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등진 채로 싸움 붙고 ‘줄행랑’조조 ‘숨은 계략’ 판단 군사 물리자촉나라 기다렸다는듯 공격해 대승 잘못된 배수진으로 참담한 패배를 당한 서황은 조조에게 돌아와 왕평의 배반을 침소봉대한다. 분노한 조조는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빼앗긴 한수의 군영을 탈환하기 위해 쳐들어왔다. 조자룡이 보니 적의 규모가 너무 커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자. 우리가 상대할 만한 규모가 아니다. 일단 한수 서쪽으로 물러난다.” 양군은 강물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다. 주변의 지형을 살피던 제갈공명이 한수 상류에 1000여 군사를 매복시킬 만한 토산을 발견한다. 공명은 조자룡을 불러 명령한다. “조 장군! 그대는 군사 500명에게 북과 피리를 들려 토산 아래에 가서 매복하시오. 한밤중에 우리 군영에서 포성이 울리거든 북과 피리를 요란하게 울리시오.”
조조군이 촉군 진영으로 몰려와 싸움을 걸어도 촉나라 병사들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밤이 되고 군사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졌을 즈음, 공명은 포성을 울리라 명한다. 포 소리가 나자 매복해 있던 조자룡의 군사들도 같이 북과 피리를 울린다. 조조군은 습격당한 줄 알고 당황해 전투태세를 갖춘다. 그러나 적군은 보이지 않는다. 조조의 군사들이 다시 군영으로 들어가 쉬려고 할 만하면, 다시 포성이 울리고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울리다 그치기를 몇 차례 계속됐다. 조조군은 불안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이렇게 사흘 밤 동안 반복하니 견뎌낼 재주가 없다. 조조는 한수의 군영을 버리고 30리를 물러나 개활지에 군영을 세운다.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한수를 건너 배수진을 치고 군영을 세우라고 권고한다. 유비가 배수진을 쳤다는 보고를 받은 조조는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유비가 배수진을 쳤을까를 장수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못했다. 사흘간 귀신놀음에 공포감까지 쌓인 조조의 군사들은 저것도 그 계략의 연장선일 것으로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제갈공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조조는 유비에게 정면 승부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튿날 양군은 중간 지점인 오계산 앞에서 만나 각각 진을 쳤다. 조조가 말을 타고 진 앞에 나와 소리를 지른다. “유비 이놈아, 너는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린 조정을 배반한 역적이로다.”
유비도 맞고함친다, “나는 한실의 종친으로서 황제가 친히 내리신 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려 한 지 오래됐다. 네가 모후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돼 황제의 의장을 함부로 쓰니, 너야말로 역적이 아니더냐.” 열받은 조조가 서황에게 당장 유비를 죽이라고 소리 지른다. 서황이 말을 몰고 달려나가니 유봉이 맞아 싸우러 나온다. 두 장수가 어울려 싸우다가 유봉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자, 누구든지 유비를 사로잡는 자는 서천의 주인으로 만들어주겠다. 공격하라.”
조조의 말에 대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촉군 진지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촉군은 마필이며 병기를 모조리 길에 내버리고 도망친다. 다만 배수의 진을 친 한수를 향해 달아날 뿐이었다. 조조의 병사들은 촉군을 뒤쫓기보다 그들이 버리고 간 마필과 병기를 챙기기에 바쁘다. 조조가 이 모습을 보더니 급히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둔다. 여러 장수가 의아해하며 돌아와 조조에게 묻는다.
“저희들이 이제 유비를 거의 사로잡을 판인데 왕께서는 어찌하여 군사를 거두십니까?”“뭔가 이상하다. 첫째, 촉병이 한수를 등지고 배수진을 친 것이 의심스럽다. 마필과 병기를 모두 버리고 달아난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무언가 계략이 숨어 있는 것 같으니 급히 군사를 물리라.” 조조가 병사를 뒤로 물리려고 하는 순간, 공명이 깃발을 올려 신호하니, 현덕이 거느린 중군이 몰려나온다. 왼쪽에서는 황충이, 오른쪽에서는 조자룡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온다. 당황한 조조군은 일거에 무너지며 도망치기에 바빴다.조조는 남정으로 모든 군사를 모으라고 명령한다. 그곳에서 정비해 다시 결판을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남정으로 가는 다섯 갈래 길에서 불이 오르는 것이었다. 낭중에 있던 촉나라의 위연과 장비가 점령해 버린 것이었다. 조조는 양평관을 향해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유비군의 대승리였다. 그리고 이 승리 뒤에는 조조의 계산을 염두에 둔 제갈공명의 배수진이 큰 역할을 했다.
TIP : 배수진이 승리를 가져왔다?
대승리로 전투를 장식한 유비가 공명에게 물었다. “나는 이 전투에서 조조가 이렇게 쉽게 패한 이유를 알 수가 없소.” 이에 공명은 “조조는 평소 의심이 많은 위인이라 그 의심하는 성격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배수진은 아무 뜻 없이 그저 의심하라고 쓴 계책이란 말이오?” “지난번에 서황이 아무 동기도 없이 배수진을 썼거든요. 그래서 저도 조조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계책으로 배수진을 써 봤습니다. 우리가 배수진을 친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조조는 의심하고 겁을 먹은 것이지요. 이번 싸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신속한 승리를 가져다준 것은 조조 혼자서 상상한, 우리 뒤에 있지도 않은 가짜 병사들 덕입니다.” 배수진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최상이나 최악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전투가 한중의 한수전투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