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년 우드스탁 페스티벌
1999년 파리
2007년 스위스 바젤
지미 팰론 쇼
런던 팔라디움,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마지막 퍼포먼스
So Why Can't We? Dreams The Cranberries 가사 Oh my life is changing everyday 내 삶은 매일매일 변해가요 Every possible way 가능한 모든 방법들로 말이죠 Though my dreams, 그저 내 바람이더라도 It's never quiet as it seems 내 삶은 결코 보이는 것처럼 Never quiet as it seems 단조롭지만은 않아요, 정말요 I know I felt like this before 전에도 이런 느낌이었던 적이 있죠 But now I'm feeling it even more 하지만 이번엔 더 강해요 Because it came from you 당신에게서부터 비롯되었죠 Then I open up and see 그리고 난 선명히 깨달았죠 the person falling here is me 여기 사랑에 빠진 사람이 나라는 걸 A different way to be 예전과는 달라요 I want more 더욱 바라고 있어요 Impossible to ignore 무시할 수가 없어요 Impossible to ignore 무시할 수가 없어요 Impossible to ignore 무시할 수가 없어요 And they'll come true 이제 꿈이 이뤄질 거에요 Impossible not to do 이뤄질 거에요, 꼭 Impossible not to do 이뤄질 수 밖에 없어요 Now I tell you openly 이제 당신께 솔직히 말해요 You have my heart 내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So don't hurt me 상처주면 안 돼요 You're what I couldn't find 내가 본 적 없을 만큼 A totally amazing mind 당신은 놀랍도록 넓은 마음과 So understanding and so kind 깊은 이해와 친절함이 있죠 You're everything to me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이에요 Oh my life is changing everyday 내 삶은 매일매일 변해요 Every possible way 여러 방법들로 말이죠 Though my dreams 그저 내 꿈이더라도 It's never quiet as it seems 내 삶은 그저 단조롭지 않아요 'Cause You're dream to me, dream to me 당신이 내 꿈이니까, 내 희망이니까 크랜베리스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는 아일랜드 출신 4인조 락그룹으로 1992년에 데뷔를 했다. 작사, 작곡을 맡고 있는 보컬 Dolores O'Riordan을 중심으로 Fergal Patrick Lawler가 드럼을, Noel Anthony Hogan이 기타를 Michael Gerard Hogan이 베이스를 맡고 있다. 이 둘은 형제다. Cranberry sauce(크랜베리 소스)처럼 들리는 The Cranberry Saw Us 라고 지었다고 한다.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 앨범과 No Need to Argue 앨범이 연달아 히트함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팬들이 생겨났는데 특히 보컬의 독특한 창법이 큰 주목을 받았다. 몇년 전 자우림의 팬이야 라는 곡을 들으면 창법이 꽤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쉽게도 전 앨범들만큼 호응을 못 얻었고 현재 크랜베리스는 공식 해체는 아니지만 2003년부터 별다른 활동이 없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으로 영화 중경상림의 OST로 많은 사랑을 받은 Dreams가 있고, Ode to My Family가 모 CF 음악으로 나와 인기를 얻었다. (뚜뚜루루 뚜뚜루루 하는 그 곡.) 그룹의 대표곡으로는 이 두 곡 외 Zombie, Linger 등을 들 수 있겠다. 90년대 주름잡던 아일랜드 출신 밴드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 사랑의 기류가 흐르기만 하면 나오는 노래 Ode to My Family, 북아일랜드에게 행해지는 핍박과 그로 인해 죽은 아이들을 위로 하는 노래 Zombie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3년에 해체 후 2007년도에 재결성한 이 밴드는 2019년 4월에 마지막 앨범 In the End를 발표한 후 앨범의 이름처럼 해산했다. 그룹의 여성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 (Dolores O'Riordan)이 2018년 런던 호텔 방에서 익사로 사망한 것이 해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호텔 방에서 뭘 어떻게 했길래 익사로 사망했는지 의문이 남는 죽음이었지만, 수많은 조사 끝에 알콜중독으로 인한 익사로 결론지어졌다.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주목받았던 요소는 보컬인 '돌로레스 오리어던' (Dolores O'Riordan)의 힘이 컸다. 말 그대로 그녀는 '크랜베리스'의 절대적 목소리였다. 느낄 수 있지만, 처음 들었던 당시를 회상하면 상당히 독특한 보컬이라 느꼈음을 기억한다. 