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61:1~2)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대명제 앞에 나는 비통하리만큼 곤혹한 자로 서 있다. 누가 선교사이며, 누가 예수의 제자란 말인가? 무엇을,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 크지 않은 홀에서 파란 가운의 최수복을 입은 200여명의 수감자가 초췌한 모습으로, 그러나 무엇인가 영혼의 것을 갈망하는 눈으로 않아 있다. 이곳은 모스크바에서 180 필로 떠러진 KEON 감옥이다. 대부분 종신형을 받고 차가운 철장위로 굳게 닫혀버린 제한된 공간에서 변화 없는 지루함을 먹으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 엄청난 무료함의 날들속에 1년 전부터 시작된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가까운 교회의 침례교 목사가 이곳을 방문하기 시작한 일이다. 70년 동안 무신론을 주장하며 하나님이 망각된 이 차가운 감옥에도 드디어 성령의 따뜻한 역사가 일기 시작하였다. 나눠주는 성경을 읽고 또 읽는 저들의 가슴속에 죽음보다 더 싫은 지루함을 깨뜨리며 희망과 활기를 주는 놀라운 삶이 시작되었으며, 6개월 전에는 이 감옥 한동의 3층에 기도실을
만들도록 감옥 행동부가 허락해줘서 자신둘의 손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조그마한 기도실도 있다. 거의 모든 수감자가 심한 독감에 고생하면서도 의약품이 없어서 고통 당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감기약 3만정을 사서 쪽복음서와 함께 전달하였다.
빨려들듯 전달되는 예수의 복음에 몇달 전 이 수감자들 가운데 5명의 세례교인이 생겼다.
1991년 5월 1일, 모스크바 광장의"메이데이 퍼레이드",때, 70여년만에 최대의 반정부 시민데모가 발생하였다. 저들이 들고나온 피켓 가운데 우리는 수많은 다음의 내용을 볼 수 있었다 : "예수는 살아나셨다!" 그렇다. 오랫동안 공산주의와 무신론으로 점령되었고 노략당한 이 땅에 살아계신 예수께서 저들을 풀어 자유케 하시기 시작하였다. 1991년 8월 19일∼21일간의 3일 구테타로 사탄이 러시아을 재차 착고에 채우려 했으나 이미 시작된 예수의 복음과 자유는 막을 길이 없었다. 이제 러시아 전역에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러시아을 다녀가는 크리스챤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곳은 참으로 놀라운 영적 황금어장이라는 것이며 성경과 성령을 갈망하는 저들의 눈을 대하면서 감격의 눈물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러시아은 엄청난 가능성의 나라이다. 저들의 긴 문화유산이 있으며 신앙의 뿌리가 그루터기처럼 살아 있고 거대한 영토위에 풍성한 인적 물적 자원이 있는 나라이다. 70년 동안 창조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했던 제도적 감옥속에서 살았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인간성은 비교적 순진하고 매우 감상적이어서 선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매우 비옥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다. 조그만 위로해주면 눈물을 흘리며, 따뜻한 입김의 말로 차가운 언어들을 대신해주면 어느새 저들은 감격하고마는 매우 단순하고 정감있는 사람들, 매우 쪼들리는 경제적 난항을 허찌 지탱해야 하는지 모르며 불안해하는 저들에게 "주는 자"가 아닌 "나누는 자"로 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저들의 가슴을 예수로 정복할 수 있으리라.
선교란 무엇인가? 은혜를 베푸는 자가 아닌 삶을 나누는 자. 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33년을 인생 가운데 사셨어야만 하였나? 하나님으로서 얼마든지 우리를 구할 수 없었는가? 아-선교사들이 모두 예수의 마음을 품을 수만 있다면!
1) 언어소통의 문제-선교사의 러시아어의 학습은 너무나 절실하다. 현재 선교사들마다 통역관을 두고 사역을 하는 실정이지만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려인이든 러시아인이든 전혀 한국말에는 익숙치 못하다는 이곳 형편은 우리 선교사들이 자체적으로 언어를 익히도록 몰아넣고 있다. 가능한 한 현지어를 공부한 적어도 영어를 습득한 선교사를 파송함이 더욱 효과적인 선교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2) 기본적인 생필품의 부재-텅빈 국고, 텅빈 경제, 기본적 생필품의 공급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러시아, 파, 마늘, 밀가루 등등의 기본식품에서부터 전구, 옷, 수도꼭지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부재상태인 이곳에서 오늘도 고장난 FAX를 고쳐줄 사람을 한 달쯤 찾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3) 지도자 양서의 시급성-70년간 종교탄입의 형태 중 가장 혹독한 것은 지도자 양성의 길을 끊어버린 거이다. 신학교의 폐교, 주일학교 폐지, 교계 지도자들의 숙청및 박해 등으로 인하여 후세대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점차 사라졌다. 이제 한국교회의 러시아선교가 당면한 최대과제는 러시아교회를 이끌어갈 현지인 지도자 양성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교회가 한국교회와 협력하여 지도자 교육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한 사람당 30불이면 한 달 동안 교육시킬 수 있다. 현재 600명으로 3년간 계획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 한국 성결교의 대거 참여가 있기를 바란다.
4) 비성서적 선교정책-이곳의 교회들 간에 몇몇 교회는 "받으러 가는 교회", "먹으러 가는 교회"로 통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많은 교인을 보여주어 파송단체나 교단에게 양적 실적을 보여주려는 굴절된 선교사들의 성공관은 비단 섬교사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리라. 구령을 목적으로 인내하며 눈물 흘리며 씨뿌리고 춧숫때까지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 결여된 오늘날 러시아 선교사들을 보면서-나를 포함해서 너무나 아파하실 그리스도의 가슴이 느껴지능 듯하다. 선교사와 파송단체가 다같이 예수의 인내와 기도를 배울 수만 있다면.
