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묵상] 바울과 모세가 위대한 이유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실존적 회개
셔터스톡
사도바울은 복음의 세계화와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그의 사도직(使徒職)에 대해서는 많은 시비가 따랐습니다. 당시에 사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신분이 필수적이었는데,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회심하기 전에 스데반의 순교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만큼 크리스천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사도행전 7:55∼58). 그래서 바울은 늘 자신의 사도직을 변명해야 했습니다.
"내가 사도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내가 사도이니라."(고린도전서 9:1,2)
부끄러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고귀한 소명(召命) 사이에 어깃장처럼 놓인 모순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울의 사도직 수행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역설이 바울을 겸손한 인격으로 만든 것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기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린도후서 11:30)
바울은 선교의 모진 역정(歷程) 속에서도 자신을 늘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책했습니다(디모데전서 1:15). 자신의 치명적 약점인 과거의 반그리스도(Anti-Christ) 행적 때문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 약점이 도리어 바울을 경건한 신앙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해방의 영웅 모세는 동족이 애굽의 탄압 아래 신음하는 동안 애굽의 왕궁에서 파라오의 양자(養子)로 호의호식하며 자랐습니다. 민족지도자로서는 심각한 약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황실의 양자로 자란 사람이 독립운동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만 애굽의 왕자생활 40년, 광야의 목자생활 40년이 없었다면, 모세의 민족해방 40년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성서는 모세가 가장 겸손한 인격이라고 증언합니다.
"모세는 땅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온유하였더라."(민수기 12:3)
그 온유와 겸손은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실존적 반추(反芻)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분입니다(고린도전서 1:27). 바울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 이유입니다. 만약 스데반 처형 현장에서 바울에 대한 평가를 완결 짓는다면,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적그리스도요 살인자일 따름입니다. 파라오의 궁전에 누운 모세는 민족반역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본 신사(神社)에 머리를 조아린 크리스천들을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심판한다면 '배교자'의 낙인을 찍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부끄러운 신앙인들을 회개의 자리로 이끄시고, 그들을 통해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원망이 감사로 뒤바뀌는 거듭남의 은총입니다.
땅이 새롭게 생명을 얻는 계절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의 무릎을 꿇는 깊은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글 | 이우근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