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를 건너오기 위해, 사까이미나또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까우미 호수 가에 시청에서 만들어놓은 정자가 있었다.
문득, 취하고 싶었다. 취해서 나까우미 호수를 걸어서 여객항에서 배를 타고 동해바다를 건너면 그만인 일정이었다. 편의점에서 식사와 안주 겸용으로 야끼소바와 쮸하이 캔을 사들고 정자에 앉았을 때, 먼저 앉아있는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이미 취해 있었다. 나 만큼이나 술을 좋아하는 인간이거나, 아무도 돌봐주지 않은 독신의 늙은 실업자이기 쉬웠다.
27년전이던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우에노 공원의 노숙자 조차 부러웠던 가난한 한반도의 유학생이었다. 우에노 공원의 거지들은 밤이면, 화려한 우에노의 조명을 배경으로 그들의 벤치 밑에서 양주를 꺼내 마시곤 했고, 낮이면 구약소에서 나누어주던 도시락을 먹고 하루 종일 취해 있었다. 그들은 매월 지급되는 생활보조금을 저금했다가 여름휴가가 되면 해외로 놀러가던 팔자 좋은 인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침몰하는 제국의 항구에서 취해있는 그 일본인은 27년전의 부러웠던 노숙자가 아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술 기운이 내 눈시울을 풀리게 했고, 일주일 내내 같이 붙어다니며 대화를 나누었던 아내와도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즈음, 나는 그에게 문득 질문을 하고 말았다.
"다께시마와 도꼬노 구니다또 오무웅데스카? 오레와 간고꾸징데스케도....."
(독도는 어느나라 거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한국인입니다만.............)
"..............."
그는, 나의 도발적인 질문에 잠시 말이 없었다. 많이 취했나 보았다. 그에게 그런 엉뚱한 질문은 무의미했던 것이다. 나는 왜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은 질문의 적국(?)의 국민에게 했던가. 자책감이였던가. 당혹감이었던가. 아내가 옆에서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강원도 동해시와 돗또리껜 사카이미나또시 사이에는 울릉도와 독도와 일본의 오끼섬이 있다. 일본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면서 독도(다께시마)를 자기네 땅이라 주장을 한다. 거리상으로 독도가 일본에서 더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은 맞다. 울릉도에서 동해시까지 대충 200키로가 넘고 오끼섬에서 사카이미나또까지 70키로이고, 그 사이에 독도가 있기 때문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주장하는 현청은 사카이미나또가 속해있는 돗또리현이 아니라, 사실은 그 옆에 마쯔에 성이 있는 시마네현이다. 마쯔에 성 옆는 시마네 현청이 있고 그 옆에 그네들이 우기는 독도 자료관이 있다. 사실, 그들의 자료만으로 보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 믿어도 할 말은 없다.
"아노.......다께시마와 도찌노모 나잉데스, 도리또 사카나노 구니데스"
(독도는 어느 나라 것도 아닙니다. 새들과 고기들의 나라입니다)
"스바라시이데스, 사이고 사이고!"
(훌륭합니다. 최고입니다, 최고!)
묵묵히 바다를 내려다 보고 취해있던 그가 갑자기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환호를 질렀다. 아내 마저 깜짝 놀랄 정도의 반응이었다. 결코 나의 당돌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거라고 단정을 짓고 무심히 내던진 나의 질문이었다. 멀리, 갈매기 한 마리가 하늘을 날아 가고 있었다. 저 갈매기에게는 독도도 오끼섬도 울릉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네 땅이라고 싸우는 인간들 보다 어쩌면 저런 미물이 더욱 현명할 지도 몰랐다. 그가 날아가서 둥지를 트는 그곳이 그의 땅이기 때문이다.
몇 년전, 남북한 양국의 경계인이었던 송두율 교수를 감옥에 집어넣었던 우리 정부의 치졸한 법률보다 저 갈매기의 날개짓이 더욱 우아하게 보였다.
일본의 역사를 한반도로부터 건너 온 도래인의 역사라고 우기는 한반도의 역사학자나, 가야지역이 일본의 속국이었다고 우기는 일본 역사학자나 또 중국의 동북공정 역시 우리 인민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리 인민들은 갈매기 만큼이나 힘이 없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런 순수함을 애국심을 빙자해서 엉터리 우국지사로 만들어 놓은 자들은 누구인가.
유럽의 왕들과 그들 나라의 인민들은 민족이 달랐다. 그래서 언어조차 달랐다. 유럽의 절대왕조시절, 합스부르크가를 중심으로 혼인과 인연이 만들어지고 그들은 유럽의 절대왕조를 독점했다. 상인과 수공업자를 키워 중상주의 국가로 부흥을 시키고 각각의 화폐를 발달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각국 왕들마다의 화폐를 중심으로 유럽의 국가들은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근대사는 바로 국가의 개념이 성립되는 시기와도 일치하다. 그 시기가 자본주의가 성립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유럽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나라의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처럼 치열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자본주의만이 이토록 강력하고 치열하고 이기심으로 가득한 애국심을 강요했을 뿐이다.
