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522) –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어느새 12월, 그 첫날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풍요의 들판이 쓸쓸하고 찬바람 속 새떼의 날개 짓이 허허롭다. 피를 나눈 동생의 가쁜 숨결이 가족들의 삶을 연단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촛불의 물결이 희망의 불꽃으로 다가선다. 한 해를 보내는 세모의 달, 거스를 수 없는 물결에 휩싸인 구시대를 청산하고 국민주권의 새 시대에 적합한 배를 준비하자.
추수 끝난 김제 들녁, 내년이면 새로운 이삭들이 열매 맺으리라
뇌경색 2차 쇼크로 혼수상태인 동생은 종합병원에서 긴박한 3주간을 보내고 조카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이를 맞은 조카의 말이 가슴 뭉클하다. ‘아버지, 어서 오세요. 제가 잘 치료해드릴께요.’ 아무렴, 잘 치료하여 쾌차하기를! 제수가 여동생에게 보낸 글, ‘어제 분당에서 퇴원하여 아들 병원으로 모셨어요. 병실의 다른 환자들 의식이 성치 않은지 잠에 빠져 있었어요. 오빠가 거기에 합류해 계신 것이 가슴 찢어지는 일, 원죄를 빼고는 아기 같으신 오빠께 너무 혹독한 현실을 부여하신 그분을 간혹 원망도 해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훌쩍 떠나보내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좀 더 오래 남게 해주신데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광주 오빠께서 퇴원을 같이 해주셨어요. 나 혼자 구급차에 앉아 있는 것보다 마음이 훨씬 안정적이었어요. 참 고마우신 형이십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자매들 모두도요.’ 입, 퇴원 수속을 마친 제수에게 보낸 메시지, ‘수고하셨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침착하고 꿋꿋한 모습에 찬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 잘 견디고 승리하십시다!‘
우리는 10남매, 형제자매뿐 아니라 사촌들까지 가문의 특장인 화목과 우애가 돈독하다. 경험한 분들은 이해하겠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남매간의 염려와 사랑이 더 진하다. 그런대도 막상 위급한 형편을 벗어나게 해 줄 힘이 없는 무력과 상실감이 크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동생이 은퇴 후에 가문의 카페에 올린 글과 외국여행 할 때 동생에게 쓴 편지들을 정리하여 한 묶음으로 엮었다. 동생이 의식을 되찾아 이를 살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5년 전, 어머니가 폐렴과 장염으로 여러 차례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을 때 우리 남매는 간병하는 틈틈이 어머니를 향한 사모의 글을 써서 이를 책자로 만들었다. 그 공력인가, 어머니는 지금까지 시가와 친가를 통틀어 최장수 삶을 누리신다. 조카도 이를 수긍하며 아버지를 기리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동생이여, 온가족의 염원을 받아 떨쳐 일어나라. 다시 행복한 날들로 나아가자!
몇 년 전 동생이 입원하였을 때 쓴 글을 덧붙인다.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 서울대학병원을 다녀와서
어제(2월 16일), 동생의 수술이 이뤄진 서울대학병원에 다녀왔다. 가족들의 기도와 의료진의 노고로 수술은 잘 끝났고 다음 주 화요일(2월 21일) 쯤에 퇴원예정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고 감찰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수술 전에 찬송과 기도로 힘을 보태기 위해 아침 일찍 광주를 출발하여 서울대학병원에 도착하니 12시가 가깝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누님 일행을 만났다. 교회 목사님이 동생의 수술이 있어 병원에 간다니 동행한 길이란다. 든든한 하나님의 종이 먼저 다녀갔으니 오늘 수술이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병실에 들어서니 동생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침대에 앉아 있다. 제수와 조카, 여동생이 함께 있다가 맞아준다. 아무렴, 친가족보다 더한 사랑의 손길이 있을까? 잠시 환담을 나누고 찬송과 기도를 드렸다. 부른 찬송은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옛 찬송가 432장), 이어서 이 찬송의 근거가 되는 시편 91편 말씀을 살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권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마침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읽은 잡지에서 적절한 글들을 살폈기에 이를 덧붙여 읽었다.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언 15장 23절)
'암과의 싸움에서 회복한 사람들은 진정 살아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치게 된다. 삶의 의미를 알기에, 살아가는 이유를 알기에 나는 암에서 회복한 사람들을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 '행복한 동행 3월호, 가장 성공한 사람'
'사람들이 자주 놀라는 것은 아픈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주 슬프고 외로운 것도 아픈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또 다른 아픔입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일어나고 그러면서 날마다 걸어가고 그러다가 어느 날은 웃게 됩니다.' - '좋은 생각 3월호 권두 시, 인생'
오후 2시 넘어 수술실로 향하였다. 제수, 조카와 함께 수술실 입구까지 따라간 후 보호자실에서 기다리니 잠시 뒤 수술중인 자 명단에 동생이름이 오른다. 오후 5시쯤 조카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아빠 수술 잘 마치고 회복실에 계세요.' 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6시경에 병실로 돌아왔는데 모든 것이 잘 진행되어 만족한 상태라며 밝은 음성이다. 병실의 아주머니 왈, 수많은 수술환자를 지켜봤는데 병실로 돌아오는 환자 중 이처럼 밝게 웃는 이는 처음이란다.
