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문집원고 (돈에 대한 단상 수정 합니다)

[윤여희]

돈에 대한 단상

윤여희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식사 후 산책을 다녀오는데 상담이 필요하다는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형제 자매 만큼 친하게 지내던 이웃 사촌이다. 서울에 사는 아들이 이혼하게 되어 어린 손녀를 돌보러 서울에 거처를 옮긴 후 가끔씩 안부를 전해 주는 분이다. 엄마 없이 자라는 손녀를 양육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재혼한 며느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전해 주신다.

“신문 봤어 우리 아들 회사 팔아서 세금을 1800억이나 냈어”

“우리 집에 수입차도 많잖아”

“집에 무슨 일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지, 청소 해주는 사람. 살림 도와주는 사람, 아이 돌봐 주는 사람”

자랑인지 불평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물질은 풍요롭지만 청주에서 텃밭 가꾸며 살던 때가 그립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다. 몇 번의 실패 후에 아들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검소하게 살아가는 한결같음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경제적 여유를 향유하지 못함이 안타깝기도 하다.

제주에서 남편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자수성가 하신 분으로 지역 사회에 거액을 기부하고 주위 사람들도 세심하게 잘 챙기시는 멋진 분이다. 약주를 한잔 하시자“형님 나 벤틀리 샀어요. 무려 일 년이나 기다렸어요. 그리고 서울에 꼬마 빌딩도 샀어요” 옆에서 듣던 그의 부인이 자랑 그만하라며 옆구리를 찌른다. 축하해주고 돌아서는데 영화 베테랑에서 서도철 형사의 대사“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가 생각난다. 열심히 벌어서 보람있게 쓰는 호방한 그분에게 부러움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뉴스는 부동산 가격과 주식시황, 비트코인 등 온통 경제 관련 소식으로 도배를 한다. 모임에서 지인들과 부자의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내 돈으로 비즈니스 항공권을 살 수 있으면 부자라는 친구도 있고, 사고 싶은 물건의 가격표를 보지않고 살 수 있으면 부자라고 했다. 어느 의사는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리 더 이상 투자하지 않고 재산을 지키겠다고 결심하면 부자라고 했다. 내가 어린 시절엔 억대 재벌이라고 했는데 서울엔 집 한 채가 10억이 넘는다. 전문가에 의하면 60세에 은퇴하여 30년을 생존한다고 가정할 때 한 달 부부 생활비 삼백만원씩 10억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자율과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수치라니 나의 노후도 불안함이 밀려온다.

1960년도 우리나라 국민 소득은 94달러였는데 2020년도 국민소득은 3만 5천 달러가 넘었다. 소득이 높아진 만큼 우리의 행복 지수도 높아졌을까?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돈이지만 일정 소득 이상이면 돈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돈에 집착한다고 심리학자는 말한다. 돈으로 시간과 편리함을 살 수는 있어도 행복까지는 살 수 없음에도 돈에 대한 열망은 멈추기 어려운 것 같다.

돈은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한 경험을 위해 정직하게 벌어야 한다. 소유의 기쁨은 잠시이지만 즐거운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되기 때문이란다. 언제 행복하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사람과 이야기하며 걷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나의 생애에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벤트가 무엇이었던가 회상해보았다. 낳으시고 가르쳐 주시고 언제라도 지지해주시는 부모님과 무탈하게 잘 살아준 동생들 부부 10명이 나의 환갑에 품격있는 2박 3일 맛집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전국민의 발이 묶인 시점에서 가족 행사때마다 태백의 한우, 부산 광안리의 전망 좋은 횟집, 광양 불고기. 경주의 고급 한옥 식당 등 여행의 추억을 반추하는 재미가 새록새록 하다. 여행 사진을 꺼내 보는 것이 일상의 즐거움인 친정엄마는 목돈을 기꺼이 여행 경비로 내준 남편에게 두고두고 고마워하신다. 돈은 버는 것보다 알뜰하게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다. 나만을 위한 명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돈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