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토요일 강론>(2024. 9. 28. 토)(루카 9,43ㄴ-45)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파스카의 신비』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루카 9,43ㄴ-45).”
1) 이 이야기는 ‘현장 기록’이 아니라, 사도들의 ‘회상’입니다.
“우리는 그때 그랬었지.” 라는 회상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서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복음서 저자들은 복음서를
기록할 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다.’ 라는 부활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기록했습니다.
복음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부활 신앙’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수난 예고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고,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는 것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 부활의
‘놀라움’과 ‘위대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인류 전체를 비추는 ‘영광의 빛’이라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무지의 그림자’입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에,
제자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후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을 하나로 묶어서
‘파스카의 신비’ 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살아 계시는 분으로
오셨기 때문에 ‘파스카’이고,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에 ‘신비’입니다.>
2)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수난 예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마태 17,23; 마르 9,31).
그런데 지금 루카복음에는 부활 예고 말씀이 없습니다.
복음서 저자가 생략한 것인지, 필사 과정에서
누락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을 세 번 하셨는데, 세 번 다 수난과
죽음만 예고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도 예고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라는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 때문에 놀라겠지만
믿음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말씀이고,
“사람들이 나를 죽일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넘겨지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계획에 의한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라는 말은, “그 일은
하느님의 신비에 속한 일이어서”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알아듣지 못하였다.” 라는 말과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라는 말은, 제자들의 머리가 나빴음을(지능이
부족했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아직 부족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또 하느님의 신비에 속한 일을
알아듣고 이해하려면, 우선 먼저 믿음부터 가져야 합니다.
먼저 믿으면, 언젠가는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라는
말은, 제자들이 수난 예고 말씀을 무서워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말씀을 듣는 것을 싫어했다는 뜻입니다.
<생각하기도 싫고, 듣기도 싫으니까,
묻는 것도 싫었던 것입니다.>
3) 우리 인생도 ‘파스카의 신비’의 연속입니다.
살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이 계속 찾아옵니다.
죄를 지어서, 그 죄 때문에 겪는 고난이라면,
그것을 보속으로 알고 견디면 됩니다.
그러나 죄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래서 보속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고난들이 많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1베드 1,6ㄴ-7).”
<이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우리가 살면서 겪는 고난과
시련은 하느님 나라에 잘 들어가기 위한
‘단련’과 ‘정화’ 라는 것입니다.>
또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에 관하여 들었고,
주님께서 마련하신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은
동정심이 크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야고 5,10-11).”
‘파스카의 신비’는 고난과 죽음 너머에 부활과 생명과
참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에 관한 신비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고난과 죽음을 정면 돌파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신앙인들이 고난과
죽음을 향해서 나아간다고만 생각하겠지만, 믿는 우리는
부활과 생명과 참 행복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출처]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