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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인도 금융부문이 제공하는 신규 대출(여신)액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가 회복세로 돌아선 이후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증했다. 3년간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인도 내 지정상업은행(SCB, Scheduled Commercial Bank)들의 대출액 증가율은 2022년 10월에 전년 동월 대비 17.1%를 기록하며 고점을 찍었고, 인도 중앙은행(RBI)이 제공하는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23년 2월의 신규 대출액도 전년 동월 대비 15.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대출 수요 증대는 특정 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전반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발생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아울러 금융 포용성(Financial Inclusion) 진작 프로그램 시행 및 디지털 채널을 이용한 대출 절차 개선도 지난 2년여간 소매대출 확대를 촉진했고, 인도 최대 규모의 상업은행 중 일부도 상환율과 금리가 높은 소매대출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소매대출의 한 형태인 개인대출을 형태별로 살펴보면 주택, 자동차, 소비자용 장기 보유품, 교육, 금(gold) 대출을 비롯한 개인대출 규모 성장률은 2023년 1월에 3년 만의 최고치(20.4%)를 기록했으며, 이외에 농업 및 서비스 부문의 대출 수요도 활발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 뒤를 잇는 산업부문 대출액 증가율은 2022년 7~11월 두자릿수까지 올라갔다가, 이후 세계 경기가 침체되고 주요 교역국 일부에서 경기 연착륙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며 다소 내려간 상태이다. 최근 인도에서는 소매, 중소기업, 농업이 대출액 성장을 주로 견인했으며, 인도 국내외 자본시장의 금리가 높아진 지금의 환경은 은행을 통한 도매대출 수요 증가도 촉진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소기업들이 이용한 대출액은 2022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월평균 27.4%라는 매우 높은 장가율을 보였는데, 여기에는 5조 루피(INR, 한화 약 80조 원) 규모의 긴급신용한도보증제도(ECLGS, Emergency Credit Line Guarantee Scheme) 시행이 긍정적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예대율 상승
인도 내 예금액 및 대출액 규모는 시기에 따라 저마다의 역사적 변천을 겪었다. 먼저 1990년대 후반에는 신규 경제 정책이 시행되고 여러 민간은행이 새로 설립되면서 예금액 성장률이 기존에 비해 올라갔고, 2004~2008년에도 경제 호황에 힘입어 재차 예금액 증가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던 중 2008년에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는 인도의 예금 기반을 흔들어 2009~2014년 예금액이 상당 부분 소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어 2015~2018년에는 저금리 기조로 인해 예금액 성장이 전반적으로 부진했으나, 2016 회계연도에 단행된 고액권 폐지 조치 직후 예금액 규모가 반짝 증가하기도 했다. 한편 2021 회계연도에는 예금액 성장률이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활동이 봉쇄되고 사람들이 미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저축을 늘리는 리스크 회피성 행동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팬데믹이 지나가고 나서는 지출 증대와 물가상승, 은행 예금보다 수익성이 높은 투자 기회 확대 등으로 인해 예금액이 다시 저성장기에 들어섰다.
다음으로 인도의 대출액 규모는 경우 2008~2014년 16.8%의 연평균성장률(CAGR)을 보이며 선전하다가 뒤이은 2014~2021년 동안에는 8.3%로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이 기간에 대출액 성장률이 침체된 배경에는 ▲산업분야의 더딘 대출 성장 속도 ▲경기침체로 인한 부실자산 증가 ▲특정 부문에서의 투자 버블 형성 ▲기업 수익성 약화로 인한 은행의 대출 여력 제한 및 신용갭(credit gap) 확대 등의 요소가 존재한다.
한편 인도에서는 최근 국내 은행이 보유 예금을 대출 용도로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예대율(Credit-Deposit Ratio) 또한 고점을 경신했다. 이처럼 높은 예대율은 기업 재무구조 악화나 부적절한 자본 융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폭발하기 시작한 수요, 그리고 자본지출을 중심으로 한 양질의 정부 재정지출이 대출 성장을 견인 중인 인도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예금액 성장률이 대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11개월 연속으로 이어지자 인도의 은행들은 RBI의 통화 긴축 정책으로 보장해줘야 하는 예금 금리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예금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공격적으로 임하고 있다.