유럽의 엉터리 민족국가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화폐제도이다. 절대왕조는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을 주도하기 위해 전쟁을 일삼았으며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전쟁비용이었다. 절대왕조 시절의 빈번한 전쟁은 그토록 흥성했던 중상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돈이 모자랐다. 그 돌파구가 바로 제 3세계의 금은이었던 것이다. 그런 외부적인 조건과 함께 유럽 내부적인 중요한 조건이 또 하나 있었다.
유럽의 금세공업을 장악했던 유태인들이 화폐의 유통을 주도했던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도둑질한 금 제품이 금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술이 필요했고, 그런 화폐주조 기술이 그들이 현재 각국의 은행제도를 만든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절대왕조 시절의 화폐제도는 오로지 돈으로만 유통되는 현물식이었으나, 그것이 차츰 통화량이 늘어나고 상품량이 늘어남에 따라 어음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상인 자신이 맡겨놓은 금에 대한 보증서가 화페를 대신하게 되엇던 것이다. 그것이 금본위제도의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물론 금의 보증서를 발행한 자들은 금세공업자들이었다. 그러나, 금세공업자들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금고에 들어있는 양만큼의 보증서만 발행하지않고 더욱 부풀려서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론, 상인과 금세공업자들과의 범죄였다. 그런 범죄는 전 유럽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것의 발행 초기에는 그들의 범죄가 발각되어 상인과 금세공업자들이 처벌되기도 했다. 그들은 사기꾼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던 중, 영국의 왕은 프랑스와의 전쟁 비용이 부족했다. 그 부족한 전쟁비용은 금세공업자였던 유태인들로부터 충당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방법은 영국왕이 법으로 처벌했던 바로 그 사기였다.
있지도 않는 금 보유 증서를 금세공업자에게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 은행의 모태가 되었던 잉글랜드 은행의 시작이었고, 있지도 않은 엉터리 금 보유 증명서가 화폐로서 유통이 되는, 이른 바 현대 은행제도의 근간이 되는 지급준비율제도가 탄생된 것이다.
지금의 은행제도는 바로 범죄에서 출발한 사기라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금융의 위기는 바로 국왕과 부루조아와의 공모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이런 화폐제도는 급기야는 세계대전을 낳았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민족국가라는 개념이 언제 성립이 되었는지는 여러 관점이 있지만, 유럽의 절대왕조 시절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화폐제도라는 커다란 범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유럽의 왕들은 자신들만의 화폐를 만들어 전쟁을 벌였고 그것이 민족국가(nation)라는 개념의 성립이었다. 그리고 유럽의 왕들은 영국왕의 영특함에 혀를 내두르며 그의 멋진 아이디어를 모방하기에 이른 것이다.
각국의 인민들과는 전혀 다른 민족이었던 그들의 왕이 만들어 놓았던 범죄에 순진한 인민들이 걸려든 것이다. 있지도 않은 금 보증서는 인플레를 일으키고 범죄를 일으키고 그것이 상품의 양을 증가시키고, 그 보증서의 이자는 지구상의 모든 경제주체가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않되는 악순환을 만든 것이다. 공황과 인플레를 해결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전쟁이었음을 세계대전이 보여주었다.
그나마, 겨우 체면을 지킬 수 있었던 세계의 주축 화폐였던 달러의 금태환 화폐제도는, 베트남 전쟁에 패한 미국의 전쟁비용 부담으로 인한 재정위기를 금의 보유량에 관계없이 미국정부 마음대로 발행한다고 닉슨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그 이후, 미연방준비위원회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세계 경제가 요동치게되엇던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엄청난 범죄행위의 종말은 과거 식민지 약탈을 합법화한 세계 무역으로 인한 무역마찰과 무지한 국민으로 하여금 애국심을 발휘하게 동요시켜 전쟁 뿐일 것이다.
그것의 현재진행형이 바로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 열도이고, 아시아 태평양 네 나라가 주도했던 TPP를 미국과 일본이 끼여들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고,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참가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끼여 들 수 밖에 없는 것이 독도 문제인 것이다.
순진한 독재자의 딸은 일본 수상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대견해 하고 있는 멍청한 한국 언론이다.
처음 만날 때 멀뚱했던 일본인과 헤어질 때는 웃었다. 독도 문제의 명쾌한 해결이 우리 사이를 즐겁게 했던 것이다. 나는, 밤새도록 일본의 오끼섬과 독도와 울를도를 지나 내 고향으로 돌아 올 것이다. 내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었다. 내 마음은 갈매기를 따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