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천주욱이가 쓴글인데 혼자보기 아까워 훔쳐왔으니 양해하시구
열심이 읽어보시구료! 또 오랫만에 옛스승의 발자취도 더듬을겸해서..
▶ 나의 고등학교 은사 송성문 선생님 2003-03-08 천주욱 씀
어제는 도하 각 일간지에 혜전(惠田) 송성문선생님
(72세)께서 30여년간 수집하여 소장하고 계시던
고문서 컬렉션(국보 4점, 보물 22점) 및 운보의 그림
등 27점, 총 5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는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와 보물이
총 146점 정도인데 이번에 혜전께서 국가지정문화재
26점을 기증한 것은 17%에 해당되며 중앙박물관 사상
최대 규모이자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기증을 장남을 통해서 하시고 당신께서는
할 일을 하셨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미국에 있는 차남
을 보러 떠나셨다는 것이다.
각 신문 어디에도 송성문 선생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기사는 한 줄도 없었다. 그저 훌륭한 일을 하셨
다는 언급 정도였다.
1. 천애의 남쪽 고아 송성문 선생님
나는 마산고등학교를 다녔는데 2학년 1학기까지 송성문
선생님한테서 영어를 배웠다. 그 때 간간이 들은 선생
님에 관한 기억을 정리하면 이렇다.
선생님께서는 평북 정주 출신으로서 이북에서 최고 명문
이었던 오산고등학교를 다니셨는데 19세가 되던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공산당과 소련군의 압정에 시달린 선성님께서는 6.25 중
혼자서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선생님
께서는 남쪽에 부모님과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친인척
한 사람 없다고 하셨다.
2. 20세 때부터 영어를 배워 영어교사가 되다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이북에서 러시아어를
배웠는데 어학에는 남 다른 재능이 있었는지 남쪽
으로 내려와서는 바로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로 들어
가 미군으로부터 몸으로 영어를 배우셨다고 한다.
문법이고 뭐고 없이 영어책을 그대로 달달 외우셨다
는 것이다.
심지어 등화관제가 되어 막사 안에 불을 켤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선생님께서는 모포를 둘러 쓰고 그 안
에서 후랫쉬 불빛으로 문장을 외우셨다는 것이다.
외울 것이 없을 때는 영어 성경책도 암기하셨다는
것을 들은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20세 때부터 영어를 배우셨다
는 것이다.
마산 근처의 미군부대에 있을 때 전쟁이 끝났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중등학교 영어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우리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것이었다.
3. 문법에 나는 관심 없다, 영어는 외우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이북 특유의 엑센트를 갖고 계셨지만,
영어 발음은 정말 좋았다.
우리는 당시 유니온이라는 영어 책을 사용하고 있었
는데 선생님의 수업방식은 참 독특해서 새로운 과에
들어가면 먼저 선생님께서 한 번 읽어주시고, 다음
에는 한 문장씩을 큰 소리로 따라 읽도록 하셨다.
그리고는 선생님께서 지명을 하면 일어서서 그만!
할 때까지 영어책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은 한 사람씩 지명해서는 한 과를 몽땅 외워
보라는 것이었다. 큰 소리로 외우지 않거나, 외우지
못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지금도 가끔 그 불호령이 생각나기도 하며, 그 때
외운 영어 문장 몇 줄은 지금도 생생하게 외울 수
있을 정도다.
당시 “영어 3위 일체”라는 문법 위주의 참고서가
대유행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절대로 문법을
가르쳐주시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문법이라도 물어 보는 학생이 있
으면 선생님께서는 대단히 화를 내시면서 “문법은
필요 없어!” 하시면서 질문한 학생을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그 때부터 수업을 하시다 말고는
바로 나가시는 경우도 있었다.
뜻을 알면 됐지 문법은 왜 필요 하냐, 우리 나라
말을 문법을 알아야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선생님의
지론이셨다.
선생님께서는 시험문제를 내도 꼭 독해력 위주의 문제
만 내셨는데, 가끔은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Gissing(George
Robert Gissing)의 책에서 가져온 문장을
시험에 내기도 하셨다.
4. 성문종합영어가 나오기까지
2학년 2학기 때 선생님께서는 국비유학시험에 합격
하여 1년간 뉴질랜드로 영어공부를 하러 떠나셨다.
그런데 이 때 선생님께서는 벌써 영어 참고서를 하나
구상 하시고 계셨는지 수업 중에 좋은 문장이 있으면
별도로 적어 놓으셨다.
아마도 6.25 중 모포를 둘러쓰고 영어를 배우던 그
악으로 이런 준비를 하셨던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오시자 선생님께서는 부산고등학교
영어선생님으로 가셔서 2-3년 계시는 동안에 뉴질랜드
에서 적어놓았던 문장과 가져온 책을 참고 삼아 성문
종합영어를 발간하신 것이다.
이 영어 참고서에는 문법은 거의 없고 독해력 위주로만
꾸며져 있었다. 문법이 없는 이 책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어 참고서였다.
성문종합영어가 나온 바로 그 해에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일류대학의 영어시험이 독해력 위주로 바뀌자 이 책은
공전의 대히트를 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성문종합영어는
우리 나라역사 상 영어 참고서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이 이후 선생님께서는 이 책을 해설하는 책도 내시고,
또 다른 몇 권의 영어 참고서도 발간했는데 모두가 대
히트였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성문영어 시리즈로 몇 백억원 이상은
버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돈으로 그 동안 문화재를 모와 이번에 국립
중앙박물관에 기증하신 것이다.
5. 선생님의 자식교육 에피소드
선생님께서는 혼자서 남한에 적응하시며 사셔서 그런지,
이북 사람이라서 그런지, 원래 성격이 불 같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식교육에 무척 엄하셨다.
어느 해 겨울, 국민학교 다니는 선생님의 아들이 밖에 나가
놀다 동네꼬마와 싸우다 맞고 울면서 집으로 온 일이 있었다.
보통이면 부모들이 우는 아이를 앞 세우고 나가서 때린 아이
집에 찾아가 시비를 하면서 우리 아이 기를 살려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놀라게 하셨다.
즉, 사내가 밖에 나가서 남에게 맞았다, 그리고 또 울고
들어왔다는 것, 두 가지 이유로 선생님께서는 아이 멱살을
잡고는 밖으로 나가 대문 앞에 있는 방화수(防火水) 드럼통
물에 아이를 넣어버리는 것이었다는 것이었다.
“잘 못 했습니다. 다시는 맞고 울고 오지 않겠습니다” 하고
싹싹 빌 때까지 그 아이를 물에서 끄집어 내주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언제 선생님께서 미국에서 돌아오시면 한 번 찾아 뵈어야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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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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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은사 송성문 선생님 (퍼옴)
한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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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1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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