<그림 1> 인도의 월별 대출 잔여액 증감율 추이(전년 동월 대비)
자료: RBI
<그림 2> 인도의 월별 예대율 및 전년 동월 대비 예금·대출액 증감율 추이
자료: RBI
예금액 규모 현황 및 전망
역사적으로 인도에서는 가계부문이 주요 예금주였지만, 최근에는 자본시장이 발달해 소매금융이 활성화되고 부동산이나 암호화폐 등 대체 투자처가 등장하면서 예금액 중 가계부문의 비중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최신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인도 내 은행 예금액 중 가계의 비중은 여전히 63%에 달해 2위 주체인 비금융기업의 17%를 압도하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나타난 고물가 기조가 가계 경제를 위협하면서 예금 기반의 소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과 그로 인한 봉쇄 조치 장기화로 그간 억눌려 있던 수요가 최근에 폭발하면서 여러 비금융기업도 예금액을 인출해 사업 확장이나 생산량 증대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들의 은행 예금액도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편 인도의 SCB 부문에서는 고액 예금 및 대출 의존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점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인도 정부가 운영하는 소액예금제도의 금리가 인상되면서 시중은행의 예금 유치 노력과 경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 정부는 2023년도 1/4분기 발표를 통해 소액예금제도 계좌 12개종 중 8개의 금리를 인상했으며, 최근 예산안에서 발표된 여성 중심 소액예금제도 또한 시중은행의 예금 상품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 소액예금계좌의 예치금 규모가 인도 정부 재정적자의 3%를 충당할 정도로 성장하자 시중은행들도 고객 유출 방지를 위해 예금계좌 금리를 인상하면서 인도 은행업계의 평균 금리는 지난 3개 분기에 걸쳐 지속적 상승세를 나타냈다.
<그림 3> 인도의 2022 회계연도 예금주 비중
자료: RBI
인도 은행업계의 재무건전성
예금 증가율을 앞서는 대출 증가율은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닌 양날의 검이다. 이 현상은 대출 수요가 높을 정도로 경기가 활성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대율 상승으로 인한 예기치 못한 자금소요 충당 곤란, 자기자본비율 악화, 자산-부채 괴리와 같은 리스크 증가를 시사하기도 한다. 2023년 1월을 기준으로 인도의 기간별 예대율은 전년 동월 대비 113%, 6개월 전(2022년 7월) 대비 125%에 달했는데, 인도의 은행들은 지난 수년간 많은 예금액을 확보해 둔 덕분에 이처럼 급증한 대출 수요를 큰 문제 없이 감당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인도 은행업계의 상황은 여타 국가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RBI가 시행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 르면 인도 내 SCB는 보유 자산이 충분하며, 이해관계자로부터의 추가 자금 수혈 없이도 거시경제적 충격을 견뎌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해당 스트레스 테스트의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인도 내 46개 주요 은행의 위험가중자산 대비 총자산비율(CRAR, Capital to Risk-weighted Asset Ratio)이 2022년 9월의 15.8%에서 시작해 2023년 9월에는 14.9%로 하락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이 수치는 중등도 스트레스 시나리오에서는 14.0%까지, 고도 스트레스 시나리오에서는 13.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 세 수치는 모두 최소 자본보전 완충자본(CCB, Capital Conservation Buffer) 비율 하한선인 11.5%를 비롯해 인도 정부가 설정한 여러 최소 요건을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표 1> 인도 주요 시중은행의 순수익 추이(단위: 금액-10억 루피, 증감율-%)
<표 2> 인도 주요 시중은행의 순부실자산 추이(단위: 금액-10억 루피, 증감율-만분율/BPS)
<표 1>, <표 2>자료: 개별 은행 웹사이트
2022년 12월을 기준으로 인도 주요 은행의 분기별 재무구조를 분석해 보면 자산의 질, 마진율, 자본상태, 수익률, 시가총액 등의 지표가 거의 모든 은행에서 개선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더해 2022/23회계연도 경제조사(Economic Survey) 보고서도 인도 내 은행의 보유자산이 풍부하고 회복력도 양호한 것으로 평가했다. 인도 은행업계의 재무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 정부 시책의 사례로는 ▲RBI의 계획적인 정책적 접근 ▲철저한 규제·감독 체계 ▲문제인식(Recognition), 해결(Resolution), 자본재조정(Recapitalization), 개혁(Reform)으로 구성된 4R 접근법 시행이 있다. 또한 2023/24회계연도 인도 정부 예산안에서 기존에 2016/17회계연도 예산안 발표 당시부터 유지되었던 정책을 폐기해 공공부문 은행의 자본조정에 정부 재정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점도 은행업계의 건전성 유지에 기여한 중대 조치로 평가된다.
