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갑자기 발생한 핸드폰 고장때문에 수리센터를 방문했다가 어처구니 없는 답을 듣고 실망을 해야 했다. 화면이 접어지는 폴드폰인데 메인화면이 먹통이었다.
수리비가 자그마치 65만원.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다. 고장의 원인은 접혀지는 부분이 충격에 약해서라고 하였다. 생각해보니 지난 초여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떨어트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소파에 앉아 쓰다가 떨어트렸었는데 아무래도 그 영행인듯 싶다.
지난해 1월말에도 텃밭을 꾸미느라 리어카를 끌다가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 화면이 꺽여 고장이 나 폐기를 했었다. 도대체 왜 이런일이 거듭 발생하나 싶다. 어쩔수없이 당분간은 반쪽짜리 화면을 써야할듯 싶다.
아내와의 대화중에 반짝하는 통찰력이 떠올랐다. 나의 말에 대한 아내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비판적이다. 그래서 때때로 본의 아니게 층돌을 경험하게 된다.
언어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예배시간의 절반이상을 설교에 할애한다.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말은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어 준다. 선악과를 먹으라고 권하는 하와의 말에는 사람을 현혹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아담이 받아 먹었을 것이다.
아담은 이미 하나님의 명렁을 통해 왜 선악과를 먹으면 안되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주저없이 받아먹은 것은 그만큼 하와의 말에 힘이 있었기 때믄이다. 선한 영향력이 아닌, 악한 영향력이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반대로 듣는 순간 사람을 격분하게 만드는 언어도 있다. 바울은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행 26:11, 개역한글)
바울은 예수제자들의 활동상황을 듣는순간 자신이 격분하였다고 고백한다. 분노를 느꼈다는 말이다. 말 중에는 듣는 상대를 격분시키는 말이 있다. 스데반의 설교는 바리새인들을 격분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일제히 스데반을 향하여 돌을 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나의 말에 대하여 사람들은 두가지의 반응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감동을 하는가하면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격분하고 격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