1) 교회개척및 선교사 파송-현재 모스크바에 10교회, 알마다에 8교회, 타쉬켄트에 8교회, 하바롭스크, 사할린,비쉬케크,블라디보스톡 등지에 3-4교회들,레닌그라드에 1교회 등등 러시아 전역에 한인 교회들이 그 복음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 교단 교회들 가운데서 타쉬켄ㅌ와 알마타에 교회들을, 그리고 모스크바에 선교센터를 추진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 현재 나는 언제라도 파송해 주기만 하면 교회로 시작할수 있는 곳으로 4곳을 확보하고 있다.
2) 현지인 평신도지도자 양육-단계적이며 조직적인 양욱훈련이 필요하며 러시아교회와 공동으로 도모해야 한다. 이미 문제점 가운데 3) 항에서 언급한 대로 지도자를 많이 배출해 내야함은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뿐 아니라 그중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하여 한국으로 초청하여 신학과 언어훈련을 필하게 하고 선교사로 파송하여 자신의 지역선교를 담당케 하는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한인뿐 아니라 영어소통이 가능한 러시아인들은 각 공화국별로 몇몇씩 초청한다면 각 공화국에서 선교활동에 막대한 도움과 복음확산의 속도를 가속화시킬수 있을 듯하다.
3) 의료와 구제선교-현재 러시아전역에는 의약품의 기근이 들었다. 극히 단순한 감기약이나 위장약 붕대 등이 동난 상태이다. 주사기가 부족하여 아주 심한 중환자들에게 우선 주사하고 있다. 만일 한국교회가 의약품이나 기기를 보내주면서 선교한다면 저들은-모슬렘 공화국들도 마찬가지다-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며 사회가 줄수 있는 모든 특권을 베풀어준다. 현재 모스크바의 몇몇 한인 교회들은 한국과 미국에서부터 많은 양의 의료, 구제품들을 받아 선교함으로 매우 큰 혜택을 누리며 선교의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나도 극히 미비하기는 하지만 꾸준히 의약품들을 구입하여 성경과 함께, 전도지었다. 복음 전파에 매우 큰 효과가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4) 방송및 문서선교-나는 알마타의 "키작스탄 라디오방송국"을 그곳 러시아교회연맹의 회장이신 고렐로브 목사님과 함께 찾아가서 1년 동안 기독교 방송을-한 주에 30 분: 15분은 러시아어, 15분은 한국어로-하도록 계악하고 대금을 지불하였다. 이미 2달째 방송이 나가고 있다.
얼마전 러시아교회의 성경협회 "프로테스탄트"공회가 나를 초청하여 그곳 디레터와 임ㅇㄷ들을 만나고 성서공회를 둘러 보았다. 저들은 자신들의 낡은 인쇄기가 아제는 거의 작동하지 못한다는 내용과 함께 한국교회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우리의 도움으로 저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넉넉히 공급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5) 사회사업 선교-감옥, 고아원, 양로원 등에 대한 선교도 매우 환영받는 선교정책의 하나이다. 특별히 한국에서 얼마간 사용되었던 구호물자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큰 역활을 하는지 모른다. 또한 대학에 대한 선교는 조그마한 Computer나 도움을 계기로 크게 확산될 수 있다. 몇몇 모스크바의 대학은 만일 몇대의 쓰던 Computer라도 제공하면 학교에서 성경공부반을 열어주고 사무실도 제공하겠다고 한다.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예수의 혁명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6) 모스크바 선교센터의 건립-러시아선교의 기지역활을 담당할 선교센터로 모스크바 건설부 차관인 레신 차관의 명의로 된 모스크바에 있는 10,000평(8에이크)의 대지를 기증받았으며 연건평 1,500평 규모의 5층 선교센터와 1,100평 규모의 교회당 건립을 추진중이다. 이에 필요한 건축비는 약 2억원으로 부평제일교회(당회장 강신창 목사:해외선교위원장)가 담당한다. 모스크바 선교센터는 선교본부,문화센터, 신학교 등으로 활용될 것이며 교회당은 러시아인 집회장소로 제공될 것이다.
7) 병원설립-서방유럽과 동구권에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리트비아 공화국의 리가 도시에 병원과 선교원을 설립하여 선교의 접촉접을 마련한다.
