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0년 12월19일 맑음
산행시간 및 거리: 8시간 20분, 13.2km
참가인원: 10인(신가이버, 대간거사, 일보, 영희언니, 모닥불, 사계, 향상, 해마, 오모, 무불)
산행구간:
8:30 엄둔계곡 산행시작
9:20 첫번째 휴식, 입산주(과메기, 칡술)
11:20 살구넘이재, 점심
14:40 칼바위
15:10 구봉대산
16:10 널목재
16:50 법흥사 산행종료
수도권에서 10인 이상의 모임은 자제해야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에 천명을 오르내리면서 3단계에 준하는 강력한 방역조치가 실시되고 있다. 일상적인 만남도 조심스레 결정해야하는 시기다. 태풍과 눈보라가 쳐도 산행을 이어왔던 오지의 자부심이 엄중하고 비장한 그 무엇으로 느껴진다. 이 코로나 와중에도 권고범위를 넘는 12인이 참석신청을 했다. 사정으로 오지 못한 무한님과 다올님을 제외하고 두메님을 포함해서 권고인원을 2인이나 넘어서는 11인 모임이 되었다. 무불은 밤잠을 설쳤지만 출근했다. 사계형님은 교대일정을 다른 분과 바꾸고 출근했다. 나도 직장에서 내려진 자제권고 때문에 출근할지 마음은 고민을 했지만 주말 혹한삭풍 예보를 접하니 몸이 오지로 향한다. 수도권을 벗어나야 사회적 규율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에 모닥불님이 마지막으로 도착하자 마자 서둘러 출발한다.
이틀후면 동지다. 지금 시각 6시51분 아직도 어둠이다.
오늘 아침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돈다. 입산지점인 무릉도원면은 현재 영하 12도에 가까운 강추위다. 악수형님이 어젠가 산행은 겨울산행이 진짜라고 하신 말이 생각난다. 겨울을 위해서 봄, 여름, 가을 산행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엇이 겨울 산행을 진짜로 만드는지 궁금했다. 나는 봄 산을 좋아한다. 따뜻한 햇볕, 바람에 하늘거리는 연두색 이파리,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산벚꽃이 대책없이 정신을 놓게 만드는 편안함을 준다. 겨울산행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내안의 용기를 쥐어짜내한다. 나뭇잎을 모두 떨군 맨몸으로 흰백의 골기를 드러낸 산의 진면목을 대하려면 어쩌면 내 몸도 진솔해야하지 않을까, 이런 맵고 당당한 기상이 겨울산의 맛이 아닐까 사량으로만 짐작해본다.
생각은 당당하게 해보지만 동트기전 날씨는 인간적으로 정말 춥다... 치악산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아랫도리가 너무 썰렁하다. 기모바지로는 역부족이다. 작년까지는 영하10도면 이 바지로 충분했는데 겁이 덜컥 났다. 요즘 감기걸리면 안되는데... 만약을 위해 준비한 타이즈를 차안에서 은밀하게 덧입는다. 총대장님이 겸연쩍게 볼을 감싸는 방한모를 꺼내신다. 지난주 영하 10도 추위에 모자를 안쓰고 안산에 올랐는데 한참을 어지러움을 느끼셔서 방한모를 준비했다고 하신다. 밤잠을 잘 못잔 무불을 비롯해서 모두 몸이 이제는 한해가 다르다고 모두 이구동성이다. 뒤에서 해병대 후배 해마가 "야, 너도 칠십 되봐"라며 총대장님을 케이오 시킨다.
산행들머리에 수상쩍은 SUV 차량이 정차해있어서 일단 지나쳐가며 동태를 살핀다. 두메님이 매의 눈으로 빨간 깃발과 빨간 조끼를 포착한다. 오모가 대비한 플랜B인 엄둔계곡으로 방향을 바꾼다. 전용자량을 이용해서 산행을 하는게 이렇게 효율적이고 편할 수가 없다. 더구나 두메님같은 베테랑이 이끄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차를 돌려 확인 사살해보니 역시 산불 감시 요원이었다. 경방기간이 지났는데도 감시망은 풀어질 기미가 없다. 일상 곳곳에서도 받는 제약으로 갑갑한 연말이다.
많은 눈은 아니지만 20년 첫 눈산행이라 이름할 수 있을 정도로 산은 뽀얗게 분칠이 되어 있다. 등산화 밑으로 눈이 얇게 밟힌다. 기온은 여전히 영하 10도 주위지만 바람 없고 햇볕이 비추면서 더이상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아마 아까 덧입은 타이즈 덕분인듯도 하고. 그리 가파르지 않은 사면을 따라 3백여미터 고도를 오른다. 코안이 살짝 어는 정도지만 호흡은 청량하고 발걸음은 무겁지 않다.
엄둔계곡 들머리
사계님이 준비한 과메기를 총대장님께서 쌈을 싸서 일일이 입에 넣어주신다.
