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동아시아에서 근대와 기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근대는 기독교의 모습을 하고 전파되었으며, 기독교 역시 근대의 종교로서 전파되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때로는 민중과 밀착한 종교의 모습으로 등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쨌건 기독교는 동아시아 전통과의 대척점에서 서구 문명의 대표로 자리하였고, 격동의 근대화를 겪으며 동아시아 각국에서 다른 모습으로 토착화했다. 한국 기독교, 중국 기독교, 일본 기독교가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간 것이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자유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공산주의의 대척점이자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축으로 자리하는 한편, 중국에서는 비기독교 운동을 거쳐 삼자교회로 대표되는 애국적 기독교로 자리하였고, 일본에서는 제국주의적 모습을 띠는가 하면 그 대척점으로의 모습도 가졌다. 이처럼 각국이 기독교를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시 각국을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이 책은 이처럼 동아시아의 근대와 기독교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근대로서의 기독교’와 ‘기독교적 근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저자 :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 지역인문학센터
엮은이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 지역인문학센터
근대한국학연구소는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특성화 계획에 따라 설립한 인문· 사회 분야의 학제 간 연구소입니다. 본 연구소에서는 한국사회와 학문 분야 전반에 걸친 근대성을 탐구하고, 근대성이 드러나는 특정한 시기들에 대한 집중 연구를 수행합니다.
옥성득
UCLA 아시아학과 임동순 임미자 한국기독교 석좌부 교수.
서울대, 장신대, 프린스턴신학교, 보스턴대학교를 졸업했다. 「한국기독교 형성사」 외 여러 저서와 「언더우드 자료집」 외 여러 자료집이 있다. 한국 기독교의 초기 성장, 의료, 교육, 문서 번역, 개신교와 타 종교 문제를 연구해 왔다.
김건우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사상계와 1950년대 문학」, 「혁명과 웃음」(공저) 등이 있다.
오동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양학 조교수.
중국 칭화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총신대학교 신학 석사, 박사, 연세대학교 기독교 윤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중국 칭화대학교 철학과 연구원을 역임했다.
홍이표
연세대 학부에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신학 박사학위(교회사 전공)를, 교토대학[京都大?]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문학 박사학위(사상문화학 전공)를 취득했다.
현재 일본 야마나시에이와대학[山梨英和大?] 인간문화학부 준교수 겸 종교주임으로 일하고 있다
📜 목차
발간사
근대성과 한국 개신교 _ 옥성득
기독교(들)과 한국 근대의 구상 _ 김건우
중국의 근대화와 기독교 _ 오동일
일본 근대 사회의 형성과 기독교 _ 홍이표
📖 책 속으로
식민성은 제국과 식민지 양자에게 영향을 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근대 종교는 식민지 근대성을 공유했다. 한국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서 한국 개신교는 친일 식민성과 항일 반식민성을 동시에 지니는 양면성을 가졌다. 근대성과 한국 개신교
한국에서 기독교와의 접촉면, 곧 근대와의 접촉면은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을 통해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좌익이 대한민국 건설에서 배제되었음을 전제한다면, 기독교는 전후 한국 사회를 디자인한 이념의 ‘거의 모든’ 기반이었다. 기독교(들)와 한국 근대의 구상
청일 갑오 전쟁에 패배한 후, 중국에서는 내우외환이 더해지면서 변법과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요청이 더해졌다. 그러나 서양 언어와 서양 경험이 없었던 그들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을 서양 선교사들의 번역과 신문에 의존할 밖에 없었다. 『만국공보』는 다시 한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중국의 근대화와 기독교
근대 일본 종교 사상사의 연원을 추적해 가다 보면, 의외로 무력(조총)의 확보라는 ‘물적(부국강병) 토대’와 일신교적 완성으로서의 근대 천황제를 탄생시킨 ‘정신적(종교 사상) 토대’라는 두 측면 모두에서 기독교가 중요한 자극제, 촉매제 역할을 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일본 근대 사회의 형성과 기독교
🖋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 말
근대와의 만남, 그리고 기독교와의 만남
서양에서 근대는 기독교와의 작별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니, 명확히 말하자면, 기독교가 지배하던 세계관과의 작별을 통해 이루어졌다. 기독교는 서구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직도 그 영향은 남아 있지만, 근대라는 물결 속에서 기독교는 부정되어야 했다.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시대’, 근대 속에서 인간들은 수많은 것을 이룩해 왔다. 물론 수많은 그늘 역시도 그 아래에서 탄생했음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의 근대는 이러한 서구의 양상과는 달랐다. 주로 선교사를 통해서 근대의 문물을 접한 동아시아에서 근대와의 만남이란 곧 기독교와의 만남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동아시아인들에게 기독교는 곧 근대라는 이름을 한 종교였다. 그리고, 근대를 마주한 삼국이 서로 달랐고 근대가 만든 삼국의 역사가 서로 달랐듯이, 기독교를 마주한 삼국과 기독교가 만든 삼국의 역사 역시 서로 달랐다.
제국과 식민지, 그리고 반식민지의 길을 걷다
사실, 근대를 마주한 삼국의 구호는 언뜻 유사한 점이 있었다. 조선은 ‘동도서기’를 내세웠고, 중국은 ‘중체서용’을 내세웠으며, 일본은 ‘화혼양재’를 내세웠다. 모두 뿌리는 전통에 두고 외피만을 갈아입으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는 제국이 되었고, 어느 나라는 식민지가 되었으며, 어느 나라는 이도 저도 아닌 반식민지 상태가 되었다. ‘도’와 ‘체’와 ‘혼’의 차이였을까?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근대가 가장 잘 자리 잡아 제국의 반열에 오른 일본에서 기독교는 그만큼 잘 자리 잡지 못했고, 근대를 가장 처참하게 맞이하여 식민지가 된 한국에서 기독교는 삼국 어느 나라보다도 잘 자리 잡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두 나라와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왜 ‘근대로서의 기독교’와 ‘기독교적 근대’는 분리 불가능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까? 또 얼핏 유사한 구호를 내세운 삼국은 왜 근대와 기독교를 서로 다르게 맞이했을까? 그리고 삼국은 왜 근대와 기독교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켰고, 근대와 기독교는 삼국을 다른 모습으로 바꿔놨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 책,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를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