I. 일반사항 1.국명통칭 : 러시아연방/ Russian Federation 2.공식국명 : Russian Federation 또는 Russia 3.수 도 : 모스크바(Moscow) 4.면 적 : 17,075,400 제곱킬로미터 (한반도의 77배, 카나다의 25배) 5.인 구 : 148.4백만명 (94년도) (구소련 총 인구의 52%)5-1. 개요
5-2. 수도인구: 모스크바 8,793천명(94년)
5-3. 주요 도시별 인구
상트.페테르부르크 5,035천명 니즈니 노브고로드 1,425천명 노보시비르스크 1,418천명 사마라 1,223천명 옴스크 1,161천명 첼랴빈스크 1,125천명 카잔 1,092천명 우파 1,092천명 페름 1,086천명 로스토브-나-돈누 1,023천명 볼고그라드 1,000천명 6.인구증가율 : 90년 2.2%, 91년 0.2% 93년 -0.2% 7.인구밀도 : 8.7명/Km (90년) 8.종 족 : 150개 민족 공존. 100천명이 넘는 민족은 32족. 8-1. 종족별 인구 구성 비율 러시아인 85% 타타르인 3.8% 우크라이나인 3.0% 츄바쉬야인 1.2% 바쉬카리야인 0.9% 벨라루스인 0.8% 몰다비야인 0.8% 체첸인 0.6% 독일인 0.6% 8-2. 각종족의 기질 특징 및 자체 공동체 형성 등 ㅇ 러시아인 - 기질은 평화적 - 시작은 느리나 강한 인내심, 강한 친화력 - 여러 종족 중 체격이 가장 크고 모발은 다갈색 및 금색. 이혼율이 높음 (60%) ㅇ 타타르인 - 기질은 비교적 적극적 - 순수혈통유지 선호 - 체구는 작은 편이고 날씬함 - 자기네끼리 모여삶. ㅇ 우크라이나인 - 기질은 유화적, 열정적, 외향적 - 체구는 러시아인과 유사하나 흑발이 대다수 ㅇ 체첸인 - 기질은 공격적 호전적 - 순수혈통유지 선호 - 체구는 작으나 털이 많고 모발은 적갈색 - 자기네끼리 모여삶8-3. 종족간의 대립관계
9.언어
ㅇ 공용어 및 상용어: 러시아어
ㅇ 최근추세 : 각공화국 및 자치지역의 주권강화와 소수민족의 고유성강조로 인해 지방공화국에서는 자기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추세가 확대되고있음
ㅇ 소수민족의 러시아어 구사능력엔 전혀 문제없음. 다만 사투리와 악센트가 다름
10.종교
ㅇ 종 파 - 러시아정교 5천만명 - 이슬람교 2천만명 - 기타 카톨릭, 유태교, 불교 등 다수 종교 ㅇ 종교인증가 : 최근 자유화물결과 함께 종교인수 급증 추세 ㅇ 종교, 종파간의 갈등 및 유대관계 - 러시아정교는 극히 배타적형식 고수로 타종파 경시 - 이슬람교는 철저한 교조주의적 성격으로 폐쇄적 따라서 종교간의 갈등 존재11.국제공항
ㅇ 러시아 최대 공항은 Shermetivo-2 공항으로 러시아로 오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AEROFLOT 또는 KAL) 공항
- 짐을 분실하는 경우가 많아 조심해야하고 통관에 장시간 소요
- 갖고있는 돈을 정확히 신고치않으면 출국시 문제가 발생
- 입국시에는 물품반입에 특별한 규제가 없으나 출국시엔 규제가 심함 (그림, 책자, 골동품 반출시엔 특별허가 필요)
- 특히 저녁땐 승객 및 출영객으로 초만원을 이루고있어 소지품 분실 우려가 많으므로 요주의
- 도심으로 들어가는 교통편은 택시, 뻐스, 렌트카 등이 있으나 택시는 반드시 공항내에 써비스센타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탑승하는것이 신변에 안전함.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를 타면 지극히 위험함
ㅇ 특히 경유지 공항의 경우 초행길의 출장객은 비행기의 이착륙 시간이 무질서하게 변경되는 경우가 많아 경우에따라서는 몇시간 내지 수십시간 기다려야하므로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비해야함 (예컨데시내와의 계속적 연락. 화장실 대비, 식사문제 대비, 수화물 조심,항공스케줄 완전 취소, 시내로 들어가는 경우의 안전한 교통편 등)
ㅇ 입국시 $500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RED GATE에서 신고를 해야함.
12.국제항구
ㅇ 주요항구 : 보스토니치항, 나흐트카항, 뻬쩨르부르그항, 노보시비르 스크항 (흑해연안), 무르만스크항, 아르항겔스크항, 칼리닌그라드항, 블라디보스톡항 등
ㅇ 한국 수출품 통과와 환적이 많은 항구
- 보스토니치항과 나흐트카항이며 체화가 극심하여 하역에 1-2개월이 소요되며 따라서 타항구이용도 고려해 볼만함
- 그러나 95년초들어 항만내 적체현상이 많이 개선되었으며 극동항을 이용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사용한 화물운송이 가장 빠른 노선으로 재등장.
13.도 량 형 : 미터법. 무게는 Kg
14.전기규격 : Hz-50. Voltage-220 Volt
15.기 후 : 북의 동토지대, 남의 툰드라, 산림지대 등 전 영토에 다양한 기후대
ㅇ 계절별 지역별 최고 최저 기온
- 베르호얀스크는 여름엔 34도, 겨울엔 영하 68도, 모스크바는 여름엔 17도-35도, 겨울엔 영하 17도-30도 (월별 평균 기온은 1월 영하 9.9도, 2월 영하 9.5도, 3월 영하 4.2도, 4월 영상 4.7도, 5월 영상 11.9도, 6월 영상 16.8도, 7월 19도, 8월 17.1도, 9월 11.2도, 10월4.5도, 11월 영하 1.9도, 12월 영하 6.8도)
ㅇ 기후 특성
-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로 한난의 차가 극심하고 기온의 변화가 심함.구름이 끼고 흐린날이 많으며 비나 눈은 심하게 오질 않고 계속조금씩 내림
ㅇ 강우량과 습도
- 모스크바의 경우 연평균강우량은 575mm (월평균 48mm, 5월-8월에 비가 많이 오나 폭우는 거의 없고 조금씩 계속 내림)이고, 습기는 많지 않음. 극동의 하바로브스크의 경우에는 특히 6월부터 시작하여 7월 8월 9월에 비가 많이 오고 습함. (각각 102mm, 115mm, 87mm)
ㅇ 풍 토 병