광주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12시까지 졸리더라도 잠을 자지 말라고 당부한 의료진의 말을 따라 동생도 아직 잠을 자지 않으려니 생각하며 이 밤을 잘 보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전화를 거니 동생이 직접 받는다. 12시 이후에 잠을 잤는데 통증도 심하지 않고 가래가 끓지 않아 견디기 수월하다며 차분한 음성이다.
나는 1962년 3월 29일, 서울대학병원에서 첫 공무원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50년 세월이 지나 서울대학병원을 찾는 감회가 별다르다. 일하던 첫해던가, 건강검진을 받으니 별다른 이상은 없고 충치가 두 개 있다고 한다. 즉시로 땜질을 하여서인지 지금까지 건치로 지내니 감사한 일이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 가족들은 서울대학병원과 좋은 인연을 이어왔다. 취업하던 그 해, 만성적으로 배 아파하시던 어머니를 모셔 진찰하니 십이지장궤양이라고 진단하여 한 달 간 약을 복용하고 나았다. 그 이듬해, 막내 동생이 관절염 증세로 입원하여 석고보드를 차고 치료를 받는 고충을 이겨냈다.
1971년 11월, 셋째누님은 생명이 오가는 큰 위기를 이곳에서 무사히 넘겼다. 누님의 치료과정은 극적이었다. 의식을 잃은 누님을 택시에 싣고 오류동에서 서울대학병원까지 가던 그 길은 얼마나 멀고 가슴 조였던가. 가까스로 응급실에 도착하여 긴급처치를 한 후 회복실로 옮겨졌다. 입원실은 잡았는데 언제 병실에 올는지 기약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주말이 다가왔다. 주말에는 수술이 없어 회복실에 다른 환자는 없고 누님만 누워 있으니 의료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터.
텅 빈 병실에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성경에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그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애원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러던 중 금요일 오후, 회복실에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그 환자는 당시 병원장의 아버지로 얼마 전 중풍으로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였는데 상태가 위중하여 다시 입원한 것이다.
회복실의 주치의인 마취과장과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다가 옆에 있는 누님도 살피게 되었다. 처방인즉 병원에는 없는 치료제를 밖에서 구해 오라는 것이었다. 미군부대에서 나온다는 알부민을 구하여 처치하는 등의 치료가 효험을 보았는가, 다음 화요일 쯤 의식을 회복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말대로 의식을 되찾은 누님은 급속도로 병세가 나아져 수일 후 퇴원하였다. 그때 나는 체험하였다. 치유의 기적은 이처럼 뜻밖의 손길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을.
오늘 읽은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언 17장 17절) 동생은 가족들이 곁에 있어 수술실에 가는 길이 편안하였노라고 술회하였다. 사랑하는 동생이여,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간곡한 염원으로 깨끗하게 나아서 더욱 건강한 삶을 누리라.(2012. 2. 17)
첫댓글 그간 많은 일들이 있으셨군요. 동생분께서 무사히 수술을 마치셨다니 이제 회복되시기만 기대하면 되겠네요. 기분 좋은 소식 감사해요^^그런데 교수님은 10남매중 몇 번째 자녀이신가요? ㅋㅋ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