 더 땄단다 그렇게 많이 따긴 생전 첨 일이란다 <뭐라고 칭찬했는데?> 아고 참 이쁘다 잘 크거라 잉! 이렇게 질고 참말로 튼실허고 잘 생겼네 느그들이 최고다 했더니 병 하나도 안 걸렸다 허더랑게 <참말로 요상시런 일이구만 > 꼭 그짓말 같은데 진짠 갑더라 저그 성희 어매도 수박밭에 가서 노래를 불러줬더니 넝쿨이 덩실덩실 춤추며 뻗고 수박도 달덩이처럼 크더란다 <설마 진짜?> 그렇다니께 나도 내년부텀 작물마다 그렇게 한번 해 볼란다. <그러시오 엄니!>
말 없는 식물도 주인의 관심에 화답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
모녀의 대화 속에 질퍽대는 빨간 고추의 사연
상기되어 더욱 붉다
눈벌雪田을 걷다
내 안에 쌓인 쓰레기를 태우기 위해
집 앞 공원길을 걷는다
혹한의 눈길이어서 좋다
영하 십 도의 눈벌은 고체 덩어리가 되었다
움츠릴수록 단단히 뭉치는 나의 체지방처럼
눈벌은 응어리진 덩어리로 널브러져 있다
눈 위를 걸으며 두 발에 힘을 준다
발화점에 이르면 삶의 찌꺼기를 사를 수 있겠지
공원을 덮은 눈
마치 바닷가의 개펄처럼
심란하고 어지러운 눈 벌
하얀 도화지 위에 마구 써놓은 낙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큰 도장 작은 도장 무수히 찍어 놓았다
함부로 그린 그림 하루빨리 지우고 싶다
두 발의 힘으로 육체의 지방을 태워 가듯
고무래로 저 눈 벌 긁을 수 없을까
타는 불이 내 안의 쓰레기를 소진하듯
눈벌을 걸으며 나를 지워간다
새봄 다시 돋아나는 새살을 기다리며
겨울 공원길을 걷는다
4시 반
오십 대 중반을 넘어선 한 사람
자신의 시계를 곧잘 들여다본다
4시 반쯤 되었다며 하루에도 여러 번
시간을 잰다
창문 옆 시계추 4시 반을 가리키면
더욱 안절부절이다
아직 4시가 못 되었다 위로받고 싶은지
굳이 반 시간은 더 지났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을 확인한다
은행잎 지는 오후 4시 반, 거리를 나선다
그의 시간을 확인해 주듯
가로수 잎들 평온히 져 내린다
지독한 계절병 말아 쥐는 소리가 노랗다
덩달아 내 시간도 부산해지고
모든 잎 떨구고 나목으로 서면
그의 시계추는 차라리 안정일까
안간힘 쓰며 발부리를 쳐드는 바람에
그의 뒤꿈치는 벌게져 있다
자꾸 낮아지는 하루해 시간을 앞당긴다
나는 지금 몇 시인가?
푸조나무 곁으로 가려고
담양관방제림
이름도 낯선 백여 그루 푸조나무가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팔 벌리고 서 있다.
코로나 난리에도 세상의 봄은 오고
제방 아래 물은 변함없이 흐르건만
신록 무성한 오월
내 몸은 왜 피가 돌지 않는 걸까
47번 느티나무 우람하게 멀쩡하고
짝없는 70번 은단풍 홀로 제 몫 다하는데
이백 년 토막 난 벚나무도 잎을 피웠는데
팽나무 잎처럼 반질거리던 나는 없고
몇 잎 바람에 달고 흔들리며
나는 서 있다
담양관방제림에서
두 아름이 넘는 노 거목의 껍질을 어루만지며
나는 땅속에서 끌어올린 수액을 받고 있다
여기저기 주사기를 꽂고
하늘로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오월의 푸름이 성근
이름이 낯설어 가까워지고 싶은
푸조나무 곁으로 가려고
장수풍뎅이의 뒤집기 놀이
풀벌레의 목청 들끓어 푸른 들판 색을 바꾼
햇살의 기가 꺾이는 절기
숲 가까운 방 한 칸 집 앞마당에
덩치 큰 풍뎅이 하나
저 혼자 뒤집어져 난리법석이다
여섯 개의 다리 꺾어 분주한 걸음걸이
지켜보다 지쳐 돌아서는데
어느새 몸 바로 작은 비행을 한다
안도의 발길로 뒤돌아 다시 보니 또 그 자리
뒤집어져 걸음걸음 반경을 넓힌다.
깊은 속내 몰라 반듯하게 돌리려다
작은 곤충 옆에 놓자 금세 바르게 뒤집는다
땅 보고 걷던 길 뒤집어 하늘 넓은 줄 알아
가끔 세상을 달리 보는 저 안목
그래 나도 거꾸로 보자, 다른 세상을 보자
암컷 장수풍뎅이가 이 저녁에 시를 쓰고 있다.
관심 갖기
내가 사는 곳 주차장에는
눈雪의 색으로 태어나 눈眼만 까만
아기 고양이가 산다
어린 닭 먹이 삼아 목숨 이어가던
섬뜩한 고양이 그토록 싫은 놈
문밖 쌍나팔로 쏟아내는
고양이 두 마리의 울분이 서러워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는
캣 맘 먹이를 놓아
길고양이 생명을 연장시킨다
딸아이는 물을 챙겨주고 살피지만
나는 감정 없이 흘려보낸 눈 오는 계절
아기 고양이 내 차 아래 몸을 누이고
매일 길 나서며 녀석과 눈빛 더한 어느 날
아기 고양이의 흰빛에 홀려
찬 가슴에 온기가 내려 관심 갖기 시작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 이유, 시 쓰기 작업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예술 장르를 사랑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 이유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중 으뜸이 문학이요, 문학 중에서 시가 으뜸이라 생각하고 시를 만나게 된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지금껏 시와 함께하고 있다. 시는 주변만을 맴돌며 와락 안기지 않는 모습으로 때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시를 쓰는 일은 가치 있고 고귀한 작업이라 믿기에 평생을 함께하고자 한다.