- 풍토병은 아니나 수질이 나빠 좋은 치아를 가진 사람들이 드뭄. 모스크바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 풍토병이 많음. 예컨데 스타브로플지역의 야토병, 카레리아지역의 카레리아열병, 크리미아지역의 크리미아출혈열, 타이가지역의 엘세파라티스열병 등
16.화폐단위 : 루블(Ruble)
ㅇ 지 폐 : 5만루블, 1만루블, 5천루블, 5백루블, 200루블, 100루블,
ㅇ 주 화 : 50루블, 10루블, 5루블, 3루블, 1루블
17.환율 : 변동환율제
ㅇ 모스크바 외환거래소(MICE)의 거래환율을 기준으로 하여 중앙은행이 매일 기준 환율 고시
ㅇ '95.6.14일 현재 $1 = R4,832
루불화의 대미달러 환율변동추이 ------------------------------ 단위 : 루불/$1 ------------------------------------------------------ 일자 94.5.31 10.3 12.13 95.2.1 5.4 6.14 ------------------------------------------------------ 환율 1,916 2,645 3,261 4,048 5,100 4,836 ------------------------------------------------------ 주) 94년 10월 11일 BLACK THUSDAY (루불화의 급락) 95년 들어 루불화는 안정세 시현 18.시차 ㅇ '93.11.15 Winter Time 현재 ㅇ GMT + 2시간 ㅇ KST - 6시간(한국의 정오 12시는 모스크바 오전 6시) ㅇ 하절기에는 Summer Time실시로 모스크바-서울간 시차는 5시간임 19.근무시간 ㅇ 일반 사무실(관청 포함) : 09:00-18:00 - 토요일은 완전 휴무 - 점심시간은 12:30-2:00 - 금요일은 오후만 되면 업무가 거의 정지 ㅇ 은행개점시간 : 09:30-12:00 (대민 써비스) - 환전소 : 09:30 - 18:00 - 호텔 소재 환전소의 경우 24시간 영업 ㅇ 일반상점 : 09:00-18:00 - 점심시간은 보통 14:00 - 15:00 - 24시간 영업하는 수퍼마켓도 있음. ㅇ Kiosk : 08:00-24:00 ㅇ 외화상점 : 10:00-20:00 ㅇ 식 당 : 11:00-23:00 ㅇ 지 하 철 : 05:30-01:00 20.공휴일 신정 1.1-2 크리스마스 1. 7 군인의 날 2.23 세계여성의 날 3. 8 노동절 5.1-2 독립절 6.12 승전일 5.9 혁명기념일 11.7 헌법의 날 12.1221. 국제기구 가입현황
II. 정치. 행정. 외교
1. 약사
가.고대사
1) 동스라브족의 국가 형성
ㅇ 소련의 핵심을 이루는 동스라브족의 국가가 형성된 것은 9세기 후반 (862년)
ㅇ 노르만인이 러시아를 침입하자 이것을 계기로 바란지아인의 수장 "루릭"의 후계자 올레그에 의해 "키예프 공국" (일명 키예프.루스)이 형성됨 (882년)
ㅇ 키예프.루스는 이후 350년간 지속되었고 11세기로 들어오면서 비잔틴문화를 꽃피웠으나 블라지미르 대공 사후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여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1237-1480) 200년 이상 타타 르인의 지배하에 들어감.
ㅇ 유리.돌고루키의 재임시 주변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모스크바 형성
ㅇ 그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의해 동스라브족은 러시아인, 백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의 세민족으로 분열됨
2) 모스크바공국의 부흥
ㅇ 이반 3세 때에 타타르를 멸망시켜 독립을 회복하여 권력을 강화 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토지소유제나 농노제의 기초가 되는 포메스티에 (Pomeste)를 도입하고 모스크바에 크레므린을 건축함.
ㅇ 그의 손자인 이반 4세 (1530-84)는 카잔타타르를 점령하고 1552년)아스트라한을 병합하여 (1556년) 모스크바공국의 영토는 북쪽으로 북극해에서 남쪽은 카스피해, 동쪽은 시베리아 한국까지 비약적으로 확대됨. 이반 4세는 러시아 최초의 황제(차르)가 되고 중앙집권화 정책을 시작하여 러시아를 광대하고 통일된 국가로 발전시킴.
나.중세사
1) 로마노프왕조의 탄생 (제정러시아)
ㅇ 귀족들의 소요에 대응한 이반 4세의 공포정치 후 그의 아들인 표도르(Fyodor)의 처남인 보리스.고두노프의 동난의 시대 (내부의 기근과 농민반란, 폴란드군의 침입)를 거처 루릭왕조의 혈통이 끊어짐.
ㅇ 폴란드군이 항복하고 모스크바가 해방되자 1613년에 소집된 국민 대표회의 (젬스키.소보르)에 의하여 미하일. 로마노프(Mikhail Romanov)가 즉위하면서 로마노프왕조 시작
ㅇ 로마노프왕조는 법전을 제정하고 신분을 정했으며 농노제를 승인하여 중앙집권을 강화. 형식적으로는 전국의회가 소집되었지만러시아정교회의 제정일치인 황제독재로써 국력을 키워 외세에 대항
ㅇ 결국 발트해에 진출하려는 작전은 실패했으나 코사크의 수령 보고단 포메리츠키의 폴란드에 대한 봉기를 지원하며 오랜 전쟁끝에 겨우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소러시아)를 획득하는데 성공함. 이렇게 하여 키예프는 400년만에 러시아에 항복하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의 병합 이며 이후로 러시아제국은 다민족국가의 길을 걷게됨.
ㅇ 한편으로 오랜 전쟁은 국민생활을 압박하여 인심이 불안정했음.그 중에서도 돈강 하류의 하층 코사크(cossaeks)는 무거운 세금과 유입된 도망농민의 증가로 인한 토지부족으로 생활이 곤궁해져 1667년 봄 스테판. 라진을 앞세우고 반란을 일으킴. 한때에는 모스크바까지 밀려올 기세였지만 1670년 가을 서구식 장비를 갗춘 정부군에게 패하고 이어서 코사크 상층부의 배신에 의해 실패했음.결국 주모자인 라진은 지금의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수족절단령에 처해짐.
