º <신성한 나무의 씨앗>(모하마드 라술로프, 2024)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카메라는 이만의 가족이 고향집으로 피신하기 전까지 대부분 실내에만 머문다. 일반적인 카메라가 인간의 시지각과 공간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담아내는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카메라는 테헤란 거리를 활보하지 못한다. 이만의 집 내부, 사무실과 차 안 풍경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며, 간혹 외부 풍경이 비치더라도 오직 실내에서 바라본 짧은 시점에 불과하다. 흥미롭게도 카메라가 테헤란 밖을 활보하는 건 영화 제작을 위한 카메라가 아닌 이란 민중들이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한 실제 시위 장면들에서다.
2시간 40분이 넘는 러닝타임 중 1시간 20분 동안 이만의 집 안에 머무는 카메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위치에 안주하지 않는다. 단 한 컷도 같은 위치에서 인물들과 공간을 포착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위치를 바꾼다. 억압된 사회 구조 안에서 밖을 활보하지 못하는 카메라는 위축되지 않고, 이처럼 실내 공간 안에서 부단히 위치를 바꾸며 카메라의 포지션으로 저항한다. 멈춰 선 듯 보였던 카메라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이만이 가족들을 의심하며 총을 찾으려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때 영화는 처음으로 스테디캠을 사용하여 원씬 원컷으로 움직인다. 좁은 실내에서 인물의 동선과 카메라의 움직임을 연결하는 촬영은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대단히 까다롭다. 집안에서 위치를 바꾸며 저항하던 카메라는 더 이상 이 현실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듯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인물을 따라가며 흩어진 공간을 연결하는 이 카메라 워킹은 움직임의 형식으로 다시 한번 강하게 사회에 저항의 몸짓을 드러낸다. 프레임 가득 채워진 이만의 얼굴과 그의 분노가 커질수록 원씬 원컷으로 담기는 이만의 실내 공간은 더욱 흩어진다. 억압된 현실을 영화적 표현으로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카메라는 어디에 서야 하고,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이 영화는 카메라가 단순히 현실을 대변하는 도구가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 창작자들이 느끼는 세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동시에,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감독과 제작진은 1시간 20분 동안 실내에 머물면서도 고정되지 않는 카메라와, 특히 기술적으로 고난도의 실내 원씬 원컷 촬영을 훌륭하게 구현해 내며 사회에 저항하고 현실에 맞서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박홍열)
출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만든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