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타이타닉호 건조 회사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는 세계에 널리 비극으로 알려진 타이타닉호가 탄생된 곳이다. 벨파스트 시가지에서 항구 주변을 지날 때 타이타닉호Titanic를 건조했던 회사 '할랜드 앤드 볼프(Harland and Wolff)의 마크(H&W)가 노란 기둥에 씌여 솟구쳐 올라 있다. 지금을 문을 닫았다. 영화에서 보았던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여기 와서 그 시초의 현장을 본다. 1911~1912년에 걸쳐 RMS 타이타닉이 이 곳에서 건조되었을 때, '할랜드 앤드 볼프(Harland and Wolff)'는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였다. 타이타닉호를 건조하던 당시의 역사를 보고 있다. 벨파스트에서 건조한 배 타이타닉호는 1912년 3월 31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조선소에서 영국 화이트 스타사의 주문으로 할랜드앤드울프사에 의해 건조된 타이타닉호는 다음 달인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영국인들과 귀족들을 태우고 뉴욕항으로 대서양을 건너며 처녀 출항에 나섰다. 타이타닉은 '바다 위 궁전'이란 뜻이다. 최고 큰 영국 군함 두 배 크기의 배였다. 296m 길이, 너비 30m다. 영국 군대 함선보다 가장 큰 배로 이 세상에서 '신도 이 배는 침몰시키지 못 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출항한지 닷새 후인 1912년 4월 15일 새벽 2시 18분 타이타닉호는 미국 북동 뉴펀들랜드 400마일 해상에서 부류하던 빙산과 충돌한 후 두 동강이 나면서 해저 3,821m 아래로 가라앉았다. 세계 최대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승선인원 총 2,228명 가운데 1514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711명만이 살아남은 최악의 대형 참사였다. 타이타닉호는 6각 벽, 즉 6개의 벽으로 되어 있어서 침몰이 불가능한 배였다. 안전한 배로 선장도 은퇴자였던 아담이라는 사람을 모셔다가 앉혔다. 빙산을 만나 배가 반으로 갈라졌다. 선장이 속도를 조금 올린 까닭이다. 귀족들은 파티 중이었고, 기자들의 속도 상승을 요구했던 것이다. 배의 불빛을 끄고 운항했다. 보초 선원도 빙산을 보지 못했다. 다행히도 첫번째 빙산은 피했는데, 바다 밑에 큰 빙산이 많았다. 배 밑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3천 명의 승선자 중 샌존자는 700명뿐, 나머지는 모두 사망했다. 타이타닉 영화 마지막 대사는 구조선박 선원이 '여자와 아이만 타세요'였다. 그러나 가족을 두고 살 수 없다고 가족이 함께 죽었다. 좀 더 많이 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침몰 이유로 첫째는 과속 운항이고, 둘째는 철은 낮은 온도에서 갈라진다는 것이고, 세째는 얼음은 낮은 온도에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계산 실패로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1912년에 침몰했다. 침몰 위치의 수심 3900m다. 깊은 수심에 잠긴 타이타닉호는 현대과학으로는 인양이 불가하다고한다.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비극의 대서양 횡단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건조된 장소인 영국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침몰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 최대의 타이타닉 박물관 '타이타닉 벨파스트'가 오픈했다. 침몰한 타이타닉호가 건조된 장소에 지어진 건물의 외관은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뱃머리 모양을 했으며 6층 높이의 건물 4개로 이뤄진 박물관 내에는 당식 타이타닉호의 객실 모습들이 재현돼 있다. 약 1억 파운드의 건축비가 투입된 이 박물관은 북아일랜드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소슬한 정경을 보며 다시는 이런 끔찍한 사고가 없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