2) 표트르대제와 상트.페테스부르그
ㅇ 러시아의 근대화에 가장 공이 컸던 사람은 표트르 대제 (1672-1725)임. 표트르대제는 유럽 선진국의 제도나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대대적인 개혁사업에 착수했음. 원로원의 설치, 세제의 개혁, 14등급의 관제 제정, 교회의 권리제한, 학교의신설, 문자의 개발, 많은 국영공장의 설립, 해군의 창설, 과학아카데미의 설립,러시아 지도 작성과 천연자원에 대한 조사 개시 등 눈부신 발전을 이룩. 대외적으로는 표트르의 치세는 전쟁으로 계속된 파란의 세월로서 평화스러웠던 해는 단 1년밖에 없었음. 가장 큰 전쟁은 스웨덴과의 21년간에 걸친 회전에서 대승하고 계속해서 한쿠트해 전에서도 이겼으며 현재의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상당한 지역을 획득하여 발트해로의 출구를 확보했음. 그리고 이곳에 유럽에의 창문인 상트.페테스부르그를 건설하여 수도로 정함. 이때 부터 제정러시아 시대가 막을 열었음.
3) 에카테리나 여제시대
ㅇ 표트르 다음으로 러시아 발전에 공로가 큰 황제는 에카테리나 2세 (1729-96)임. 독일인으로서 남편인 표트르 3세를 살해하고 즉위하여 러시아의 국익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 우선 계몽 주의에 따라 국가의 재 조직을 하고 그것을 위한 법전편찬에 착수함. 그러나 푸카쵸프의 대반란 이후엔 전제정치가 강화됨. 그녀는 영토확장에도 적극적이어서 3차에 이르는 폴란드분할에서 서쪽국경을 전진했고 다시 터키에 크림반도를 분할 양도해 러시아가 염원하는 흑해 진출을 이룩.
다. 근세사
1) 조국전쟁과 혁명에의 길
ㅇ 알렉산드르 1세의 조국전쟁
- 에카테리나의 아들 파벨 1세 이후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드르 1세는 정치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시도했으나 프랑스 혁명에 의한 자극으로 전제군주정과 농노제의 원칙을 고수함.
- 여기에 1812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 (쿠투조푸장군이 격퇴)으로 국가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름
ㅇ 데카브리스트의 반란
- 점령군으로 파리에 진주하여 자유시장을 실제적으로 체험한 젊은 인테리장교들과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 및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러시아의 귀족계급과 상류층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정치.사회개혁의 기운이 급속히 확산됨.
특히 알렉산드르 1세의 반동정치로 긴장은 더욱 고조됨.
- 마침내 1825년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을 계기로 제 1차 러시아 혁명이라고 불리는 데카브리스트반란(12월 반란)이 일어남. . 실패는 했으나 후대의 혁명가들에게 사상적 기반의 제공 계기가 됨.
2) 니콜라이 1세 - 니콜라이 2세
ㅇ 니콜라이 1세의 치세
- 데카브리스트의 반란과 함께 즉위한 니콜라이 1세는 30년에 걸친 재위 기간중 강권과 억압으로 반동정치 수행. 즉 1826년 오흐라나(Okhrana)라고 하는 비밀경찰조직과 헌병대를 창설, 유럽유학중지조치, 군사교육과 여행검열제도 강화 등
- 1853년 터키와 전쟁을 벌려 1854년 영국과 프랑스가 터키를 지원하므로써 크리미아 전쟁 발발. (1856년 파리 강화조약으로 종전)
- 이 반동의 시대에 무지한 러시아 국민을 대변하고 국가의 개혁을 꿈꾼 지식인 계층 즉 인테리겐차 출현.
ㅇ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정치
- 1861년 반동정치의 시대역행성과 국민여론을 인식, 농노해방이라는 역사적 대개혁 실시
- 대외적으로는 팽창주의가 지속되어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를 연달아 정복했고 아무르지역까지 진출했으며 1858년과 1860년 각각 아이훈조약과 북경조약으로 흑룡강에서 동쪽으로 우수리 강을 따라 태평양연안에 이르기까지 영토확장
- 1867년 알라스카를 미국에 매각($720)
- 1860년대와 1870년대 초에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브나로드 (Vnarod)운동 ('인민속으로' 운동) 전개
- 보나로드운동 실패 후 행동적인 인민주의자들은 토지와 자유(제믈야 이 볼랴)라는 자치정당을 구성하고 소수간부를 중심으로 폭력에 의한 개혁 추구
ㅇ 알렉산드르 3세의 반동정치
- 1881년 3월 인민의지당에 의해 암살된 알렉산드르 2세를 이은 알렉산드르 3세는 검열제도 강화, 지방관에 의한 농민감시제도시행, 모든 국민에 대한 러시아정교강요 등 반동정치 실시
- 사회전반에 걸쳐 자본주의적 발전이 시작되어 철도가 신설되고 화폐개혁이 이루어졌으며(1897년) 광공업과 방직공장이 크게 발전. 이에 따라 처음으로 노사문제가 대두
ㅇ 니콜라이 2세(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 1894년 10월 알렉산드르 3세 사후 니콜라이 2세가 즉위
- 이시기 러시아는 산업혁명의 진전과 맑시즘의 확산이 가속화되고 가뭄으로 기근에 시달리는 농민과 러시아혁명의 잠재세력인 노동자들의 불만고조
- 특히 1904년 부터 시작된 대일전쟁의 전황불리로 국민의 대정부 신뢰 동요 시작
- 1905년의 대일 사하린 남부의 할양(포츠머츠 조약)과 전쟁에 따른 생활고와 도시빈민층 및 노동자의 불만고조로 1905년 썅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해고에 반발한 총파업발생. 1905년1월22일 총파업시위대에 대한 발포로 수천명의 사상자 발생 (피의 일요일사건)
- 이 사건 이후 황제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동란의 기운이 급속히 고조되어 전국적으로 총파업이 일어나고 파업지도자에 의한 "노동자 대표 쏘비에트" 발족.
