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기르기와 산 꿩의 진상
서석규
내가 자란 곳은 진산군의 산골마을이었다. 한일합방 뒤 일제 강점기 때 금산군으로 병합된 곳이다. 이곳에서 자라던 내 어린 시절 (1940년 전후) 기억 속에는 매사냥 때 꿩 몰이에 끼어 눈 내린 산비탈을 뛰어다니던 일이 남아 있다. 작대기 하나 들고 마을 젊은이들 뒤를 쫓아 눈 내린 산비탈을 쏘다녔다. 가을이면 마을의 높은 산봉우리(매봉)에 덫을 놓아 생매를 사로잡았다. 마을에는 동네 사랑 윗방에 매를 기르던 매방이 있었다. 매사냥에서 꿩을 잡으면 맨 먼저 꼬리를 뽑아 몰이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꿩 꼬리 깃털을 얻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잡은 꿩은 보통 한 번에 한두 마리에 그쳤다. 많아야 세 마리를 넘는 않았다. 내게 제일 크고 잘 생긴 꼬리 깃을 주었으면…하고 조마조마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조선조 후기의 진산군 읍지에서 흥미 있는 기록을 보았다. 왕실에 올리던 진공 목록 머리에 ‘산 꿩(生雉)’이 있었다. 물론 말린 꿩고기도 있었다. 다시 이웃 군이며 일제 강점기 때 병합된 금산군 읍지를 보니 진공에 대한 더 자세한 기록이 나타나 자못 흥미가 일었다.
진산군 읍지 (珍山郡 邑誌-正祖朝)=진산군 진공(進貢) : 산 꿩(生雉) 말린 꿩고기(乾雉) 산 노루(生獐) 햇보리(大麥) 햇밀(小麥) 햅쌀(新稻米) 부채(扇子) 씨 바른 과일(去核) 삼줄(條所) 왕굴자리(草席) 상자(箱子)
금산군 읍지(錦山郡 邑誌-朝鮮後期-1793년경)=금산군 진공 : 산 꿩(生雉), 말린 꿩고기(乾雉), 꿀(淸蜜), 햇곡식(新稻米 大麥 小麥), 잣(柏子), 홍시(紅柿-早紅柹), 곶감(乾柿)…. 산 꿩의 경우 △설날(正朝 : 正月令-生雉二首 △대전 생신날(大殿 誕日 : 十月令-生雉二首) △왕대비 생신날(王大妃殿 誕日 : 冬至-生雉二首) 등 한 해 세 번 올리고 있다.
산 꿩의 진공 시기는 10월부터 섣달 사이였으며 산 노루(生獐)도 마찬가지였다. 진공 목록에는 반드시 수량을 명시하고 있는데 꿩은 2마리, 꿀은 1되 또는 2 되였다. 올 홍시(早紅柿-나무에서 익음)의 경우에는 7개, 익힌 홍시(紅柿)는 33개 곶감의 경우에는 1접 등 지정하여 남획을 막았다.
내 어릴 때만해도 봄여름에는 어떤 산짐승도 함부로 잡지 못했다. 심지어 가재도 낙엽이 진 뒤에나 잡을 수 있었다. 마을 원로들이 철저히 규제하는 것이 전통이며 관습이었다. 옛날 우리나라 법도와 전통의 명맥이 적어도 일제 강점기 말까지 ‘선비정신을 숭상하던 산골 마을’ 곳곳에는 근근이 명맥을 지켜져 온 것 같다.
옛날의 매나 매사냥의 기록은 중앙부서 사옹원(司饔院) 직속의 응방(鷹坊)이 있었고 응방 직영의 응사계(鷹師契)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물고기의 경우 한강 하류 행주산성 인근에서 웅어(葦魚 廬魚)를 잡아 올리는 위어소(葦魚所)가 있었듯이 응사계도 서울 인근 어디엔가 있지 않았을까? 따라서 지방 고을에 따라 꿩 따위 산짐승을 진공(進貢)하는 고을에도 관아에서 지원하는 응사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전통 민속 가운데 매사냥도 고을마다 전하는 매우 뜻있고 흥미 있는 전통이다. 따라서 가을에 생매를 잡는 방법이나 겨울철 사냥이 끝난 뒤 매를 날려 보내는 풍습 등 각각 독특한 전통을 가꾸어왔다. 자연과의 공생, 자연 속 인간의 삶의 한 길로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남기고 있었다.
응골방(鷹鶻方-매 기르는 법-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세종 때 것으로 아는데 고려 때 지은 것이라는 주장이 많음)에는 매의 종류, 생매를 길들이는 구체적인 방법과 먹이, 훈련방법, 질병, 약의 처방과 조제 등 매에 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철저한 기록에 감탄하게 된다.
일본은 매사냥 전통으로 나라의 큰 이익을 얻은 일이 있었다.
1970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세계 무역박람회(엑스포 70)가 있었다. 아랍 에미리트 의 왕자가 이 박람회에 구경 온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그는 매를 기르고 매 사냥을 하는 취미에 푹 빠져 있었다. 일본 안에 매를 많이 기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중동 부자나라 왕자의 구미에 맞도록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그가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매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 집 매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둘이는 금시 친해졌고 왕자가 돌아갈 때 매 한 마리를 진상했다. 그 일본인은 왕자의 초청을 받아 아랍 에미리트에도 다녀왔다. 뒤에 그 왕자가 왕위에 올랐다. 일본의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새로 왕이 된 그 때 왕자의 도움으로 시원시원 풀렸다.
한동안 한국에는 정부와 국민이 잘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매사냥과 같은 전통 민속을 ‘가진 자의 사치’ 또는 ‘자연보호 생태보존에 역행하는 만행’이라며 매도하는 바람이 거세었다. 아직도 거센 바람에 꺾이고 짓밟혀 사라지는 전통 민속이 허다하다. 그러나 최근 일부에서나마 그 가치를 새롭게 이해하는 바람이 조금씩 일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세미나에서 매에 대하여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은 매우 반갑고 뜻있는 일이다. 了
첫댓글 세미나에 맞춰 귀한자료 보내주신 서석규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허가를 득한 응사, 두 분께만 매사냥과 매기르기가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에는 그 중 한분이 참석을 하셔 시연을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국장님, 귀한 분을 모신다고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