목소리는 안개에 쌓인 듯 몽환적이었으며, 특히 음을 꺾는 창법이나 끝음을 처리하는 방식은 요들송과도 비슷하여 그 후에 나온 밴드나 여성 보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크랜베리스'의 데뷔 앨범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에 실린 'Dreams'이다. 우리에게 영화 '중경삼림' 사운드 트랙으로 친숙한 왕페이의 '몽중인'이 'Dreams'의 번안곡이다.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앨범은 아일랜드와 영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빌보드 200앨범 차트에선 18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몽중인'이나 'Dreams'란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you're a dream to me' 즉, 환상 속에 그대, 꿈결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영화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중경삼림'의 리뷰를 넌지시 링크해 보겠다. 영화보다 '크랜베리스'를 먼저 접한 아저씨 세대들에게는 당시 왕페이가 중국어로 부른 '몽중인'이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허나 지금은 많은 한국 관객과 리스너들에게 '크랜베리스'의 원곡이 더 어색할지 모른다. 왕페이는 배우이기 이전에 중화권에서 너무 유명한 가수였고, 영화의 엄청난 성공덕인지 번안곡 쪽이 더 많은 사랑을 받은 듯. 우려와는 다르게 실제로 곡의 분위기를 거의 완벽하게 재연해서 놀라웠다.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며 '왕페이'의 '몽중인'을 감상해도 괜찮을 듯 싶다. 하지만 오늘은 '돌로레스 오리어던'을 추억하며 'Dreams'를 들어야겠다. 영화의 유행과 젊은 시절의 추억이 아닌, 좋은 음악만으로 '크랜베리스'를 사랑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겠다. 오늘 소개할 음악은 아일랜드 얼터너티브 록 밴드 그룹 The Cranberries(크랜베리스)의 Dreams라는 곡이다. 멜로디가 굉장히 밝고 경쾌한 곡이다. 특히 리드 보컬을 맡고 있는 돌로레스 오리오던의 보이스가 꽤나 인상이다. The Cranberries(크랜베리스)는 아일랜드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1989년 데뷔해서 쭉 활동을 해오다가 2003년부터 활동을 중단, 그리고 2009년부터 다시 재결합하여 활동을 재개했다. 밴드의 리드 보컬 돌로레스 오리오던이 밴드 활동을 그만두고, 솔로로 전향할 것이다 라는 루머가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밴드가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되면서, 그 사이에 루머와 상관없이 음악에 대한 돌로레스 본인의 의지로 2007년 솔로 데뷔를 한다. 그리고 쭉 솔로로 활동을 하다가 안타깝게도 작년 2018년 돌연사 했다. 음악에 정치적인 색깔을 많이 띄던 이들은1933년 '링거', 1994년 '좀비' 등 전쟁을 그만두자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앨범을 발매했었다. 아일랜드와 전세계의 록, 팝 음악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외치던 그들의 업적을 기리며 The Cranberries(크랜베리스)의 Dreams 함께 감상해보겠다. 1993년 데뷔했던 4인조 그룹이지만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Released : 1993
처음엔 밴드명을
1993년과 1994에 각각 발매된
하지만 그 후에 발매된 앨범들은
크랜베리스 음악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선 남녀간에 이상한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가
지금 들으면 흔한 창법이라고
오늘 소개할 곡은
크랜베리즈의 독창성은
아무래도 돌로레스의
기묘한 목소리에 기인한다.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어린 시절 교회음악으로 다져진
복식호흡법의 가성에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목소리가 락과 만날 때,
기묘하고도 아름답고,
처절하면서도 카리스마적인
크랜베리즈가 된다.
그 '천상적'인 것과 가까운 목소리와
강렬한 락사운드의 부딪힘이
기묘하고도 독창적인
그 긴장의 순간,
불편하고도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을 건네줄 수 있었다.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 보컬)
1971년 9월 6일 아일랜드 리머릭 출생
노엘 호건(Noel Hogan, 기타)
1971년 12월 25일 아일랜드 리머릭 출생
마이크 호건(Mike Hogan, 베이스)
1973년 4월 29일 아일랜드 리머릭 출생
퍼걸 롤러(Fergal Lawler, 드럼)
갈래
켈틱 록(Celtic Rock), 팝 록(Pop Rock)
신비스러운 목소리 혹은
몽환적인 목소리라는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릴듯 한
'돌로레스 오리어던'을
전면에 내세운
아일랜드(Ireland)
리머릭(Limerick) 출신의
록 밴드 크랜베리스는
1989년에
리머릭 출신의
네 젊은이들에 의해서 결성된
'크랜베리 소 어스
(The Cranberry Saw Us)'라는
밴드로부터 출발하였다.