- 이에 황제는 입헌정부수립건의를 수용. 10월선언 발표 (투표.언론. 출판.집회의 자유확대 결정)
- 그러나 정부와 극우파가 민중의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하려함에 따라 1905년 12월 모스크바의 노동자들은 트로츠키의 주도아래총파업결의와 무장봉기를 결행.
- 1906년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참여한 최초의 듀마가 구성됨.
- 세계 1차 대전에의 참전과 패배, 계속적인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에 따른 혁명으로 1917년 2월 27일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임시정부 수립
라. 현대사
1) 소련의 성립
ㅇ 볼셰비키 혁명
- 1917년 3월 2일 수립된 임시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치 못하자 노동자들과 병사들의 대표들로 구성된 볼셰비키 세력이 각소비에트와 지방에서 강화되었음
- 1917년 11월 7일 레닌(1870-1924)에 의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성공하여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
ㅇ 내전과 공산주의
- 1918-30년 동안 볼셰비키의 언론검열이 강화되고 중공업 및은행이 국유화되었음. 파업이 불법화되고 비밀경찰(Cheka)과 혁명군 창설
- 그러나 혁명후 오랫동안 내전(우익 백군과)이 계속되고 기대 했던 주변 제국의 혁명도 일어나지 않자 신생 쏘비에트공화국은 파국상태에 돌입
- 이에 레닌은 네프(NEP:신경제 정책)에 의해 궤도를 수정하여 자본주의적 요소를 수용(농민에게 개인 토지에서의 경작 및 농산물판매의 자유 인정)하여 경제는 어느정도 활기 회복
- 스탈린이 당 총서기로 임명되었고 1922년 말 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카프카즈로 이루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성립
-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강권통치를 시작하여 트로츠키를 당으로부터 축출하는 한편 20년대 말부터 제 1차 5개년계획과 농업의 집단화를 지향. 콜호즈(집단농장)건설을 강행하여 30년대 중반엔 거의 완료시킴
- 36년에는 사회주의체제를 명확히 하는 스탈린 헌법이라 일컫는 쏘비에트헌법이 제정됨
- 그러나 한편에서는 피의 숙청이 계속되어 학자, 문화인, 노동자, 농민 등 수많은 인원이 체포.처벌됨(2천만명)
- 그 후 세계대전이 발발.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 가까스로 승리하여 승전국의 대열에 끼었으나 피해는 막대했음
2) 2차 세계대전 후의 소련
ㅇ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은 4차 5개년계획에 착수. 농업, 공업이전쟁전의 수준을 되찾음. 한편 동서의 냉전은 소련으로 하여금 이데올로기 단속에 힘쓰게 했으며 스탈린은 더욱 독재를 강화하여 비판자 대거 숙청
ㅇ 1953년 스탈린 사망으로 정부의 지도 방침은 대폭적으로 변했으며 새 지도자 마렌코프는 소비생활을 촉진시켜 생활향상을 꾀했으나 중공업우선의 당내비판을 받아 사임. 그후 후루시초프가 실권장악
ㅇ 후루시초프의 정책은 소련사회에 결핍되었던 해방감을 어느정도 회복시켰고 동서냉전도 점점 화해무드를 타게됨. 그러나 60년대에 들어 정체경향을 보인 국민경제를 이유로 후르시쵸프의 정책은 비판되고 브레즈네프에게 최고지도자의 자리가 넘어감.
ㅇ 브레즈네프는 후르시쵸프시대에 분할된 당조직을 단일화하고 기업의 자주성을 확대하여 생산성의 향상을 도모. 그러나 '82.11월 그가 죽었을 때에는 18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에 의해 소비에트경제는 더욱 어려운 국면에 직면
ㅇ 그후 서기장이 된 안드로포프는 브레즈네프의 노선을 계승했으나 곧 사망하고, 1984년 등장한 체르넨코도 갑작스럽게 사망하므로써 1985년 소장파인 고르바쵸프가 당서기장에 임명됨.
3) 고르바쵸프의 등장
ㅇ 소장파인 고르바쵸프는 집권후 권력개편을 단행하고 대내적으로는 페레스트로이카 (개혁), 대외적으로는 글라스노스트 (개방)로 대표되는 현실적이면서 실용적인 개혁정책을 펼침
ㅇ 그 결과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제를 도입. 독점권력이 있는 공산당의 지위를 격하시키면서 관료주의의 대폭 축소와 권력의 지방분산을 꾀했으며, 경제적으로는 국가통제구조의 모순으로 정체위기에 놓여있는 국가경제에 일정 부분 자율과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획기적인 개혁이 단행됨. 또 외교분야에서는 지역협정을 강화하여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한편 탈이념적인 현실외교를 전개
ㅇ 대외적으로는 고르바쵸프의 신사고정책으로 탈냉전시대에 돌입했으나, 이러한 대외적 성과는 소련 국내정치 및 경제에 별도움이 안됨. 특히 경제면에서 고르바쵸프의 개혁정책은 부분적 개혁에 그처 오히려 혼란만을 초래함. 또한 자유화 추세에 따른 연방내공화국간의 갈등은 경제개혁 및 정치안정을 더욱 어렵게함.
4) 러시아 연방의 출발
ㅇ 1990년 6월 러시아 공화국 최고회의가 자국의 헌법이 소연방 헌법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의 주권선언을 한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정치적 독립 움직임은 '91.6월 사상 최초로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보리스 옐친 최고소비에트의장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점차 현실화됨.