대출액 성장 지속에 필요한 재원 확보 문제
인도의 대출액이 예금액 증가율을 앞지르고 예대율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현재 나타나는 대출액의 두 자릿수 성장이 과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격의 것인지의 문제가 중대한 분석 주제로 부상했다. 현재 인도 은행업계는 중간예납(advance tax) 납부 건으로 인해 유동성 부족(liquidity deficit) 상태에 이르렀으며, 이에 2023년 3월 17일에는 RBI가 1조 1,000억 루피(한화 약 18조 원) 상당의 추가 자금을 업계에 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도 불구하고 인도 은행업계는 고유동성자산(HQLA) 잉여분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는데, 2023년 2월 24일 주에 인도 상업은행들이 보유한 법정유동성비율(SLR, Statutory Liquidity Ratio) 초과 예금액은 19조 루피(한화 약 307조 원)에 달해 순수요 및 시간부채(NDTL, Net Demand and Time liability) 최소 유지 기준인 18%를 9.93%p 상회했다. 비록 인도 내 은행들이 사업 확장을 위해 고유동성자산을 현금화하면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Liquidity Coverage Ratio)이 2020년 9월에 기록된 고점 173.0%에서 2022년 9월에는 135.6%까지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 수치도 규제 하한선인 100%를 충분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편 2022/23 회계연도의 첫 11개월간 인도의 대출액 성장분은 15조 6,000억 루피(한화 약 252조 원)로 전년 동기의 7조 9,000억 루피(한화 약 128조 원)에 비해 크게 증가했고, 예금액도 같은 기간에 11조 루피(한화 약 178조 원)에서 14조 루피(한화 약 226조 원)로 늘어났다. 이는 현재 인도 은행업계가 예금 유치를 위해 금리 인상 경쟁 돌입의 영향이기도 하며, 레포금리(repo rate) 인상분이 예금계좌 금리에 반영되는 미래에도 이러한 경향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인도의 일부 은행들은 예금 유치 이외에도 대출 소요 충당용 자금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AT1)을 환매하거나 녹색 인프라 채권을 바탕으로 장기적 자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은행 대출액의 상대적 규모 및 성장 현황
일각에서는 인도의 대출액 증가세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레버리지(leverage)가 주요 우려요소로 부상할 가능성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현재 인도 가계 및 기업의 레버리지는 여타 국가에 비해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 특히 세계은행(World Bank) 통계에 따르면 인도의 국내 민간부문 대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55%에 불과해 세계 평균(148%)이나 중저소득국가 평균(119%)을 크게 밑돌고, 중국(183%), 한국(164%), 베트남(148%), 남아공(111%), 브라질(70%), 러시아(60%) 등 아시아 주요국이나 여타 브릭스(BRICS) 가맹국에 비해서도 양호한 상태에 있다.
<그림 4> 세계 주요국의 GDP 대비 국내 민간부문 대출액 비율
자료: 세계은행 세계개발지표(WDI)
<그림 5> 2022년 9월 기준 인도의 민간부채 조달원 비중
자료: RBI
인도에서 민간부채를 조달하는 핵심 재원 두 가지는 은행 대출과 회사채 시장인데, 현재 세계적 금융 긴축과 금리 인상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RBI가 2022년 12월에 공개한 재무건전성보고서(FSR, Financial Stability Report) 최신판에 의하면 동년 9월을 기준으로 대출액이 5,000만 루피(한화 약 8억 원)를 초과하는 도매대출이 민간부채 조달원 중에서 최고치인 54%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회사채는 32%로 2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최근 수개월간에는 세계적 금융 긴축으로 회사채 금리가 인상되고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및 헤지(hedge) 비용도 상승하면서 이들의 매력도가 더욱 떨어지는 경향이 발견된다. 결과적으로 국외 채권 발행이 줄어들고 사모펀드(private equity)나 벤처캐피털 기업의 투자도 소강 상태에 진입한 현재, 인도 기업부문의 자금 조달을 대체로 국내 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결론
인도에서는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자본을 풍부하게 보유한 은행업계는 보유 자산의 건전성 개선과 기업 펀더멘털 강화에 힘입어 견조한 대출 증가세를 뒷받침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글로벌 경기 둔화 시에도 인도에서는 개인과 중소기업 대출이 여전히 대출액 증가를 견인하는 양대 요소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지금 관찰되는 증가율은 코로나19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낮아진 기준점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고, 인도 은행업계가 보유한 대량의 누적 예금과 고유동성자산, 견고한 자본 기반과 재무구조도 레버리지 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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