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게임>은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영화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CIA를 은퇴하는 날 아침 로버트 레드포드는 과거에 자신이 선발했고 여러 차례 위험한 작전으로 몰아넣기도 했던 브래드 피트가 중국 감옥에서 사형을 하루 앞두고 있다는 정보를 듣는다. CIA는 외교문제가 걸려있어서 브래드 피트가 요원임을 부정하고 사형을 방조한다. 그는 (훗날의 처벌을 모를 리 없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조직 몰래 문서 위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퇴직 후에 쓰려고 모았던 돈을 모두 쏟아 부으며 브래드 피트를 극적으로 구출한다. 구출되는 헬기 안에서 브래드 피트는 작전명이 둘만의 암호였던 ‘디너아웃’이라는 말을 듣고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얼굴이 감격으로 일그러진다. 내게 이 장면은 압권이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옛 부하이자 친구의 안전을 확인하고 CIA를 떠난다. 그는 자신이 구출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브래드 피트가 알게 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브래드 피트가 알든 모르든 전혀 관계없다. 그 어떤 것을 바라고 친구를 구한 것이 아니기에.
흑인 제시 오웬스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100m, 200m, 400m 계주, 넓이뛰기 4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 위대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미국 아마추어 운동경기연맹(AAU)은 올해의 선수로 역시 베를린 올림픽 10종경기 금메달리스트였던 백인 글렌 모리스를 뽑았다. 모리스는 영화 <타잔>에서 타잔 역을 맡을 예정이던 스타이기도 했다. 투표결과를 들은 모리스는 이렇게 내뱉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토로 고다스著 <러닝>)
스포츠 역사에 미담이 많다. 우승이나 수상의 명예를 기꺼이 포기한 사례가 상당히 있겠으나, 떳떳하지 못한 수상을 당당히 거부하고 옹졸한 권위에 일침을 가한 이 일화는 단순한 감동 이상의, 일종의 쾌감까지 준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지만,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당시였음을 감안하면 친한 친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어찌 됐든, 제시 오웬스 역시 통쾌했을 것이고 상을 받든 못 받든 자신을 알아준 모리스에게 매우 감사했으리.
지난 주말 국민학교 동창들을 만나러 가는 지하철에서 읽은 책의 한 부분이다. 요약하여 소개하면,
임레 라카토시Imre Lakatos, 폴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는 과학철학자들이다(동시에 평생 처음 보는 이름들이다). 이들이 과학방법론에 대해 책을 함께 집필하기로 했다. 문자 그대로 共著는 주로 한 주제에 대해 유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쓰는 것이나, 이 책은 두 저자가 상대방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하자는 것. 구상한 제목은 ‘방법을 위하여 그리고 방법에 반하여For and Against Method’였다. 매우 파격적인 기획이었는데 1974년 라카토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무산된다. 파이어아벤트는 1975년 <방법에 반하여>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책을 출간한다. 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친구를 그리워했다.
“이 책은 임레에게 보내는 긴 편지이다. 그리고 상당히 개인적인 편지이기도 하다. 이 책에 포함된 사악한 표현들은 수신자가 훨씬 더 사악한 표현들로 답장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썼다…”
저 세상에 있던 라카토시가 흐뭇했겠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잠시 책을 덮었다.
췌장암 3기 선고를 받고 그놈은 초연하게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마누라가 반대할 것 같지만 수목장으로 하고 싶은데 니가 내 비명(碑銘)을 멋있게 써주라.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한 사람 있잖아. 그런 식으로 위트 있게 말야. 너 그런 거 잘 쓰잖아.”
나는 대꾸를 못했다. 속으로 말했다. 그래, 이놈아. 버나드 쇼가 그랬다. 나도 그런 말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근데 이런 식으로 내 가슴을 후벼 파냐. 이 나쁜 놈아.
작년 여름 그놈은 떠났다. 서로에게는 ‘의좋은 형제’처럼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주고 싶어했던 친구였다.
각박한 세태를 못 따라간다고 내가 가끔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이제 그놈이 그립다.
그때 못 썼던 碑銘을 지금 그럴 듯하게 지어서 불사르면 먼 곳에서 그놈이 알고 씨익 웃을까.
첫댓글 티무르!난 뛰지를 못해서 여기 댓글도 잘 못달고 그냥 읽기만 하고 늘상 방관자일뿐!!!근데 이글은 정말 잘보고간다고~~~느낌이 와서 댓글 달고간다고~~!!!합창연습도 요샌 대상포진땜에 못하고 글네~~
"평소 잘 난 척 하지만 비명 한 줄 못 쓸 줄 알았지"
그 친구 천국에서 이리 말하고 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비명 하나 지어서 다녀와라.
영 자신 없으면 나한테 부탁하던지. 어떤 친구인지 이야기 해주면서....ㅋ
와우 넌 역시 ..... 숙연히읽었다
와우 잘 읽었어 점점더 각박해지는 세월 세태 장문의글 고맙다 숙연해지네
죽고나면 멋진 비명이 뭔 소용이겠나?
살았을제 탁배기 한 잔이라도 더 하세
그렇고 말고 살아생전이 훨 좋으겨 탁배기도 건강해야 맛나고.
좋은글 ~~절친이 떠나면 마음이 많이 아푸지~
나도 6월에 칭구하나 보내고나니 인생이 허무해지는 느낌이 들더라~~
나 죽으면 전주에 사는 아지매가 조사 써준다고 했는데...슬프면서도 웃음이나는...
오래오래 사는게 가슴 안 아프게 하는거다 . 건강하자 ~~
멋진 퓨전소설 한권 내봐~~ㅎ 부상부위는 나아졌남???
그러고 봉께 몇넘들 생각나면서 괜히 미안하고 숙연해진다.
마음에 담은 사람이 있어 가슴이 아리다
옆에있다면 내 등을 도닥여줄탠데 나는 간간이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시며
오늘도 악? 용기내며... 마음 따스한칭구들과함께산다
그래 그래
.....
나도 한 친구가 생각나는군.
그 친구는 56년 원숭이 띠인데 학교를 늦게 들어와 동급생이 되었고 성격이 좋아 우리랑도 거의 '야자'하며 지냈지.
겨우(?) 모 고등학교 상업 선생이 됐었고 서울에 가끔 올 때면 대포라도 한잔씩 하고 했었는데,
외모가 안*기를 닮아 가끔 사인 요청을 받기도 했다고.
십 수년 전 갑자기 강남 삼성병원에 있다고 해서 갔었지.
이 친구 수술이 불가능해 배를 다시 덮어놓은 상태인데도 어찌나 유머를 잘 하던지 배꼽을 잡다가 돌아왔어.
그후로 꽤 시간이 지나고 마치 '밀린 숙제'하는 기분으로 핸폰으로 전화를 했더니.
한참만에 부인이 받더군.......
내 비명은 누구에게 부탁할까???
티무르 자네는 내 특성을 모르니...