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속담에도 그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The grass always looks greener on the other side’가 그 속담입니다.
이 표현을 풀이하면 ‘다른 쪽에 있는 잔디가 항상 더 푸르게 보인다.’는 내용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물건이나 남이 처한 상황이 더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내 떡이 더 크더라도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한 신문의 만화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나뉜 두 목초지가 있었습니다. 두 목초지는 비슷한 크기였고 각각 푸른 풀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각 목초지에는 노새가 한 마리씩 있었는데, 두 마리 다 철조망 울타리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어 반대편 목초지의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풀을 뜯기가 훨씬 어려웠을 텐데도 울타리 너머의 풀이 더 좋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풀을 뜯던 노새들의 머리가 울타리 사이에 끼여 버렸습니다. 아무리 해도 빠져 나갈 수 없게 되자 노새들은 겁을 집어먹고 시끄럽게 울어댔습니다. 만화가는 그 상황을 지혜롭게 묘사하는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불만"
우리에게 없는 것에 몰두할 때 우리도 그 노새들처럼 주어진 축복을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일은 잘못된 게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삶이 더 편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가격도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한 차인데 우리 집 차보다 남의 집 차가 도 좋아 보입니다. 새끼는 제 새끼가 더 귀엽고 마누라는 남에 마누라가 더 예뻐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런 식의 비교를 골백번도 넘게 합니다. 집, 고급 차, 자기 사업체 등 삶에서 원하는 바가 있나요? 그것에 집착하지 않도록 예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축복을 기쁘게 누려야 합니다. "남의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이는가? 그러나 그것 역시 때마다 손질해 주어야 한다."
입에 뼈다귀를 물고 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거기 보이는 뼈다귀가 더 먹음직스럽게 보여 그걸 물기 위해 입을 벌리다가 자기가 가진 진짜 뼈다귀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개에 관한 이솝우화가 있습니다.
그 개는 물속에 비친 뼈가 자신이 가진 뼈보다 어찌나 좋아보였던지 그만 대번에 컹하고 짖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개는 환상 때문에 현실을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개가 한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할 수 있어야지, 남의 삶을 부러워하며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욕심을 내려놓고 지금 내가 겪는 일상의 삶 안에서 찾는 행복이야말로 주님께서 주시는 큰 선물입니다. 그런데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남의 삶이 내 삶보다 훨씬 나아보이는 까닭은 욕심과 이기심 때문입니다.
지금의 내 삶보다 다른 사람의 삶이 부럽지만, 막상 남의 삶을 살아보면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므로 실망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의 특별한 삶이 부럽지만, 사실 나의 평범한 일상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많습니다.
식당에서 한참을 기다렸던 음식이 나왔을 때, 지금 막 전철 플랫홈에 도착함과 동시에 전철이 왔을 때 그리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빈자리가 내 앞에 생겼을 때, 좋아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을 때...이밖에도 평범한 일상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편하게 보이는 남의 삶을 부러워하고 욕심내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인 내 삶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참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인 것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습니까? 내 삶에 충실한 만큼 행복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라. 이런 걱정은 이방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신다. <마태복음 6장 31~32절>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쓴 [고요함의 기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고요함을 주시고, 그 둘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이것이 그 유명한 라인홀드 니버의 고요함의 기도입니다.
첫댓글 집착을 버리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