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현상공모>
2022년 제1회 이충이문학상
나는 말의 순례자
차옥혜
말의 종족으로 태어난 행운으로
귀가 열리자마자 말 세례를 받아
말로 나는 자라고 세계를 얻었다
말로 천 년 전후 사람도 만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산다
그러나 내가 아는 말은 참 말의 일부
높고 깊으며 광활한 말의 우주에서
빛나는 별들의 근원과 신비를 찾아가는
나는 말의 순례자
말의 어머니를 만나면
생 노 병 사를 뛰어넘는
비밀 통로를 보리라
그러나 내 걸음은 점점 더 더디어가
끝내 말의 고향에 이르지 못해도
나는 진실, 생명, 평화, 사랑이 담긴
말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산
말의 힘을 믿고 의지하며 산
끝끝내 말의 순례자임을
기뻐하리라
시월 햇빛 밝은 길에 내가 있다
눈부시게 환한 시월 길에
내가 있다
햇빛이 나와 길을 껴안는다
햇빛이 반짝인다 내 몸에서
햇빛이 반짝인다 길에서
내가 반짝인다 햇빛 속에서
길이 반짝인다 햇빛 속에서
시월 햇빛 쏟아지는 길에
내가 살아 있는
축복이여
기쁨이여
내가
시월 햇빛의 꽃이 되는
순간이여
시월 햇빛이 내게 스민다
내가 시월 햇빛에 스민다
내가
시월 햇빛에서 빛이 되는
찰나여
견우와 직녀는 만나야 한다
한양과 아사달은 만나야 한다
백두산은 한라산을 지리산은 묘향산을
품어야 한다
한반도 강들은
삼팔선을 분단을 모른다
태초부터 변함없이
두만강 성천강 남강 형산강 태화강은
한사코 동해에서 만나 어우러지고
한강 압록강 금강 대동강 영산강 청천강은
끊임없이 서해에서 만나 몸을 섞는다
한반도 산과 평야는
자신들의 환희와 절망의 눈물 고여 흐른
강과 바다를 닮아
분단 70년을 내던지고
사람이 으뜸인
평화 통일의 나라 이루어야 한다
세계 민주주의 문화 예술의 메카
번영하는 한반도를 세워야 한다
견우와 직녀가 더 이상 울게 하지 말자
견우와 직녀가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자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수상 결정 소식에 저는 지금 단풍 들어 활활 불타고 있습니다. 가을의 나이에 있는 저는 이따금 화살나무나 단풍나무가 가을에 빨갛게 단풍 드는 것처럼 한 번쯤 꽃이 되고 싶었는데 이 꿈을 이루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충이 선생님은 일면식도 없는, 변방의 무명 시인인 저에게 2001년 『시와산문』 가을호에 시 두 편을 처음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 뒤 산문 「삶은 문학의 프리즘을 통해 꽃이 되고 영원이 되고」와 「시는 나의 본능이며 내 삶의 형식이다」를 실어주셨습니다. 게다가 신작 시 특집 2회와 시 발표 3회 기회를 더 주셨습니다. 문학은 발표 지면을 통하여 독자를 만나고 성장 발전하는데, 실로 큰 은혜였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선생님을 찾아뵙고 감사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늦깎이로 1984년에 등단하고 1988년부터 도시에서 아들 둘을 기르는 엄마이면서 한편으로 자연에 바람이 난 탓에 시골에서 나무와 꽃과 농작물을 기르던 저는, 일 더미에 파묻혀 문학 모임에 거의 참석 못 했습니다.
이런 나에게 발표 지면을 많이 주신 선생님의 인품과 지극한 문학 사랑을 되새기며 우러릅니다. 선생님의 영혼 앞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이충이문학상의 제1회 수상자로서 더욱 나의 시를 갈고 닦아 문학상의 위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수상은 저에게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