결성 당시의 멤버로는
'노엘 호건'과 '마이크 호건' 형제,
그리고 드러머인 '퍼걸 롤러'와
그들의 친구인
'나이올 퀸(Niall Quinn)'이었다.
밴드의 리드 보컬을 담당했던
나이올 퀸은
1990년 1월에 발표한
데모 EP 'Anything'을 발표하고
얼마 안 가
돌로레스 오리어던으로 교체되는데,
이는 나이올 퀸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밴드 멤버들이
여성 보컬리스트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밴드의 보컬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돌로레스 오리어던은
오디션에 응모할 당시
자신이 만든 곡으로 채워진
데모 테이프를 가지고 왔었는데
이 데모 테이프 속에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느낌의 'Linger' 초기 버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디션을 통해
보컬 능력을 확인한 멤버들은
데모 테이프를 들어본 후
즉각 그녀를 밴드의 보컬 주자로
고용하게 된다.
작곡 능력까지 겸비한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가입은
곧 바로 크랜베리 소 어스의
작은 성공으로 이어지게 된다.
신비스러운 느낌을 가진
목소리의 소유자인
돌로레스 오리어던을 합류시킨 후
크랜베리 소 어스는
그녀가 가지고 온
데모 테이프 속에 들어 있던 곡인
'Linger'를 다듬어서
자주 제작 형식으로
300장의 테이프를
시험 삼아 제작하여
1990년 8월에 발표하였다.
매진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반응을 기대하며
제작한 이 테이프는
예상 외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지며
크랜베리 소 어스에게
성공 가능성을 열어 주게 된다.
300장만이 제작된
이들의 비공식 데뷔 테이프는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팔려 나가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어 모았던 것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크랜베리 소 어스는
음반 계약을 따내기 위한
데모 테이프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밴드의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게
크랜베리스로 짧게 바꾸게 된다.
크랜베리스는
새로운 데모 테이프 제작을 위해
'제릭 스튜디오(Xeric studios)'를
빌리게 되는데
이 녹음실은 후일 자신들의
매니저가 되는
'피어스 길모어(Pearse Gilmore)'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크랜베리스는
제릭 스튜디오에서
두 곡을 녹음하여
데모 테이프로 만들었는데
그 두 곡이 바로
'Linger'와 'Dreams'였다.
조금은 덜 다듬어진
초기 버전의 이 두 곡이 담긴
데모 테이프가
영국 내의 주요 음반사에
배포되기 시작하면서
기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장래가 불투명한
신생 밴드의 데모 테이프를 두고
입찰 경쟁이 벌어질 정도의
영입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크랜베리스는
데모 테이프를
주요 음반사에 부친 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피어스 길모어와 함께
제릭 스튜디오로 들어가
그의 지휘 아래
자주 제작이 아닌
공식 데뷔 EP인
'Uncertain'을 녹음하여
1991년 10월 28일에 발표하였다.
네 곡이 수록된 데뷔 EP는
5천장 한정 발매되었지만
제목 때문인지
'불확실한(Uncertain)' 평가를 얻는데
그치며
실패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결국 데뷔 EP의 실패로
피어스 길모어와 결별한
크랜베리스는
1992년에 '아일랜드 음반사
(Island Records)'와
최종 계약하고
새 매니저 '제프 트래비스
(Geoff Travis)'와 함께
데뷔 음반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크랜베리스는
데뷔 음반 발매를 앞둔
1993년 2월에 데뷔
싱글 'Linger'를 먼저 발표하였다.
초기 버전과 달리
현악기를 삽입한
이곡은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위까지 진출하는
커다란 성공을
크랜베리스에게 안겨 주었다.
데뷔 싱글을 성공시킨
크랜베리스는
1993년 3월 1일에
데뷔 음반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를
발표하게 된다.
이 음반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Dreams'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곡은 데뷔 싱글인
'Linger'와 함께
싱글로 발표되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던 곡이다.
하지만 크랜베리스가
1994년에 열린
'우드스탁 리바이벌 페스티벌
(Woodstock Revival Festival)' 무대에서
이곡을 불러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내게 되자
묻혀 있던 이곡이
재조명 받기에 이른다.
결국 1994년 5월에
싱글로 재발매된 'Dreams'는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2위까지 진출하였으며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27위까지 진출하였고
자신들의 모국인
아일랜드 싱글 차트에서는
9위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였다.
신비스러운 느낌의 켈틱 포크와
록이 결합한 이곡은
우리나라에서 크랜베리스를
대표하는 곡으로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패니즈 브렉퍼스트
웡페이
자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