솔잎님께서 마련해주신 과메기와 칡술로 입산주 한모금
고도가 높지 않아서 아직까지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일단 살구넘어재에서 점심자리를 잡는다. 넓은 공간이 없어서 마치 방역 가이드라인을 지키듯 3팀으로 나누어 식사를 한다. 오대장의 계획은 900봉 구봉대산에서 서편으로 내려선 후 2백여미터 사면을 올라 널목재로 하산이다. 계획대로라면 1/3 남짓 온 셈이다. 짐작은 했지만 구봉대산에서 곧바로 널목재로 하산하는 안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더욱 마음이 편해진다. 점심을 마치고 역시 완만하게 2백여미터를 오른다. 동쪽 사면 양지바르고 분위기가 좋다. 간간히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일렬횡대로 점심
오모 수난의 날이 었다. 산행중 오모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스틱이 부러졌다. 휴식중인데 오모가 오질 않는다. 또 투덜거린다. 대물 덕순이를 흘렸는데 찾느라 지체되었단다. 사면을 수색하는데 오모가 또 오질 않는다. 이번에도 지난번 산행처럼 핸폰을 잃어 버린건지 또 다시 더덕을 흘린건지 연락을 해본다. 덕순이도 잃어버리면 내폰 찾기처럼 위치 추적이 안될까? '덕순덕순'하며 신호음을 내면 찾기 좋을텐데 무불이 농을 던진다. 위의 사진에서 언급했듯이 오모가 안경을 잃어버렸다. 사계형님과 같이 수샥해서 안경은 겨우 찾았는데 오른쪽 렌즈는 실종. 졸지에 '무소유 오모거사'가 되어버렸다.
구봉대산의 대자가 클 대가 아니고 대 대자군.
다올의 오지 사랑이 지극하다. 오늘을 위해 정성스럽게 연장을 만들어 오지에 나올 만반의 준비를 하였지만 여의치 못하게 코로나 검사를 받은 사람과 겹치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옆 사람도 아니고 5번이나 거쳐서라니. 검사 사실을 알고도 오지 출근하기가 찜찜해서 무불에게 어떨지 문의했는데 부위원장께서 적극 권하지는 않았나보다. 새벽까지 고민하다가 오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니 이렇게 신실한분이 있을까? 영어로 6 degrees of separation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가 조사를 했는데 지구상에서 임의로 두사람을 뽑아서 이 사람이 몇단계를 거치면 지인으로 연결되는지 조사해보았다. 그게 평균적으로 6번이라고 한다. 내가 전혀 알 것같지 않은 모르는 예를 들어 아프리카 사람을 뽑더라도 여섯다리만 건너면 지인으로 연결된다는 의미다. 다올 회사 과장의 딸을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님의 학생의 엄마라든가, 뒤의 둘은 가물가물할 정도인데 그분이 검사를 받았다고 오지 출근하기가 깨름직하다는 말씀. 결국 음성을 받긴했다는데... 하여간 다올님 대단한 분이다. 게송에 초발심시 변정각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발심할 때 마음이 바로 깨달음 자리라는 말이다. 오지 초심이 바로 오지의 정수인데 다올의 초심은 오지의 인싸중에도 인싸인듯 하다.
주천에서 목욕탕을 찾았으나 역시 모두 문을 닫았다. 남원주로 이동하며 무불이 열려있는 사우나와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찾았다. 모두 성공. 심지어 사우나는 5백원 할인까지 받았고 삼겹살과 청국장 맛이 일품이었다. 식당은 혹시나 해서 나누어 앉아야 하는지 문의했는데 입장해보니 손님들로 꽉 차있다. 아직 지방 도시와 수도권에는 불안의 온도차가 있는듯 하다.
확진자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2주간 특별방역조치가 내려졌다. 5인이상 모임금지다. 방역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최소한 2주간은 이런 오지의 일상을 누릴 수 없다. 우리도 비대면 사회에 맞게 줌으로 하는 랜선 산행도 만들어 봐야하나. 뭐 오지 산행이 꼭 한가지 방식만 있겠는가. 여건에 맞게 산을 즐기다가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거지.
오지에는 없었던 겨울방학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자율학습해야겠다. 그동안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면서 점수도 많이 따 놓고. 오지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에 행운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두루가 편집한 이번 산행 동영상도 첨부합니다.
https://youtu.be/l4YdP1CbH4w
첫댓글 일렬횡대 점심.
그런 수도 있었네요.
조망이 좋은 참 좋습니다.
나뭇잎이 없으니 카메라 각도가 좀 나오네요. 일렬횡대에서 반찬이동은 '전달!'입니다 ㅎㅎ
눈 산행이 짭짤 했지요.
아니겠지만, 올 해도 이것이 온 눈의 전부가 아닐지 하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드네요.
내년 1월은 춥고 2~3월에 눈이 좀 온대. 사정이 나아질 때쯤 눈산행 원없이 합시다~
도 높으신 법흥사 큰 스님을 뵌 것이 행운이었네요. 우연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유.
절만 참배했었는데 스님까지 뵙게되니 더 친근해진 느낌입니다.
이날이 올해 마지막 산행이었던 저는 모든 순간 하나 하나를 온몸으로 느끼려 했습니다. 점심 먹고는 벌써 아쉬어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자꾸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산행 내내 여러 에피소드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신 오모.해마형님. 동생들 위해 사면 누비는 번거로움을 마다 하지 않으신 영희언니. 모닥불 누님들. 옆에 있어 항상 든든한 일보형님.사계형님. 산행기 쓰려고 카메라 들고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 만들어 낸 향상님.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지팀의 안전산행을 위해 수고하시는 신가이버대장님. 대간거사님. 같이 해서 더욱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깔끔한 진행과 맛집을 개발한 무불 위원장도 수고했고.
내년에도 모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