ㅇ '91.8.19일 보수파에 의한 구테타이후 경쟁관계가 부각되고 그동안 유지해오던 고르비와 옐친의 균형이 깨지고 권력의 중심이 옐친쪽으로 급속히 이동함.
ㅇ 구테타 실패후 연방권력의 유지.강화를 주장해온 보수파가 몰락하므로써 옐친의 대연방정부 무력화전략 본격화. '91.10.28 옐친은 3개의 비상 경제개혁 관련 결의안에 대해 최고회의 승인을 받으므로써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포고령의 권한강화와 더불어 독자적 개혁 추구.
ㅇ '91.12.8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벧라루시 등 3개 공화국의 대통령이 모여 기능 불능 상태에 빠진 연방정부를 무시하고 소연방의 소멸과 독립국가연합 (CIS)을 결성했으며 여타 공화국들도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러시아공화국과의 협조 필요성과 자국의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슬라브계 3개 공화국의 독립국가연합이 동참. 발트 3국과 그루지아 공화국을 제외한 11개 공화국은 '91.12.21일 카자흐공화국의 수도 알마타에서 CIS결성에 관한 6개 협정에 서명하므로써 소련은 완전히 소멸되고 '92.1.1일자로 러시아를 비롯한 각 공화국은 완전한 정치적 독립국가로 등장함.
2. 국가형태
ㅇ 러시아연방. 삼권분립
ㅇ 대통령제(1991년 6월 12일 국민이 5년 임기로 직접선출)
ㅇ 러시아연방의 행정조직: 21개의 자치공화국, 1개의 자치주, 10개의 자치구, 49개의 주 및 2개의 특별시 6개의 지방으로 구성
ㅇ 연방대통령은 지방에 대통령대표를 파견하여 감독
ㅇ 93.12.12일 국민투표로 확정된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강화되었고 의회은 양원제로 됨(국가두마;하원, 연방평의회;상원)
3 사법제도
ㅇ 현행법의 근거 및 특성
- 현행법은 1977-78년에 개정된 소연방공화국법에 근거함
- 주요특성으로 인민배석판사제도 (모든 민.형사사건은 1심 법원에서 합의부 즉 1인의 판사와 2인의 인민배석판사들이 심의)와 소환제도(판사와 인민배석판사는 그들을 선출한 투표자나 기관에 의해 소환가능)를 들 수있음
ㅇ 법원조직: 4개의 조직 및 헌법재판소
- 연방대법원
- 자치공화국 대법원
- 지방법원
- 인민법원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법원으로 1명의 판사와 2명의 배석판사로 구성)
ㅇ 사법과정: 주민에게 매우 불리
- 보석규정이 없어 구속적부심사 신청불가
- 변호사 선택 불가
- 명백한 불법사실이 재판 기록상에 없으면 상급법원은 재판결과 번복불가
- 자백에 따른 유죄판결이 실제관행
- 임기 2년 반으로 지역 주민의 선거로 선출하는 인민배석판사가 모든 재판관계에 참여하여 재판과정에 주민의 여론 반영역할 수행하나 실제로 판사와 대립하여 판결을 번복시키는 일은 거의없음.
- 그외에 사회검사 및 사회변호사 제도(사회단체나 경제조직이 법원에 피고나 원고를 위한 대표를 내세우는 제도)와 인민재판 및 직장재판 제도가 있음.
4. 의회
ㅇ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연방의회('94.12.12일 선출)
- 상원(연방평의회) : 89 x 2 = 178명
- 하원(국가두마) : 225 x 2 = 450명
. 절반은 정파별 득표율에따라 비례대표제로 선출
ㅇ 연방평의회는 각종 법안의 재심 및 장관 등의 임명 동의
- 현재 의장은 블라디미르 슈메이꼬(러시아의 선택당 소속)
ㅇ 국가두마는 법안의 작성 및 제정
- 현재 의장은 이반 루부킨(러시아 공산당 소속; 95.5월 탈당하여 자체선거운동 본부를 발족)
5. 선 거
ㅇ 대통령선거 : 매 5년마다 국민이 직접선거 .피선거권은 10년 이상 러시아에 거주한 35세 이상의 국민. 96.6월 대통령 선거실시 예정
ㅇ 의회선거 : 21세 이상의 러시아국민은 피선거권있음
ㅇ 의회선거는 93.12.12일 실시된 이후 정식임기는 4년이나 제1회 의원의 경우 2년으로 제한되어 95.12.12일 선거를 실시하게 됨.
