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미안하고 고맙다
정 금 자
아침이면 어김없이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에서, 온 들판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한송이 꽃에서, 하루를 보낸 후 잠자리에 누워서,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숨어 있음을 느낀다.
어느 날 갑자기 대학을 졸업한 딸이 서울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 학원을 알아보려나 생각했다. 며칠 후 장문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사시 공부가 하고 싶어 등록했다며 부모님께 미리 말씀도 드리지 않고 일을 저질러 죄송하고 경제적 부담도 될 것 같아 많이 망설였단다. 남편은 펄쩍 뛰면서 당장 내려오라 불호령이다. 나는 마음이 불안해서 고시원을 찾아갔다. 공부는 독서실에서 하고 잠만 잔다고 하지만 창문도 없는 방에, 누워 잠만 잘 수 있는 침대 하나 달랑 놓여 있었다. 숨도 크게 쉴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왔다.
그러던 중에 내게 대상포진이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와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지셨는데, 당뇨까지 있어 많이 힘드시겠어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걱정하셨다.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딸은 나를 부등켜 앉고 말없이 울기만 했다.“엄마가 자주 아파서 미안해.”“엄마 아프지 마세요”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 아프셔도 우리 곁에 있어만 주세요”딸이 손발을 수시로 닦아주며 간호하는 성숙한 모습이 감격스러웠다.‘딸아, 너희가 아니고 내가 아픈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나는 엄마니까 참을 수 있거든, 내가 빨리 일어나 꿈을 응원 할 테니. 너는 꿈을 펼쳐라’딸이 간호하는 동안 남편은 몸도 약한 딸아이가 너무 힘들게 공부하는게 싫다며 간곡하게 설득을 했다. 딸은 눈물을 흘리면서 청주로 내려왔다. 딸아, 너의 꿈을 지원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딸은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나서 사범대학에 편입학 시험을 치르고 3학년으로 입학을 했다. 꿈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몸부림 같아 너무미안했다. 편입해서 사범대학 공부를 하는 중 둘째 아이까지 생겨 무거운 몸으로 가사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둘째 아이을 낳고는 본격적으로 임용고시 준비를 했다. 온전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 도서관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큰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작은아이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치매 시어머님을 모시고 있어 손자를 돌볼 수 없는 형편이라 마음이 편치않았다. 딸의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남편과 상의 끝에 딸의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작은 아이를 일반가정집에 맡기도록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사위가 직장에서 퇴근하면 아이 둘을 돌보고 딸은 독서실로 향한다. 새벽까지 공부하고 돌아와서 사위와 아이들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두 아이를 어린이집과 이웃 가정에 맡긴 후 다시 독서실로 향하는 일과다. 늘 바쁘게 뛰어다니며 열심히 사는 딸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건강이 걱정되어 안타까웠다.
드디어 임용시험 날이 다가왔다.
큰 손자가 아프다고 울면서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떼를 쓰고, 작은놈도 덩달아 징징거린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시험을 보러 가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애잔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온종일 묵주를 돌리면서 긴장하지 말고 공부한 만큼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은총으로 도와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시험이 막 끝났을 무렵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단다. 아침부터 아프다던 큰 아이가 열이 너무 높다고 빨리 데릴러 오라는 전화였단다. 집으로 오는길에 급한 마음에 신호를 위반했나 보다. 죄송하다며 사과를 드리고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시험 장소로 전화 확인을 하고서는 빨리 가보시라는 인정스러운 말이 너무 고마웠단다. 하루가 숨 가쁘게 돌아간 하루였다.
딸은 임용고시의 높은 경쟁률을 이기고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로 축하를 했다. 딸의 인생에 봄처럼 꽃이 피길 바라며, 자랑스러운 내 딸에게 박수를 보냈다. 시내 중학교로 발령이 나서 지금껏 근무를 잘하고 있다. 어느 날 학교 강당에서 진로 발표회가 열렸다고 한다. 교사의 꿈을 꾸는 학생이 딸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롤 모델로 삼고 싶다고 해 여러 선생님들의 박수를 받은 일이 있어 민망했다고 한다.
또 얼마 전에도 교생 실습을 온 대학생 제자가 딸을 찾아 왔더란다. 선생님의 열정적이고 재미있는 수업과 학생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는 모습이 좋아서 교사의 꿈을 키웠다고 하는데 딸은 너무 부끄러웠다고 하면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딸이 교사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웠다. 나는 딸에게 학생들의 장점을 보는 눈을 넓히고 지혜롭고 따뜻한 말로, 칭찬을 아끼지 말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진정한 스승이 되길 희망해 본다.
삶의 목적이 있어야 의미가 있고 용기가 있는 삶이 된다. 의미가 있어야 가치가 있는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근본적 계기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관이다. 우리는 보람 있는 삶을 원한다. 우리 인생에 희열과 행복을 주는 것은 보람이다. 딸이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은 가진 것에 감사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