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69]무명의 시인이 부르는 ‘의견비’ 노래
다시 ‘의견비’라 불리는 ‘오수의 개비석’ 이야기이다. 이 개비석이 어느 때 세워졌는지 규명하는 게 가장 큰 숙제이자, 어쩌면 마지막 남은 역사의 수수께끼일진대,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것을 어이 할거나. 어이 할거나? ‘전라도 안찰사’를 역임한 최자(1188-1260)가 1254년 <보한집>에 땅이름의 유래와 개무덤, 견분곡 이야기까지 썼건만, 의견 실화가 있은 직후나 조금 세월이 흘러 세워졌을 게 틀림없는 '개비'의 이야기는 어째서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개비는 13세기 이후에 세워졌을거나? 또한 그렇더래도 고려말이나 조선 500년 동안 오수역참과 관련한 한시(漢詩)에조차 개나무와 개무덤 이야기는 있건만, 이 비에 대해선 어이하여 한 줄도 없는 것일까?
전면은 글자 한 자 없이 죽은 개가 발자국을 남기고 거꾸로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새기고(개의 모습을 뒤집어보니,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한 일이 생물학적으로 복원한 오수개와 머리부분 등이 어찌 그리 닮았을꼬? 필연일까?), 뒷면에 시주자 6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단월(檀越) 형태로 넉 자의 이름이 드문드문 새겨져 있는 것을 미뤄 보면, 10세기 말이나 11세기 초인 고려초 건립으로 추정해도 무방할 터이나, 명백한 증거가 없는 이상 금석문 학자와 오수개에 ‘미친’ 사람들의 머리만 지끈거리게 하는구나. 오호 통재(嗚呼 痛哉). 현대의 문인들조차 이 개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숱한 문사들이 왜 이 개비의 ‘소리없는 함성’ '천년의 침묵'을 듣지 못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헌상으로는 1923년 <임실군지> 1권 ‘고적’에 <충구비가 지금의 오수에 있다>(忠狗碑在今獒樹里)는 기록이 처음 보이는데, 그전에는 왜 어느 문헌에도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높이가 218cm이나 되는 제법 거대한 화강암 비가 1천년 전부터 있었다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어디에든 언급안할 수는 없었을 터인데. 아지 모게라. 그 기록이 있은 직후 1925년 을축대홍수때 개비가 유실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같다. 그러니 유지들이 현상금 20원(당시 쌀 3가마 값)을 걸고 개비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리라. 그러던 중 전라선 철도 개설공사를 하던 1928년경 상리 근처에서 발견돼 주민들이 그 자리에 세워놓았다는 것이다(구술자료). 동아일보 1938년 2월 16일자에 충견비 사진과 함께 실린 <風磨雨洗畿千年 新粧할 忠犬碑 獒樹有志의 發起로>라는 제목의 기사에 의하면 ‘오비’(獒碑)가 곧 옮겨질 것이라고 했는데, 정작 이전은 1940년 5월 14일에 이뤄진 듯하다. 당시 동아일보의 <獒樹義犬碑 公園으로 移轉> 기사에 따르면, 충구비가 의견비라는 이름으로 처음 바뀌었으며, <오수와 길이길이 빛날 ‘개비’를 보존케 되리라>고 쓰여 있다. 이후 이 의견비는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 민속자료 1호로 지정되었다.
아무튼, 1천년 동안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한 이 ‘돌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한 무명의 시인이, 최근 돌비석이 세워진지 1천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이 ‘돌비’가 되어(의인화) 노래를 불렀다는데, 그 운문(韻文)을 의미있게 감상해 보자. 역사적인 일이다. 제목 <비석의 노래(義犬碑歌)> 지은이 오동영. 자신의 몸에 <구름을 타고 수미산에 오르는 당신(의견) 모습을 그리움으로 그려 넣었다>고 자신이 가진 '유일한 언어인 침묵'으로 수줍게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자갈자갈> <끄덕끄덕> <터벅터벅> 정겨운 의성-의태어와 함께 걷고 걸어서 <서녘에 이르면 좋겠다>는 비원(悲願)을 담고 있지 않은가. 시인은 참으로 고귀한 존재인 것을. 훌륭하다. 고맙고 갸륵한 일인진저.
나 여기 우두커니 서서
강의 저 편 빈 하늘 끝으로 불어가는
바람의 등을 바라보네
내 가진 유일한 언어는 침묵
그 침묵의 힘을 다하여 그대를 부르며 섰네
사람들이 나를 세우고 내 몸 가득
찬양의 글자를 새겼을 것이나
그 글자들 하나도
그대에 닿을 것 없을 듯하여
천 년 풍우로 쓸어
한 글자 한 글자
가을 잎처럼 떨구어 내었네
그렇게 비운 나의 몸에
구름을 타고 수미산에 오르는 당신 모습을
그리움으로 그려 넣었네
수줍어 희미하게 새겨 넣었네
내 발치 적시는 오수천 냇물
자갈자갈
자갈을 굴리며 흘러 섬진에 이르듯
끄덕끄덕 걸어가는
저 달을 따라
그리는 내 마음도
터벅터벅 서녘에 이르면 좋겠네
그대 한 마리 짐승
나 비록 한 덩이 돌
그러나 우리 한때 간절한 마음 지녔었네
무의미한 시간을 끝도 없이 늘려놓은 것이 아니라
칼끝 같은 간절함의 그 찰라가 영원일지니
영원한 그대여
내가 품은 영원이여
내 속에서
쉬지 않고 나의 나태(懶怠)를 베는
살아있는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