6. 정당현황 ㅇ 현재 91개 정당이 러연방법무부에 등록되어 있음. ㅇ 러시아 선택당(Party of Russia's choice) - 당수 : 가이다르 전총리 - 국가두마에 40명 의원 - 개혁성향 ㅇ 러시아 단결 조화당(Russian Party of Unity & Accord) - 당수 : 샤흐랴이 전부총리 - 국가두마에 18명 의원 - 개혁성향 ㅇ 러시아 민주당 (Democratic Party of Russia) - 당수 : 니꼴라이 일리치 트라브킨 - 국가두마에 14명 의원 - 중도성향 ㅇ 자유민주당 (Liberal Democratic Party of Russia) - 당수 : 블라디미르 볼포비치 지리노브스키 - 국가두마에 59명 의원 - 극우 보수파, 구소연방의 재건 주장 ㅇ 러시아 공산당 (Comunist Party of Russia) - 당수 : 게나디 안드레예비치 주가노브 - 국가두마에 32명 - 보수성향 ㅇ 러시아 농업당 (Agarian Party of Russia) - 당수 : 미하일 이바노비치 라프신 - 국가두마에 21명 - 보수성향 ㅇ 러시아 여성당 ( Women's Party of Russia) - 당수 : 알레브찌나 바실리예브나 페두로바 - 국가두마에 21명 - 중도성향 ㅇ 우리의 집-러시아(Our House-Russia) - 당수 :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 - 95.5월 창당, 12월 선거준비에 착수 - 보수성향, 일명 '권력의 당' 7. 정부 요인 ㅇ 정부간부: 대통령과 총리 밑에 7명의 부총리 대 통 령 MR.Boris Yelstin 총 리 MR.Chtrnomyrdin 제1부총리 MR.Soskovech 제1부총리 MR.Chuvais 농업담당 부총리 MR.Zaverjuha 경제담당 부총리 MR.Bolshakov 사유화담당 부총리 MR.Polevanov 대외부채담당부총리 MR.Davuidov 사회분야담당부총리 MR.Yarov ㅇ 주요장관 외무장관 MR.Kozyrev 재무장관 MR.Panskov 국방장관 MR.Grachov 내무장관 MR.Yerin 대외경제관부장관 MR.Davidov 경제무장관 MR.Yasin 방산위원회 위원장 MR.Viktor Glukhikh 연방첩보국장 MR.Stepashin 대외정보국장 MR.Primakov 검찰총장 MR.Ilyushenko(직무대리) 중앙은헹총재 MRS.Paramanova(직무대리) 민족관계부장관 MR.Yegorov 농업식품부장관 MR.Nazarchyuk 연료에너지부장관 MR.Syafranik 8. 최근의 정치동향 - 1985. 3 고르바쵸프 서기장 집권 - 1985. 4 고르바쵸프의 경제,사회 개방 계획 발표 - 1986. 4 제 2차 공산당 대회 개최 - 고르바쵸프 서기장의 개혁및 개방정책 수용 - 1988. 7 제 19차 임시 공산당 대회 개최 - 정치제도 개혁합의 - 1989. 3.26 인민대표회의 대의원 선거 - 1989. 4 최고 소비에트 회의 구성 및 고르바쵸프 의장 선출 - 1990. 2. 5 당 중앙위원회 개최, 대통령 제도 승인 - 1990. 2.27 최고 소비에트에서도 대통령 제도 승인 - 1990. 3.13 인민대표 대회에서 고르바쵸프 대통령 선출(초기 대통령) - 1991. 3.17 국민투표 실시 - 연방 구성에 대한 찬.반 투표 -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 선출 찬.반 투표 - 1991. 6.12 러시아 공화국의 초대 민선 대통령 선출(Boris Elstin 당선) - 1991. 8.18 군사 쿠데타 발발 - 1991. 8.21 군사 쿠데타 실패 - 1991. 발틱 3개 공화국 독립 승인 - 1991.10.18 경제 동맹 조약 체결 예정 - 1991.11. 1 제 5차 인민 대표 대회 개최.옐친 대통령에 비상대권 부여 - 1992. 4.6 제 6차 인민 대표 대회 개최.행정부의 경제개혁 정책 승인 - 1992.12 제 7차 인민 대표 대회 개최.'93.4.7일 헌법 국민 투표 실시결정 - 1993. 3 옐친 대통령, 비상통치선언 - 1993. 3.3 제 8차 인민대표회의 개최. 국민투표실시 백지화 및대통령의 포고령 발동권탈 - 1993. 4.25 옐친 대통령 신임 등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 1993. 6. 5 러연방 헌법회의 개최로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안 검토 - 1993. 7.22 의회 93년도 50% 예산 적자 공인 - 1993. 7.24 화폐개혁 - 1993. 7.27 의회는 옐친의 경제개혁 반격차 전러경제회의 개최 - 1993. 9.3 옐친 대통령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 개최해 흑해 함대문제 협의 - 1993. 9.6 부통령의 집무실 봉쇄 - 1993. 9.18 옐친 대통령 연방회의 (176명) 소집해 의회 및 대통령 선거문제 협의 - 1993. 9.21 의회 해산 - 1993. 9.24 9개국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벧라루시, 카자크스탄, 키르키스크, 몰다비아, 러시아, 타지키스탄,우즈벡키스탄) 경제동맹 창설 합의 - 1993.10.4 의회의 무장봉기에 대해 군대 동원 무력 진압 - 1993.10.6 헌법재판소장 사임 및 10월 8일 헌법재판소 기능 정지 - 1993.10.11 옐친 대통령 연방회의(상원) 선거 일자 제시 (12.12일) - 1993.10.27 지방소비에트 해산 - 1993.12.12 의회선거(상원 및 하원) 및 국민투표 실시 9. 외교노선 ㅇ 외교노선의 기초: - 탈이념화 및 서방과의 동반자적 관계 설정 - 우호적 선진 관계 유지 및 경제 실리 외교 추구 - 소련의 실질적 계승자로서 국제무대에서의 리더쉽확보 - 군비축소 협상 - 대외경제 협력 확대 추구 - 종전의 사회주의 국가 (북한,쿠바,베트남,중공 등)에 대한 탈이념적 실리외교 - 세계 경제로의 편입 노력 ㅇ 실제적인 외교현안 - 경제 개혁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 지원확보 - GATT 및 WTO 가입(신청서 제출) - EU와 경제협력협정 체결 ㅇ 외교정책의 수행환경 - 경제개혁과 관련 서방측이 제시한 전제조건의 충족 문제로 인해 수혜자적 입장에 있어 열악 - 경제개혁 정책에 대한 국내 보수파들의 반대를 극복해야하는 열악한상황 10. 지역주의 참여 정도 ㅇ 현재 경제적인 지역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없음 ㅇ 다만 COMECON국가들과의 유대 강화 모색중 ㅇ 타 CIS제국과 경제 동맹 내지 공동 루블 통화권 설정 합의 - 벨라루스와 관세동맹 창설(95년 초)11. UR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