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옥상 와이너리/박 홍-
옥상에서 포도주를 담그는 날은 우리도 즐거운 수공업자가 되는 거다
그래 터질 듯 까맣게 익은 포도알을 으깰 때면 느끼지 캄캄한 여름밤의 즙액이 흘러나오고
아득한 거리를 달려온 황도십이궁의 별빛이, 밤새 어딘가로 흘러가던 은하수의 물소리가, 은
하전파를 타고 날아온 우주의 씨앗들이, 알 수 없는 암흑물질들이, 물결처럼 출렁이던 보름달
빛과 초승달빛이 부화하는 알 속의 핏줄처럼 툭, 툭 터지면서 향기를 내뿜는 거야.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던 여름 한낮의 고요도 울컥울컥 하늘에다 단내를 토해내지 희미하지만 폭우와
폭풍의 냄새도 풍긴다네 잠깐 쉬고 있으면 먼 곳의 천둥소리가 거품이 되어 떠오르는 것도 보
인다네.
그때쯤이면 벌과 나비들이 날아오기 시작하는 거야
꽃등에가 방향을 잘못 잡은 어리호박벌을 데려오고
도시처녀나비와 시골처녀나비가 손잡고 날아오고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도 날아온다네
간간이 아내와 딸아이는 어리호박벌에게 호통도 치는데
멀찍이 하늘 끝으로 내려앉은 뭉게구름은
우리식구들을 또 하나 항아리로 속에 가둔다네
그런 뒤에 바람과 햇살과 천둥소리와 밤의 즙액이
빠져나가지 않게끔 꼭꼭 밀봉하는 거야
부글거리면서 저희들도 새롭게 태어나려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겠지
그때 한 번쯤 뒤집어주는 거야
다시 힘 든 시간을 기다렸다가
육탈시키듯 걸러버린다네
냉장고에 넣고 차게 해 두면
육신의 희미한 기억들까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투명한 붉은 영혼이 만들어진다네
병에 담아 조심스레 뉘어서 잠을 재우는 거야
어느 날
주먹처럼 커다란 별들이 하늘에서 둥둥 떠다닐 때가 있을 거야
우리 어렸을 때처럼 말이야
그러면 잠재웠던 영혼들을 하나씩 흔들어 깨우는 거야
투명한 붉은 영혼 속에서 깨어난 별들이 춤을 춘다네
그때부터 은하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네
-詩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 2016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