누구나 일상과 문학을 병행하며 창작활동을 하므로 맘껏 시만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능을 타고난 문인은 바쁠 때 더 많은 영감을 얻어 더 좋은 글, 더 많은 글을 창작해 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쁜 직장생활과 그 외의 일상들이 시에 전념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한다는 핑계를 늘 대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핑계도 떠날 구실을 찾았고, 긴 시간 붙들고 있던 시 창작에 전념할 시간이 주어졌다고나 할까. 40여 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지난 6월 말 마치고 숲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푸른 벼들이 어느덧 노랑 물결을 이루는 들녘을 바라보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밤이면 목청껏 노래하는 풀벌레 소리를 듣고 정겹고 한적한 곳에서 조금씩 시의 씨앗을 줍고 있다.
그동안 시를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채찍과 격려를 해 주셨던 이충이 선생님은 “시를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라고 늘 강조해 오셨다. 그렇다. 우리가 쓰는 글이 시와 소설처럼 문학적 허구가 담긴 글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글을 쓴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글보다는 삶이 더 중요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는 53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2만 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의 소품문 「이목구심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머리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애써 꾸미려고 할 것이다. 심장으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제 뜻과 기운을 어떻게든 새기려고 힘쓸 것이다. 그러나 온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몸 구석구석 가득한 말과 글을 토하고 뱉어낸다. 이것이 자연이고 천연이다. 글을 머리와 가슴으로만 쓴다고 할 수 있겠는가? 글이란 마땅히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위의 글에 비추어보면 작가가 온몸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 삶 자체가 건강하고 바른 삶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윗글을 통하여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며,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쓰리라는 생각을 깨닫게 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요즘 우리는 기후 변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산업화 이후 과도한 자본주의를 지향해 오며 경제는 급성장하였지만, 과다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영향으로 지구는 점점 뜨거워져 가열되고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올해 8월 중부지방의 집중 폭우와 남부지방의 폭염을 우리는 같은 날짜에 보았다. 기후 변화는 이렇게 기후 위기를 일으키고 기후이탈이 세계 곳곳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자연을 파괴하고 북극 빙하를 녹인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도 기후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 문인들에게도 단순한 서정을 넘어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생태문학, 생태시에 대한 관심이 요구되며 문학을 통해 전 지구적 생명 위기를 생각하며 인간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진지한 활동이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 문학은 글을 쓰는 주체가 자신에 대해 쓰면서 스스로를 구제함과 동시에 자신이 사는 시대가 처한 상황을 드러내는 문학적 작업이다. 그러므로 생태문학에 대한 관심과 노력으로 기후 위기의 시간을 연장하는데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구상의 생명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류와 뭇 생명이 건강하고 무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자연에 귀 기울이고 자연과 인간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생태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요즘 나는 기후 위기에 걱정 반 관심 반으로 작은 것부터 에너지 절약 등 자원을 아끼는 일상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오늘날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널리 알 수 있도록 생태시 창작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 시들은 최근 쓴 생태시 2편이다.
위기
지난해 겨울
오지 않는 눈을 기다렸다
눈이 없어 겨울 살기 좋다고
사람들은 위로하듯 쉽게 말을 하였다
서설이 내려야 할 설날 아침에도
봄비인 양 겨울비가 아무렇지 않게 내렸다
저 비가 정말 겨울에 내릴 비인가
불경스럽게 내리고 또 내린다
이미 봄에 이른 듯
겨울은 흰빛 없이 녹아내리고
오래전부터 우리의 별은 미열 상태다
점점 붉어지는 불덩이 견딜 수 없어
지구는 살려달라고
오래전 구조의 신호를 보냈지만
욕심에 눈이 어두워 불통인 사람들
지구는 제 몸 녹여 빗물을 만든다
용광로에서 녹아 겨울비로 내린다
깨벌레*가 되자
어린 시절 겨울은 왜 그렇게 추었던지
내복 껴입고 목도리로 얼굴 감싸고
우리는 깨벌레가 되었다
세수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얼어붙었다
깨벌레가 되어야 학교에도 갈 수 있었다
어른들은 깨버럭지 같다고 놀려댔다
두루뭉술 통통한 깨버럭지
요즘 젊은이들은 내복을 입지 않아
날씬한 자벌레*가 되었다
편리함이 낳은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로 변화무쌍한 계절을 보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사회를 해체하고
롤러코스터 위로 우리를 몰고 있다
어린 날처럼 깨벌레가 되자
내복 입고 다숩게 옷 껴입고 목도리 두르고
밥도 제때 먹으면 겉과 안이 든든해진다
자벌레가 되지 말자
가끔 히터를 꺼도 좋고
보일러 가동시간을 줄여도 산다
너도나도 깨벌레 되어 탄소를 줄이면
지구는 편한 숨을 몰아쉬겠지
*
깨벌레 : 박각시나방 유충으로 어른 손가락보다 굵고 몸집이 커서 둔한 모습이다
* 자벌레 : 가늘고 길쭉한 녹색 벌레
시인 문정희는 고시 공부하듯 문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어느 특강에서 말했다. 나는 고시 공부는 아니더라도 직장에서 긴 시간 업무를 차질 없이 해 왔듯, 매주 한 편의 시를 쓰고 생태시 창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꽤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와 시너지를 갖듯 한 편의 좋은 시도 지역의 정서를 바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큰 힘을 가졌다는 문학의 진정성을 믿으며 시업을 계속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