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그려낸 수채화
한가위 날 고향 선산(先山)으로 성묘 가는 길은 풍요롭다. 황금빛으로 물든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신작로 양편에는 하늬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낯선 나그네를 반긴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정겨운 시간이다.
그 길이 이어지는 곳으로 한참을 가면 회룡포와 삼강주막이 나온다. 오늘처럼 볕 좋은 가을날, 두 명소(名所)를 잇는 좁은 산책길을 따라서 걷고 싶다. 강변에는 억새와 수크령이 꽃이 되어 날린다. 들길은 온갖 야생화가 풍경이 되어 늘어서 있다. 그 들녘을 지나 강을 건너 한없이 걷고 싶다. 옆에는 누가 있어도 좋고, 혼자서도 괜찮다. 주변의 풍광을 흠뻑 음미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 들녘에서 가녀린 코스모스꽃을 보지 못하면 가을은 빛을 잃게 된다. 그 꽃은 미풍에도 흔들거리는 가녀린 중심을 가졌다. 그런 성정의 꽃에 너무 거대한 중압감의 이름이 어쩌다 붙여졌는지 모르겠다. 그 뜻은 우주이고, 질서이며 조화이기 때문이다. 우주(cosmos)는 곧 질서(order)이고 조화(harmony) 그 자체이므로 동어반복(同語反覆)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에 따라 이 꽃의 상징 또한 다양하다. 멕시코에서는 신(神)과 영혼의 상징으로, 그리스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로 불린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종교의식으로, 이슬람에서는 찬란한 천국의 은유와 예술의 모티브로, 불교에서는 우주와 깨달음의 길인 명상으로 대표된다. 피타고라스는 우주(Kosmos)를 항성(恒星)의 신성한 본체라고 생각하여 이 꽃을 조화와 질서의 꽃으로 여겼다.
코스모스의 어원에서 대상을 잘 다듬고 감싼다는 뜻의 ‘코스메티코스(cosmeticos)’가 나왔고, 여기에서 화장품(cosmetic)이란 말이 파생되었다. ‘질서’가 곧 ‘아름다움’의 상징이 된 셈이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 ‘순결’, ‘애정’, 친절‘, ’자립‘으로 불린다. 그리스에서는 그 꽃의 복원력, 회복력을 높이 여겨, ’활력‘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꽃의 원산지는 멕시코로 국화과에 속한다.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의 별‘(Mexican Aster)’이라 부른다.
왜 이 꽃을 ‘코스모스’라 불렀을까. 16C 스페인 탐험대가 멕시코에서 이 꽃을 발견하여 스페인으로 가져왔다. 그 당시 식물학자인 신부가 꽃잎의 아름다운 배열에 매료되어 질서를 뜻하는‘Cosmos’라고 칭했다고 한다.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정원의 장식용으로 심었다. 꽃 자체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담장을 뛰쳐나와 스스로 들꽃이 되어 가을들녘을 수놓는 풍경을 맡았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 가녀린 꽃잎과 줄기가 미풍에 흔들릴 때마다 혹 우주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나 조바심이 난다. 오늘도 꽃마당에 가득 핀 그 꽃을 보며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생각해 본다.
가을은 소리 없이 찾아와 세상을 자연의 캔버스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색깔을 바꾸어 놓는다. 선산 가는 길도 그렇다. 높고 투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발걸음을 옮긴 곳에는, 가을의 흔적인 코스모스 무리가 춤춘다.
길가에 가만히 서서 눈앞에 펼쳐진 군무를 바라본다. 한쪽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분홍빛, 보랏빛, 흰색의 일반 코스모스가 청초한 얼굴로 서 있다. 바로 곁에는 가을의 햇살을 닮은 황화 코스모스가 진한 주황빛과 노란빛으로 넘실거리고 있다.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두 꽃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군무는, 마치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이고 자연이 쓴 가을의 시다. 거친 여름의 폭풍과 무더위를 견뎌내고 고운 빛깔을 피워낸 꽃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주황빛 가득한 이 '황화(黃花) 코스모스'를 두고 많은 이들이 중국의 황하강에서 건너온 꽃이라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 꽃 역시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자라나, 우리 곁에는 비교적 최근에야 찾아온 귀한 손님이다. 분홍빛 재래종 코스모스가 가냘픈 '소녀의 순정'을 닮았다면, 척박한 땅에서도 활기차게 피어나는 황화 코스모스의 꽃말은 신기하게도 '넘치는 야성미'라고 한다. 그 상반된 두 매력이 한 길목에서 만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황화 코스모스’는 가을의 상징이라기엔 너무 일찍 핀다. 이른 여름부터 들녘을 차지한다. 흔히 가을 코스모스는 낮의 길이가 밤보다 짧아지는 늦여름이나 가을이 되어야 꽃눈을 맺고 꽃을 피운다. 반면, ‘노랑 코스모스’는 상대적으로 낮의 길이에 영향을 적게 받는 특성으로 여름의 긴 낮 동안에도 일정 온도와 성장에 도달하면 꽃을 피운다고 한다.
한여름 더위에 ‘노랑 코스모스’가 산동네 개울가에 무리 지어 핀다. 저녁노을을 따라 개울 길을 걸으면 하루의 고뇌를 잊을 수 있다. 실개천 언덕에도 화려하게 넘친다. 한낮의 열기를 견디며 가을을 미리 알리는 저들의 ‘넘치는 야성미’는 위로를 던져준다.
어느 시인은 “이 세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펼치는 캔버스에 불과하다. 상상력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정신의 공기’다”라고 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캔버스에 수채화로 그린다. 나의 상상력은 언제쯤 가을날의 ‘삽상한 정신의 공기’를 마시며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자연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제시간이 되면 묵묵히 싹을 틔우고, 때가 되면 이처럼 우주의 신비를 담은 눈부신 풍경을 선사한다. 겨울의 나이에 접어든 나도 그리 서두를 일이 없을 것 같다.
선산(先山)으로 가는 가을 코스모스 길을 걸으며, 내 삶의 계절도 저 꽃들처럼 나만의 빛깔과 이야기로 아름답게 물들어 갔으면 좋겠다. 선산 양지바른 곳에 누워 계시는 부모님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내 마음을 아는 양,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